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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LIVING> 정민아 “난 모던 가야그머”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4. 3. 4.

그동안 참 많은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대학 선배를 만나긴 처음이었다.

정민아 선배가 일정만 없었더라면 인터뷰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질 뻔했다.

정말 즐거운 인터뷰였다.

 

 

 

 

<GREEN LIVING> “난 모던 가야그머”

 

25현 개량 가야금으로 홍대 뒤집어놓았던 정민아

정규 4집 ‘사람의 순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국악고 거쳐 대학선 가야금 전공했지만

정작 나를 매료시킨 건 가요와 팝

가야금을 가야금처럼 연주하고 싶진않아

1집 때부터 포크 싱어송라이터라고 소개

1년간 전국 돌며 엿들은 사람들의 이야기

보고 들은 만큼 음악적 시선은 더 깊어져

다채로운 문화가 뒤섞여 용광로처럼 들끓는 홍대앞. 독특해 보이는 것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와 더 이상 독특해 보일 것이 없을 법한 이 동네에서 싱어송라이터 정민아(35)는 독보적으로 독특한 존재다.

많은 이들이 6현 어쿠스틱 기타 혹은 일렉트릭 기타를 보검처럼 둘러메고 홍대앞이라는 강호(江湖)에 출사표를 던질 적에, 정민아는 25현 개량 가야금을 앞세워 ‘모던 가야그머’라는 새로운 문파(門派)를 창시해 파란을 일으켰다.

정민아는 지난 2006년 첫 번째 비급()인 정규 1집 ‘상사몽’을 발표해 무려 1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리따운 여협(女俠)이 가야금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음공(音功)을 펼쳐내자 강호는 술렁였다. 이 앨범의 수록곡 ‘무엇이 되어’는 중학교 2학년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는 쾌거까지 이뤄냈다. 이어 정민아는 2008년 정규 2집 ‘잔상’과 2011년 정규 3집 ‘오아시스’로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오르며 실력파 대중음악인으로 공인받았다.


▶“가야금을 연주하면서도 나는 가요가 좋았다”= 2014년 갑오년(甲午年) 벽두, 정민아가 네 번째 비급인 정규 4집 ‘사람의 순간’을 들고 강호로 돌아왔다. 이번 앨범은 정민아가 지난 1년간 전국 각지에서 운기조식(運氣調息)하며 쌓은 내공의 결과물이다. 이 비급 역시 평단의 줄 이은 호평을 이끌어내고 네이버뮤직 ‘이 주의 앨범’으로 선정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지난달 26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정민아의 모습은 여느 인디 뮤지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그는 국악고를 거쳐 대학(한양대 국악과)에서도 가야금을 전공하는 등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국악인이었다. 그러나 정민아는 사춘기 시절 자신을 매료시킨 음악은 가요와 팝이었다고 고백했다.

“조규찬, 이승환,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 등이 부른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대학 4년 내내 안양에서 왕십리를 오가며 통학했는데, 틈나는 대로 클럽 공연을 보기 위해 홍대앞을 제 집 마당처럼 돌아다녔죠. 그때부터 이미 홍대앞은 제 운명이었는지도 몰라요.”

대학 졸업 후 각종 전화상담원, 학습지 교사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홀로 실용음악 공부를 이어가던 정민아에게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 기회는 인생의 물줄기를 바꿨다.


“안양의 한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때가 있었는데, 연습실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클럽 사장이 저를 무대에 세웠어요. 그런데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이후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엔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생활이 계속돼 지금까지 오게 됐죠.”

▶“나는 국악인이 아닌 포크 싱어송라이터”=정민아는 가야금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지만, 그 음악적 색깔은 국악보다 대중음악 특히 포크에 더 가깝다. 혹자는 정민아의 음악을 퓨전국악으로 구분하지만, 이번 앨범에 담긴 음악은 퓨전국악이라는 정체불명의 장르로도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대중친화적이다. 정민아의 가야금 연주는 곡에 따라 우쿨렐레, 베이스를 닮은 듯한 소리를 연출하며 곡에 이물감 없이 녹아든다.

“전통 가야금은 단선율을 연주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화음을 연주하는 양악기와 어울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25현 개량 가야금은 마치 기타를 치듯이 화음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를 수도 있지만 산조처럼 전통적인 연주도 가능해요. 가야금을 반드시 가야금 소리처럼 들리게 연주하고 싶진 않아요. 그저 그 곡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연주를 하고 싶을 뿐이죠.”

때로는 담백하게, 때로는 처연하게…. 이번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비중이 높아진 정민아의 보컬이다.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가 보컬 디렉팅으로 참여해 가야금을 연주하며 노래도 부를 줄 알던 정민아를 노래를 부르며 가야금도 연주하는 정민아로 탈바꿈시켰다. 정민아가 직접 프로듀싱했던 지난 앨범과는 달리 명 베이시스트 서영도가 프로듀서를 맡아 제작을 총 지휘했다.

여기에 한웅원(드럼), 민경인(키보드), 유승호(피아노), 박혜리(아코디언) 등 동료 연주자들이 대거 참여해 단단한 연주를 보탰다. 수록곡 ‘입속의 말’엔 보사노바, ‘서른세 살 엄마에게’엔 재즈, 심지어 ‘사람의 순간’엔 일렉트로닉의 음악적 요소가 가미돼 있다. ‘모던 가야그머’라는 별호(別號)는 언어로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정민아의 음악적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저는 1집 때부터 저를 ‘포크 싱어송라이터’라고 소개해왔어요. 하지만 가야금이라는 콘텐츠가 워낙 개성적이다 보니 저를 국악인으로 좁게 보는 시선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캐논의 변주곡’을 가야금으로 연주한다고, 그 곡이 국악인 것은 아니잖아요? 저는 가야금이라는 조금 독특한 악기를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입니다. ‘모던 가야그머’만큼 저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표현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 어떤 순간보다 소중한 ‘사람의 순간’=지난 1년 동안 정민아는 전국 각지를 여행했다. 어느 순간부터 가사를 쓰는 일이 힘겨워지고, 멜로디가 반복되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 이유였다. 시작은 서울 근교 도서관 투어였다. 여기서 앨범의 첫 곡 ‘가난한 아가씨’의 실마리를 찾은 정민아는 행보를 안양, 수원, 순천, 부산 등으로 확장시켰다. 정민아는 주로 찜질방에서 숙박을 해결하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찜질방은 그 도시의 특징을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는 곳입니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수리산 한증막’은 안양에서 가장 오래된 한증막인데 매 맞는 여자, 신 내린 여자, 몸 파는 여자 등 다양한 여자들이 모여들어 몸을 푸는 치유의 공간이죠. 돌이켜보니 한증막에서 몸을 풀던 엄마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와 같더군요. 엄마가 고작 그 나이에 그런 억척스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 안쓰럽고 놀라웠어요. ‘서른세 살 엄마에게’는 그렇게 나온 곡이죠.”

보고 들은 것이 많아진 만큼 음악적 시선은 깊어졌다. 세상의 하대를 견뎌내는 매춘부의 삶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한 ‘부정한 여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고 작게’ 등의 곡은 그러한 깊어진 시선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특히 원주의 토지 문화관에서 완성된 “울지 말아요 늙고 병든 이여/그대 여기 오기까지/그것으로 충분히 아름다웠으니”라는 ‘울지 말아요’의 가사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삶의 숭고함을 드러내는 담담한 절창이다.

“늘 찬란하기만 한 삶은 없잖아요. 서로 같은 삶도 있을 수 없고요. 공통점은 단 하나, 누구나 태어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가장 빛나게 만들어 주는 것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저마다 경험할 일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앨범의 제목은 ‘사람의 순간’은 앨범을 완성한 뒤 자연스럽게 뒤따라왔죠.”

정민아는 오는 8일 오후 7시 서울 동숭동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서영도, 한웅원, 민경인 등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을 비롯해 싱어송라이터 김목인도 게스트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상사몽’ 등 지난 앨범의 주요 곡들을 비롯해 이번 앨범의 모든 곡들을 선보일 계획이에요. 목소리를 녹음할 땐 가야금을 놓고 노래를 불렀는데, 이번에는 가야금을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야 해 실력이 들통날까 봐 걱정되는데요?(웃음)”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