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 작가의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은 내가 문화일보에서 문학 담당 기자로 일했던 기간(고작 10개월이지만)에 기사로 다뤘던 소설 중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작품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외진 곳과 그곳에 속한 약한 사람들을 다루면서도, 인간을 향한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작가의 시선이 내게 뭉클한 감동을 줬었다.
작가의 신간을 기다려왔는데, 신간이 출간됐을 때는 내가 새 장편을 집필하던 시기여서 뒤늦게 책을 펼쳤다.
역시나... 좋았다.
작가는 눈앞에 보이지만 손에 닿지 않는 부조리한 풍경을 문장으로 구체화해 독자 앞에 풀어놓는다.
산재로 중태에 빠지거나 죽어갔던 미성년 근로자들, 계약 해지를 앞둔 비정규직, 직장 내에서 서로 싸우는 '을'들, 이유 없이 멸시당하는 장애인, 성범죄를 저지른 후 잠적한 아버지 때문에 오랫동안 고통받는 자매와 피해자 등.
이 소설집에 담긴 아홉 단편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안타까운 현실에 놓여 있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이 처한 현실을 개연성 있게 풀어나가며,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평범하지 않게 들려준다.
소설에 담긴 이야기 하나하나가 사실 새롭지는 않다.
아니, 익숙하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소설은 그저 우리가 그런 현실을 애써 외면해왔음을 아프게 깨닫게 한다.
읽는 내내 외롭고 서글픈 기분이 들었지만, 그 기분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소설집의 제목 <환한 숨> 때문이었다.
이 소설집에는 표제작이 따로 없다.
대신 제목이 모든 작품을 느슨하게 엮는 실과 같은 역할을 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누군가가 날숨이 자신의 들숨과 섞이고, 자신의 날숨이 누군가의 들숨과 섞이며, 그 숨에는 죽은 자의 숨과 산 자의 숨도 뒤섞여 있음을 환기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사실인데, 그 당연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모두 연결돼 있으며, 우리를 구원하는 건 결국 연대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집에서 한솥밥을 나눠 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서로의 숨을 공유하며 사는 우리도 넓은 의미에서 식구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밤새 읽던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문득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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