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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 6일, 충청투데이와 국립대전현충원의 공동주최로 '제4회 보훈사랑 현충원길 걷기대회'가 열린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이번 대회는 곱게 무르익은 가을 단풍길을 걸으며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 국민의 보훈정신을 함양코자 마련됐다.
딱딱한 추모의 공간으로서의 현충원이 아닌 일상화된 보훈의 공간으로서의 현충원을 만들고자 시작된 행사답게 참여는 별도의 신청 없이 자유 복장으로 가능하며 참가자격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다. 대회는 당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거행될 예정이다.
코스는 5㎞와 10㎞로 나눠 진행되며 출발점과 종료지점은 보훈광장이다. 식순은 식전행사, 기념품·추첨권 지급, 개회식 및 준비운동, 현충원길 걷기, 경품 추첨과 완보증 발급 순으로 진행된다. 덤으로 인근 구암사의 공양으로 국수까지 점심 식사로 제공된다. 대회를 앞두고 충청투데이 취재진은 미리 걷기코스를 걸었다. 코스는 5㎞와 10㎞로 나뉘어 있지만 사실상 5㎞ 코스는 모두 10㎞ 코스와 겹친다. 따라서 취재진은 10㎞를 중심으로 걷기 코스를 돌아보았다.
5km·10km코스 산책로는 사색의 길
△현충원길 답사
예나 지금이나 현충원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빚진 듯 어려운 장소다. 길을 걷다 언뜻 보이는 정문의 아우라는 현충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선거철이나 국경일이면 엄숙한 표정으로 찾아와 분향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브라운관을 통해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현충원을 아무나 오갈 수 없는 장소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현충원의 입구를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정문을 지키는 민간 경비들이 있지만 이들은 친절한 안내자에 가깝다. 신분증 검사도 신체수색도 없다. 입장에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 경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지위 자체가 현충원 자유입장권이다. 현충원은 그 안에 잠든 이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조국의 국민들에게 무조건적인 공간이다. 국민들만 잘 몰랐을 뿐이다.
취재진이 걷기로 한 10㎞ 코스는 보훈광장에 모여 현충탑에서 참배한 뒤 묘역 전망대를 거쳐 보훈산책로를 걸어 보훈광장으로 돌아오는 순환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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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광장에서 시작된 걷기는 홍살문을 지나 잠시 현충탑에서 멈췄다. 거대한 현충탑은 눈에 다 채워지지 않아 버겁고 먹먹하다. 짧은 분향과 묵념 속에서 치욕의 삶을 삶으로 긍정하지 않았던 많은 이들의 숨 가빴던 흔적을 더듬는다. 충(忠)이라는 글자는 파자(破字)하면 중(中)과 심(心)으로 나뉜다. 죽음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종국적 지향점은 남아있는 이들의 삶이었다는 역설. 그러한 역설 속에서 사는 우리는 생과 사의 불가능한 접점을 충(忠)으로 잇고자 했던 이들의 고귀한 단절을 기억할 의무가 있다. 의례적인 추모공간이 아닌 일상화된 보훈공원으로 현충원을 가꿔나가는 일은 과거와 현재의 심정적 단절을 회복하고 기억하는 첫걸음이다.참배를 마친 뒤 현충관을 거쳐 애국지사 2묘역에 위치한 전망대에 다다르면 너른 현충원 묘역이 한눈에 부감된다. 사병묘역, 장교묘역, 애국지사 묘역…. 곳곳마다 인부들의 안장 준비가 한창이다. 현충원은 하루도 쉬지 않는다. 하루 평균 10여위(位)가량이 현충원에 안장된다. 한 달 평균 약 300여위, 1년이면 3000위가 넘는다. 현재 법률상 허락된 1위당 묘역의 넓이는 국가원수 264㎡(80평), 장군 묘역 26.4㎡(8평), 국가유공자 3.3㎡(1평)이다. 322만㎡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에 비해 얼마 되지 않는 넓이로 보이나 이 같은 안장 추세라면 짧으면 3년, 길면 5년 안에 묘역이 모두 채워진다고 한다. 현충원 역시 납골당 조성 등 대안을 고민 중이나 사회적 인식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편이다. 국민적인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사병3묘역에 다다르면 천안함 병사들이 보인다. 꽃피우기도 전에 산화해 낮은 울타리 안에 잠든 46명의 젊은이들 앞에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것 외에는 무력했던 사람들의 부끄러움이 하얀 국화 꽃잎마다 켜켜이 쌓여있다. 비석위에 새겨진 이름과 생몰년, 훈장 등급, 일련번호위로 무사히 구출돼 뚜벅뚜벅 걸어 나오던 칠레 광부 33인의 모습이 비벼지며 마음속 주름살에 깊은 협곡을 그린다. 각본 없는 감동의 드라마 주인공이 저들일 수는 없었는가… 부끄러움은 결국 부끄러움으로 되새겨야 하는가…. 취재수첩과 볼펜사이의 거리감이 대한민국과 지구 정반대편 칠레 사이의 물리적 거리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잠시 샛길로 빠져 들른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은 사병, 장교묘역과 달리 현실감으로 다가오는 장소다. 베를린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반달'의 윤석중, 국제해양법재판관 박춘호… 한국현대사의 굴곡 속 단층의 일부를 형성했던 인물들 사이에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비서가 잠들어있다. 지난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제65주년 기념식이 있던 날 황장엽은 집안 욕조에서 자연사했다.
반드시 목을 따 천수를 누리게 해서는 안 된다던 김정일의 엄명은 황장엽의 자연사 속에 허물어졌다. 자연사한 주체사상의 대부의 현충원 안장은 '혈의 장막' 속 어린 후계자 김정은에게 예비된 북한의 난감한 미래로 보였다. 황장엽의 안장과 동시에 국가사회자묘역에는 24시간 경비초소가 설치됐다. 초소에 근무 중인 경비에게 초소의 운영시한을 질문하자 무기한이라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황장엽의 진정한 안식일은 통일의 날로 미뤄진 듯 했다.다시 본 코스로 진입한 취재진은 보훈산책로에 다다랐다. 보훈공원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현충원의 의지는 보훈산책로로 대표된다. 과수랜드를 시작으로 충혼지를 거쳐 해송나무숲·대나무숲·야생화코스와 징검다리로 이어지는 3.8㎞의 보훈산책로는 현충원 길의 백미로 손꼽힌다. 걷기 대회 당일 함께 진행되는 보훈산책로 3단계 개설식을 앞두고 길 위에 자갈을 깔고 잣나무 파쇄목으로 덮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파쇄목으로 덮인 산책로 일부 구간은 목향으로 그윽했다. 시간의 빗질을 받아 정리된 대숲의 초록은 가을과의 기진한 싸움에도 아직 지치지 않은 기색이다. 구간 곳곳에서 단체 방문객들이 아닌 일반 시민들과 종종 마주쳤다. 도회지의 팍팍함 속에 숨겨진 매력을 알아챈 일부 시민들은 도심과 멀지 않은 이곳을 자신만의 숨겨진 공원으로 애용하고 있었다.
가을 품은 단풍·대숲·메타세콰이어
△추일서정(秋日抒情)
우뚝한 봉우리에 병풍처럼 둘러싸여 포근한 현충원의 가을은 기어이 생을 밀어젖히고 충(忠)의 길로 나아가고자 했던 수많은 죽음 위에서 고요했다. 비석위에 까맣게 적힌 이름과 공훈, 생몰년도는 언젠가 꿈속에서 본 듯한 젊은 군인의 막연한 얼굴과 포개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조화(弔花)는 기약 없는 충(忠)의 길로 몸을 내던졌던 오래전 젊은 군인들의 마지막처럼 쓸쓸하고 아름다웠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경험치 못한 과거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묘역을 둘러보고 있을 때 어딘 가로부터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풍문처럼 들려왔다. 여고생으로 짐작되는 소녀들의 웃음소리는 햇살 받아 청순했다. 지난한 일상의 권태로움보다 웃는 게 익숙한 여고생들의 미소는 풋사과 향처럼 싱그럽게 흩날렸다. 그네들에게 있어 현충원은 일종의 공원 개념인 듯 했다. 옹기종기 모여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소녀들의 재잘거림은 메타세쿼이아길 이곳저곳에서 가볍게 사운댔다.
노랗게 익은 은행나무 아래로 낙엽 빛깔 옷을 맞춰 입은 아이들이 병아리마냥 선생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선생님의 자그마한 동작에도 아이들은 까르르거렸다. 길이 붉게 물든다. 하얀 구절초 너머 단풍나무가 비어간다. 비석아래 잠든 이들이 꿈꾸고 지키고자 했던 평화로운 조국은 아이들의 자그마한 웃음 속에서 건설되고 있었다. 글=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
사진=우희철 사진영상부장 photo291@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