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새 장편소설 집필을 위해 횡성 예버덩문학의집에 머무를 때, 짬을 내 읽었던 많은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김호연 작가의 <망원동 브라더스>였다.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이 보여서 예버덩문학의집에서 나가면 바로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내 신간 준비 때문에 바빠 독서가 늦어졌다.
이 작품 또한 <망원동 브라더스>처럼 '치유계' 소설이다.
이 작품은 서울의 대표적 슬럼가 중 하나인 청파동의 한 편의점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에 얽힌 사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정년퇴임 교사 출신 편의점 사장, 사업자금을 마련하려고 편의점을 노리는 사장의 아들, 성실한 20대 아르바이트생 시현, 야외 테이블에서 혼술로 고단함을 잊는 회사원, 작가 자신을 반영한 캐릭터인 희곡 작가, 그리고 이들 사이를 잇는 미스테리한 노숙자 출신 편의점 직원이 있다.
등장인물 모두 우리 주변에 있음 직한 인물이면서도 개성이 넘친다.
그만큼 생생하며 공감하기 쉽고, 읽기도 편했다.
작가가 마치 처음부터 연극을 의도하고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장면 하나하나가 무대처럼 느껴졌다.
영상보다는 무대에 올려질 때 훨씬 매력적인 결과물이 나올 듯하다.
재미있는 작품인 건 분명하지만, <망원동 브라더스>보다는 아쉬웠다.
소설의 주연급 등장인물인 노숙자 '독고'를 조금 더 개연성 있는 인물로 그리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소설을 읽는 동안 '독고'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빨라지는데, 막상 정체가 드러났을 때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독고'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만한 거대한 사건과 연결돼 있는데, 소설의 분위기와 잘 섞인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작가가 처음 집필 의도와 달리 '독고'를 사건과 엮어서 정리하는 데 꽤 애를 먹었을 것 같다.
조금 힘을 뺐으면 훨씬 더 감동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아쉬운 소리가 길어진 이유는, 그만큼 <망원동 브라더스>가 내게 준 즐거움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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