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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탄생 · 부활 · 백두산…톱밴드의 선택, 이유가 있겠죠”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3. 10. 14.

어떻게 된 노릇이 정상급 기타리스트들은 브랜드 이름과 상관없이 질 좋은 국산 기타를 쓰고, 어설픈 연주자들은 명품만 찾는 것인가.

정말 반성 톡톡히 해야 한다. 신대철 형님이 말하신다. "기타가 펜더면 뭐하냐? 손꾸락이 펜더여야지!"

 

 

“위대한 탄생 · 부활 · 백두산…톱밴드의 선택, 이유가 있겠죠”

 

픽업 코일감는 세세한 부분까지
연주자 의견 적극 반영해 제작
유병열·김도균·김태원·YB 등
정상급 연주자들도 엄지 치켜세워

초보들까지 해외 유명브랜드 선호
연주실력 자신없다는 뜻 아닐지…


지난 5월 31일 오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이날 이곳에서 조용필이 19집 ‘헬로(Hello)’ 발매 기념 전국 투어 첫 공연을 했다. 조용필은 이날 다른 공연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기타 솔로 연주 무대를 선보였다. 연주 이상으로 기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기타였다. 놀랍게도 이날 조용필의 기타는 펜더나 깁슨 등 해외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 아닌 국산 브랜드 ‘길모어(Gilmour)’였다. 조용필의 밴드 ‘위대한 탄생’의 리더 최희선의 기타 역시 조용필과 같은 브랜드였다. 전 YB의 리더이자 밴드 바스켓노트의 유병열, 밴드 마스터포의 손무현 등 과거 기자가 공연장에서 만난 정상급 기타리스트들 역시 길모어기타를 메고 있었다. 백두산의 김도균과 부활의 김태원도 길모어기타를 즐겨 연주했었다. 무엇이 세계적인 브랜드 기타를 제치고 정상급 연주자들을 매료시킨 것일까. 지난 1일 구산동 길모어기타 공장에서 최종규 대표와 최희선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었다.

최 대표는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하다가 기타 제작에 뜻을 두고 지난 2000년 독일의 한 악기 전시회를 다녀왔는데, 미국의 펜더ㆍ깁슨 외에도 나라마다 훌륭한 악기를 만드는 업체들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며 “10년 후 내 브랜드를 걸고 전시회에 참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기타 제작에 몰두해왔다”고 말했다.

최희선은 시그너처 모델(연주자의 이름을 새겨 넣은 악기)인 텔레캐스터형 보디 ‘HS-1’에 이어 깁슨형 보디 기타까지 길모어기타에 제작을 맡겼다. 최희선은 “디마지오ㆍ던컨 등 외국산 픽업(현의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핵심 부품)을 장착하는 다른 국내 기타 제작업체와는 달리 길모어기타는 픽업까지 자체 제작을 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국산 브랜드”라며 “픽업의 코일을 감는 사소한 과정 등 기타의 모든 부분에 대한 연주자들의 요구 사항과 개선점을 즉시 제작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고 극찬했다. 

 

지난 1일 서울 구산동 길모어기타 공장에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 최희선(왼쪽)과 최종규 길모어기타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 대표는 “모델 하나가 탄생하기까지 최소한 10번 이상의 프로토 타입(양산에 앞서 제작해보는 원형)을 제작하며 연주자들과 철저한 검증을 거치는 등 연구에만 수년의 시간을 쏟았다”며 “스스로 완벽함을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주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길모어기타의 장점”이라고 자평했다. 또한 최 대표는 “소리와 디자인이 아무리 좋아도 튜닝(조율)이 어긋나면 기타로서 기본이 안 된 것”이라며 “픽업뿐만 아니라 넥ㆍ브리지 등 모든 부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며 안정적인 튜닝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정상급 연주자들의 길모어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이유는 연주자들의 국산 악기에 대한 냉대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프로 연주자들은 물론 실용음악과 지망생부터 아마추어 연주자들까지 자신의 연주력과 상관없이 해외 유명 브랜드의 기타를 메고 무대에 오르는 일이 다반사다. 최희선은 “이번에 새롭게 제작한 깁슨형 보디 시그너처 모델의 경우 내가 예전부터 즐겨 연주해온 그 어떤 고가의 명품 기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한다”며 “연주자가 브랜드 이름에만 집착하는 것은 연주력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기자와 전화인터뷰를 한 유병열은 “내 시그너처 모델은 라이브와 세션 그 어느 곳에서도 좋은 소리를 내주기 때문에 주변의 많은 이가 감탄한다”며 “주관 없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브랜드의 이름에 기대는 태도는 연주자의 자세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길모어기타는 연주자 사이에선 입소문을 통해 인정받았지만 대중에겐 여전히 생소한 브랜드다. 공장의 규모 역시 ‘공방’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영세하다. 또한 회사 설립 후 12년간 홍보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한 탓에 찾는 사람만 찾는 브랜드가 됐지만 최 대표의 자신감 가득한 발언에서는 아쉬움이 드러나지 않았다.

최 대표는 “기타는 생명을 가진 악기라는 생각으로 개발에 몰두하다 보니 홍보에 아쉬워할 틈도 없었다”며 “펜더와 깁슨처럼 언젠가는 길모어가 기타의 또 다른 스탠더드(표준)로 자리 잡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다짐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