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살 때 일부러 베스트셀러를 피하는 편이다.
사더라도 책장에 꽂아두기만 하고 읽지 않는 일이 많다.
남들 다 읽는 책을 굳이 나까지 찾아서 읽을 필요는 없다는 꼬인 심리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 책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길 바라니 그 심보가 참으로 고약하다.
그 심보 때문에 뒤늦게 이 작품을 펼쳤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80년대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에서 아내와 다섯 딸을 데리고 석탄을 팔며 살아가는 30대 남성이다.
주인공은 성탄절을 앞두고 한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평온했던 마음에 균열이 생긴다.
사실 이게 이야기의 전부다.
얇은 책인데도 서사가 내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잔잔해서 지루했다.
몇 페이지 남지 않았는데도 잔잔하기 그지없어서 "이게 뭐지?" 싶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다섯 페이지를 읽고 경악했다.
방망이로 뒷머리를 사정없이 두들겨 맞은 기분이랄까.
이런 결말을 만들어내려고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한 거였다니.
기가 막혔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인 데엔 다 이유가 있구나.
더 보탤 이야기가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결말이었다.
사소해 보이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거대한 용기를 보여준 거대한 이야기였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인류애가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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