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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김쿠만 소설집 <레트로 마니아>(냉수)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2. 10. 1.


한국 문학계에서 소설은 단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단편을 유의미하게 발표할 자리는 문예지 지면이나 일부 웹진밖에 없는데, 대부분 청탁으로 원고를 받는다.
청탁을 기다리다가 지쳐 좌절하는 작가가 부지기수다.

지난 2020년에 온라인상에 문을 연 '던전'은 가능한 한 많은 작가에게 멍석을 깔아주고, 독자와 접점을 늘리겠다는 목표를 가진 문학 플랫폼이었다.
비록 작년에 운영을 중단했지만, 그곳에서 나는 꽤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만났다. 
김쿠만 작가의 단편은 레트로와 B급 정서를 뒤섞은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한국 소설 신간을 체크하다가 작가의 이름이 눈에 띄어 바로 장바구니에 책을 담았다.

소설집에 실린 작품 상당수가 구면이어서 같은 책을 오랜만에 다시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처럼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시절에 국민학교에 입학해 IMF 시절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그땐 그랬지" 하며 공감할 만한 소재가 많다.
8편의 단편을 모았는데, 각 단편마다 소재(레드애플 담배)와 등장 인물(시게루, 제임슨, 안 교수 등)이 반복해 나오는 터라 연작소설 같은 인상을 줬다.
단행본으로 작품을 모아서 읽으니 따로 읽었을 때와 비교해 느낌이 많이 달랐다.
그것이 또 편집의 묘미 아닌가 싶다.

읽는 내내 쓸쓸했다.
시대의 조류에 밀려 사라진 것들을 추억으로밖에 재생할 수 없는 아련함.
지금보다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없는 미래를 기다려야 하는 막막함.
마치 추석 당일 새벽에 홀로 고요한 서울 시내 한복판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