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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산문집 <어떤 섬세함>(위즈덤하우스) 이석원, 참 대단한 작가다.그가 소설가로서 좋은 작가인지는 의문이지만, 에세이스트로서 좋은 작가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음악으로 경지에 오르고, 산문으로도 경지에 오른 사람이 소설까지 잘 쓰면 반칙이지.감상문을 쓰다가 허접해서 지우고 대신 읽다가 좋았던 문장을 발췌해(일부는 적당히 수정해서) 옮긴다-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더 중요하다.-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아서. 그게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 그래서 우리는 늘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며 사는 일이 가능하다.- 왜 어른들이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느니, 그러니까 젊어서 많은 것들을 경험해 보는 게 좋다느니 하는 지를 알 것 같.. 2024. 5. 4.
월급사실주의 앤솔러지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문학동네) 일단 제목이 정말 죽인다.최근 몇 년 사이에 읽은 한국 문학 단행본 제목 중에서 이보다 내 눈길을 확 사로잡은 제목은 없었다.월급쟁이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서점 매대에 놓인 이 책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테다.제목 같은 사람을 조직에서 만나 뒷목을 잡아 본 경험이 다들 한 번쯤은 있었을 테니 말이다.이 책은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두 번째 앤솔러지다.지난해에 출간된 첫 번째 앤솔러지 가 많은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두 번째 앤솔러지에는 어떤 작가가 참여해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기대가 많았다.첫 번째 앤솔러지는 전반적으로 내용이 무거웠고, 참여 작가도 많아(11명) 책도 무거운 편이었다.그래서 두 번째 앤솔러지는 그보다 조금 가볍게 나오기를 기대했다.다행히 기대한 대로 첫 번째 앤솔러지에서 느껴졌던 비장.. 2024. 5. 4.
심아진 장편소설 <프레너미>(강) 아내에게 이혼 통보를 받은 한 35살 남자가 있다. 아내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은 채 남자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남자는 그런 아내의 뒤를 밟으며 비난할 구실을 찾는다. 이런 가운데 옛 연인과 돌아가신 어머니 등의 모습을 한 여러 환영이 남자를 성가시게 한다. 남자는 그 환영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역추적하면서 자신의 사랑이 어떻게 이별로 끝났는지를 돌아본다. 책을 덮으며 오래전에 경험했던 사랑과 이별을 떠올렸다. 10년에 가까운 오랜 연애가 끝났을 때, 나는 도대체 왜 이별 통보를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괴로웠다. 상대방이 든 이유는 누가 들어도 핑계였지만, 나는 진짜 이유를 듣기가 두려워서 더 캐묻지 않았다. 시간이 1년 넘게 흘러 다른 사람 입을 통해 그 이유를 들었을 때, 나는 너무 비참해서 차.. 2024. 5. 3.
정승진 동화집 <늙은 개>(마루비) 첫 소설집과 새 장편소설 작업을 핑계로 읽기를 미루다가 뒤늦게 펼쳤다. 책을 덮을 때 든 기분은 착잡함과 서글픔 사이의 어딘가였다. 어렸을 때 읽었던 에서 수위를 살짝 낮추고 배경을 현재로 옮기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문득 오래전 어머니께서 헌책방에서 사 온 의 종이 삭은 냄새가 느껴졌다. 이 동화집은 다양한 동물(혹은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시선으로 민담, SF 등을 차용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본다. 나는 어렸을 때 쥐가 손톱을 먹으면 나로 변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 때문에, 지금도 손톱을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는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미신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만약 내 손톱을 먹은 쥐가 나로 변했다고 치자. 나로 변한 쥐는 나를 대신해 온전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복잡한.. 2024. 4. 30.
김호연 장편소설 <나의 돈키호테>(나무옆의자) 김호연 작가는 데뷔작 를 비롯해 모든 장편소설을 따라 읽었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다. 작가의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자세와 재지 않는 문장에 스며들어 있는 온기를 사랑한다. 엄청나게 유명한 작가가 된 지금이든 덜 유명했던 과거에든, 여전히 나는 작가의 신작을 손꼽아 기다리는 독자다. 이번에도 온라인 서점에서 예약 판매 중인 이 작품을 보고 바로 구매 버튼을 클릭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과거에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인연을 맺었던 소년 소녀들과 가게 주인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른이 된 소년 소녀들이 다시 모여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돈키호테를 자처했던 가게 주인을 추적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작가의 작품답게 당연히 따뜻하고 이야기는 흥미로우며 쉽게 읽히고 희망적이다. 그렇다고 작가의 메가 히트작인 .. 2024. 4. 29.
박산호 장편소설 <오늘도 조이풀하게!>(책이라는신화) 나는 2000년대 후반 맥스 브룩스의 장편소설 에서 작가의 이름을 처음 봤다. 좀비 아포칼립스 마니아여서 관련 영화와 드라마를 섭렵했는데, 작가가 변역한 는 내가 좀비물에 빠져든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후 디스토피아를 그린 장편소설 에서도 작가의 이름을 역자로 봤다. 그 이름을 역자가 아닌 소설가로 다시 본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도 화사한 표지를 가진 청소년 소설의 저자로 말이다. 다문화가정 차별을 비롯해 한부모 가정, 학원 폭력, 성소수자, 권력과 갑을 관계, 작은 사회 등 표지는 화사해도 다루는 주제가 꽤 무겁다. 이런 문제가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 바깥에서도 벌어지는 사회 문제이기 때문에 마냥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로 읽히진 않는다. 곳곳에 반전과 복선이 깔려 있어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2024. 4. 28.
2024년 4월 5주차 추천 앨범 ▶셀린셀리셀리느 [시간의 문제] * 살짝 추천 앨범  ▶김윤아 [관능소설] ▶스트릿건즈 [Rockabilly Time] ▶백현선 [Longing] ▶다정 [Unlearn] ▶아녹 [Be Free] 2024. 4. 28.
정대건 장편소설 <급류>(민음사) 사다 놓은 지 꽤 됐는데, 이상하게 손에 잡히지 않아서 읽기를 미뤘던 작품이다. 책을 덮은 후에는 늦게 읽은 걸 후회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어질 인연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지독하면서도 섬세하게 보여주는 러브스토리다. 읽는 내내 사랑이란 과연 무엇이고, 무엇이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끌리게 하며, 시간이 어떻게 사랑을 성숙하게 변화시키는지를 곱씹게 만든다.  내용과 결이 다르지만, 최진영 작가의 중편소설  속 커플이 페이지 위에 종종 겹쳐서(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마지막은 보다 훨씬 희망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전개와 훌륭한 가독성(작품 제목처럼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간다!)이 매력적이다. 누군가를 구하고자 망설임 .. 2024. 4. 28.
김하율 장편소설 <어쩌다 노산>(은행나무) 저출산을 우려하는 뉴스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데, 사실 이 문제는 기혼자와 미혼자를 나눠 판단해야 한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혼인 대비 출산 비율은 1.3명이다. 2023년 합계 출산율 0.72명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많다. 통계로 확인할 수 있듯이 기혼자는 여전히 아이를 낳으려는 경향이 크다. 다만 만혼 비율이 매년 높아지다 보니 과거보다 난임 부부와 노산이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작품은 그중 노산에 관해 풀어낸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40대 중반의 나이에 계획하지 않았던 둘째 아이를 갖게 된 작가의 경험담을 그린다. 주인공 이름이 대놓고 작가 본명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자전적인 소설이다. 늦게 결혼해 난임 전문 병원에 다니며 어렵게 첫째를 가졌는.. 2024.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