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994 김기태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문학동네) 매년 새해 첫날을 맞으면 습관처럼 포털사이트에서 신춘문예 당선작 소설을 검색해 살핀다. 신춘문예 경쟁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비교될 만큼 치열하지만, 이후 의미 있는 작품 활동을 벌이고 단행본까지 내는 당선자는 그리 많지 않다. 당선작을 훑어보며 나중에 어떤 작가가 살아남을지 예상해 보곤 하는데, 정말로 살아남아 단행본을 내면 반가운 기분이 든다. 2년 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무겁고 높은'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 단편이다. 탄광 폐쇄로 쇠락한 강원도의 소도시에서 역도 선수를 꿈꾸다가 포기하는 여고생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바벨을 드는 일보다 버리는 데 의미를 두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앞으로 오래 보겠구나 싶었는데 내 예상을 넘어 젊은작가상, 이상문학상 우수상 등 굵직한.. 2024. 5. 17. 박찬일 산문집 <밥 먹다가, 울컥>(웅진지식하우스) 80년대 말 장마가 내리던 어느 날, 나는 밥그릇을 엎었다. 며칠째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밖으로 나가서 놀지 못하는데, 밥상에는 반찬 하나 없이 매끼 간장과 밥만 올라왔다. 처음에는 어머니께서 마가린을 밥에 같이 비벼주셔서 잘 먹었는데, 이틀쯤 지나자 마가린이 떨어졌는지 간장만 밥상에 올라왔다. 나는 반찬 투정을 부리다가 밥그릇을 엎었고, 어머니는 나를 모질게 때렸다. 그날 이후 밥상에 반찬으로 간장만 상에 오르는 일은 없었다. 간장을 보면 문득 떠오르는 오래된 일이다. 바나나킥과 양파깡을 보면 어린 시절 잠결에 봤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밤중에 나는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어머니는 나와 동생의 머리맡에 바나나킥과 양파깡을 두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잠에서 깨어난 나와 .. 2024. 5. 14. 2024년 5월 3주차 추천 앨범 ▶보수동쿨러 [의자에 앉아] * 살짝 추천 앨범 ▶박재홍, 성기문 [소곡집 첫 번째] ▶모듈라서울 [lull~유영] ▶도경수(D.O.) [성장] ▶WUL [21st Century Blues] ▶트리플에스 [] 2024. 5. 12. 금정연 일기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북트리거) 자신의 일기를 소재로 쓴 산문집일 줄 알고 펼쳤는데, 정말로 일기 그 자체였다.2021년 겨울부터 2023년 가을까지 쓴 일기를 엮었는데, 여기에 국내외 여러 작가가 쓴 일기를 짧게 발췌해 절묘하게 곁들이는 구성이 신선했다.일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다양한 작품의 흔적에서 작가의 어마어마한 독서량이 느껴져 혀를 내두르게 한다.하지만 나는 그런 일기보다는 작가가 딸에 관해 쓴 일기가 훨씬 좋았다.문학, 음악, 오디오 등을 다룬 일기보다 훨씬 솔직하고 따뜻해서 마음에 와 닿았다.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대신 오랫동안 디지털카메라로 찍어온 사진이 일기 역할을 하고 있다.내가 처음 디카를 구입했던 2002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촬영한 모든 사진이 연도별, 월별, 일자별로 분류돼 외장하드에 저장돼 있다.폴더에는 .. 2024. 5. 12. 서정주 시집 <귀촉도>(은행나무) 시를 잘 모르는 사람의 입까지 벌어지게 하는 시를 쓴다는 건 도대체 무슨 재능일까. 힙합에 전혀 감흥을 못 느꼈던 내가 이센스의 첫 정규앨범 [The Anecdote]를 듣고 뻑갔던 것처럼, 서정주의 시집은 읽을 때마다 이런 게 '악마의 재능'이구나 싶다.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견우의 노래) 이, 우물물같이 고이는 푸름 속에/다수굿이 젖어 있는 붉고 흰 목화꽃은,/누님/누님이 피우셨지요?(목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푸르른 날) 뭐라 하느냐/너무 앞에서/아- 미치게/짙푸른 하늘.(소곡) 2024. 5. 10. 이서수 장편소설 <마은의 가게>(문학과지성사) 이런저런 자리에서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위협에 관해 들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적잖이 놀라곤 한다. 나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고 겪을 일도 없는 위협인데, 한국의 치안이 타국보다 훌륭하다는 통계만 보고 무시하기에는 사례가 구체적이고 들으면 빡친다. 남자라면 시비 걸리는 상황이 올 때 맞다이까자는 마인드로 달려드는 사람이 많겠지만, 여자가 그렇게 행동하긴 쉽지 않다. 특히 상대방이 자신보다 완력이 센 남자라면. 기자 시절에 경제, 산업, 노동 분야를 취재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직간접적으로 자영업자의 현실에 관해 많이 주워들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자영업자 상당수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개업한다. 인생은 그렇게 공평하지 않다. 아무리 달려도 평생 비포장도로만 뛰는 .. 2024. 5. 9. 우다영 소설집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문학과지성사) 작가의 전작인 소설집 을 꽤 충격적으로 읽었다. 수록 작품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무언가에 홀려 다른 세계를 엿보고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테드 창이 덜 하드하게 따뜻한 SF를 쓰면 이런 느낌이겠다 싶었다. '신비롭다' 혹은 '환상적이다'라는 수식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단편들이었다. 특히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필력은 한국 작가 중에선 독보적이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집을 사다 놓은 지 꽤 오래됐는데, 소설집과 장편소설 작업을 하느라 뒤늦게 펼쳤다. 내 방을 오갈 때마다 이상하게 자주 눈에 띄어 밀린 숙제를 하듯 읽었다. 시공간과 생의 한계를 초월해 펼쳐내는 환상적인 이야기들...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가 서로를 칼로 무를 베듯 구별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역설한다. 어떤 선.. 2024. 5. 8. 앤솔로지 <몸스터 (몸은 몬스터)>(스피리투스) 2001년 초겨울, 나는 대학교에서 논술시험을 치렀다. 오른손에 깁스를 한 채 왼손으로 펜을 쥐고. 오른손잡이인 나는 왼손으로 삐뚤빼뚤 천천히 글씨를 쓰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내 몸에 붙어있는 내 팔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답답한 일인 줄 몰랐다. 주어진 시험지를 반도 채우지 못하고 나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몸도 마음대로 못 하는데, 다른 사람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길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이 아닐까?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도 생생할 정도로 인상적이어서, 나는 누군가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 앤솔로지를 읽으며 오래전 경험을 떠올렸다. 여기에 수록된 다섯 작품에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자기가 원하는 몸을 만.. 2024. 5. 8. 2024년 5월 2주차 추천 앨범 ▶백아 [편지] * 살짝 추천 앨범 ▶현아 [Attitude] ▶블루터틀랜드 [청호춘가] #이주의추천앨범 #추천앨범 #백아 2024. 5. 6.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22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