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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희정 “이 앨범이 일상의 작은 ‘쉼표’가 되기를”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10. 8.

다음 앨범의 음악을 예상하기 힘들어 즐거운 싱어송라이터 한희정.

난 이 누님이 다음에는 랩을 했으면 좋겠다.


이 인터뷰는 헤럴드경제 10월 12일자 29면 톱에도 실린다.


p.s. 이 앨범 재킷이 도대체 어떤 모습을 담고 있는지 짐작이 안 된다면? 뒤집어서 보라. 그러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 누님 이거 촬영하느라 관절이 고생이 많았단다. 참고로 사진 촬영은 싱어송라이터 시와 누님이 했다.

한희정 “이 앨범이 일상의 작은 ‘쉼표’가 되기를”

[HOOC=정진영 기자]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미모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한희정은 ‘홍대’하면 떠오르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전형을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가장 먼 음악을 들려주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한희정은 음악적으로나 외적으로 일부러 예쁜 척을 한 일이 없었다. 이는 그가 한때 적을 뒀던 듀오 푸른새벽에서 활동 했을 당시에도 그랬고, 솔로로 활동 중인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얼핏 보기에만 그랬을 뿐. 단언컨대 한희정은 다음 행보를 예측하기 가장 어려운 뮤지션 중 하나이다.

한희정이 최근 2년 만의 신보인 미니앨범 ‘슬로 댄스(Slow Dance)’를 발표했다. 다소 난해했던 전작 정규 2집 ‘날마다 타인’과는 달리 어쿠스틱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운 게 변화이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앨범 제목부터 서로 잘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단어인 ‘느린(Slow)’과 ‘춤(Dance)’의 조합이니 말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합정동 파스텔뮤직에서 한희정을 만났다. 늘 그래왔듯이 그는 유쾌하고 엉뚱했다.

싱어송라이터 한희정이 미니앨범 ‘슬로 댄스(Slow Dance)’를 발표했다. [사진 제공=파스텔뮤직]


한희정은 “일본의 연극 ‘핫페퍼, 에어컨, 그리고 고별사’를 보면 배우들이 연극의 내용과 상관없는 춤을 추는데, 전형적이지 않은 모습이 신선한 감동을 줬다”며 “우리 역시 일상생활에서 별다른 의미 없이 움직이곤 하는데, 그런 눈에 띄지 않는 움직임들이 오랜 시간 동안 쌓여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느린(Slow)’ 움직임이 ‘춤(Dance)’ 같았다”고 앨범의 주제를 설명했다.

이번 앨범에는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와 묵직한 리듬 연주로 느린 망각의 과정과 고통을 그린 타이틀곡 ‘슬로 댄스’를 비롯해 상대방에게 닿지 않는 사랑의 슬픔을 반복하는 피아노 선율과 간결하게 끊어지는 리듬으로 표현한 ‘가능한 일’, 관계로부터 오는 고통은 늘 반복되며 부질없음을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통해 발견하는 과정을 노래하는 ‘그녀와 나’, 보사노바 풍의 따뜻한 사운드와 다채로운 리듬의 조화가 월드뮤직을 연상케 하는 ‘순전한 사랑 노래’, 반려동물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과정을 담은 ‘오래오래’ 등 5곡이 실려 있다. 확 잡아끄는 멜로디는 없지만 마치 물 흐르듯 한 곡처럼 이어지는 흐름이 인상적이다.

한희정은 “특별히 주제를 생각하고 만든 앨범은 아니지만, 이 앨범의 일관된 정서는 ‘느림’”이라며 “‘숨 고르기’ 같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고, 음악을 통해 ‘느림’의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를 중심에 두고 바이올린과 첼로를 더한 편성은 실내악을 닮은 듯하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만들어낸 리듬은 매우 현대적이다. 또한 현악 편곡 역시 클래식의 엄정함으로부터 많이 벗어나 있다.

한희정은 “모든 악기들은 각각 흥미로운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요소들을 이용해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즐겁다”며 “현악기 또한 음악적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기 때문에 나중에 내가 랩을 선보여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고 강조했다

가사 역시 점점 짧아지며 시를 닮아가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이다. ‘가능한 일’의 “오늘 밤 가능한 것을 가능한 만큼만 해요/그 마음속에 내가 전혀 없는 것이/아니라면 할 수 있는 건 많아요”에선 절제된 표현이 짝사랑의 슬픔을 극대화 한다. ‘오래오래’의 “오래 오래 건강히/오래 오래 같이 살자”와 일상적인 표현은 주인보다 짧은 삶을 사는 반려동물의 애틋한 모습을 소환해 가슴 한구석을 먹먹하게 만든다.

싱어송라이터 한희정이 미니앨범 ‘슬로 댄스(Slow Dance)’를 발표했다. [사진 제공=파스텔뮤직]
한희정은 “다독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문학서적을 읽으면서 한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됐다”며 “만약 가사에서 거창하지만 문학적인 부분이 느껴진다면 아마도 그런 경험들이 자양분으로 쌓여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한희정은 “어쩌다 보니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됐는데, 다른 생명을 내 삶에 받아들이고 책임지는 일은 내 세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며 “처음에는 내가 끝까지 고양이를 책임지지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이젠 내가 더 강해져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희정은 내년 초 단독 콘서트를 벌일 예정이다. 관객들과 가까이 마주할 수 있는 소극장 콘서트가 될 전망이다.

한희정은 “아직 새 앨범의 곡들이 익숙해지지 않은 터라 더 익숙해진 다음에 팬들과 만나고 싶다”며 “다음 정규 앨범이 나오는 데 그리 긴 시간이 들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를 당부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