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행 타지 않는 ‘좋은’ 컨트리ㆍ포크 음악을 빚다= 빅베이비는 “할머니께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뒤 자신을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가지게 됐는데, 내 모습이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며 “지금까지의 삶이 원숭이처럼 조급하게 굴었던 순진한 소녀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같은 생각이 앨범의 전체적인 주제가 됐다”고 앨범 제작의도를 밝혔다.
“이번 앨범은 별 볼 일 없었던 지나간 삶의 연대기”라는 빅베이비의 고백은 솔직하고 겸허했지만,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구별되는 음악적 개성은 여느 국내 뮤지션의 앨범보다 뚜렷하다. 지난 2002년 밴드 아톰북의 일원으로 첫 번째 미니앨범 ‘헬로(Hello)’를 발매하며 이름을 알린 그는 지난 2011년 셀프타이틀 앨범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솔로 활동에 나섰다.
빅베이비는 “어머니가 듣던 라디오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접한 60~70년대 팝이 음악적 자양분으로 작용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유행에서 벗어나있다는 것은 단점이지만 유행을 신경 쓰지 않고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인 것 같다”며 “지난 앨범은 영미권 음악 따라하고 싶었던 의도가 많았던 작품이지만, 이번 앨범은 그런 의도에서 벗어나 마음 가는대로 편안하게 쓴 곡들로 채웠다”고 설명했다.
이번 앨범에는 경쾌한 포크록 ‘베이비 유(Baby You)’와 ‘언젠가 그때까지’ 등 더블 타이틀곡을 비롯해 컨트리풍의 벤조 연주가 인상적인 ‘데드 앤드 곤(Dead and Gone)’, 해질녘 산하의 쓸쓸함을 표현한 연주와 밴드 수리수리마하수리의 오마르의 보컬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뒤돌아서서 그냥 그렇게 떠나버렸네’, 동화 ‘개구리 왕자’를 아기자기한 멜로디와 더불어 우화로 풀어낸 ‘어 프로그 이즈 어 프로그(A Frog Is a Frog)’,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인 더 세임 스톰(In The Same Storm)’, 동명의 전설적인 영국 포크 뮤지션을 향한 동경을 노래한 ‘도노번(Donovan)’, 블루스와 사이키델릭을 오가는 복고풍의 사운드가 돋보이는 유어 비거 솔, 유어 비거 하트(Your Bigger Soul, Your Bigger Heart)’ 등 13곡이 담겨 있다. 같은 레이블(일렉트릭뮤즈)의 동료인 홍갑, 김인후(텔레플라이), 박희진(해마군단), 강예진(2스토리), 윤주미(플라스틱 피플) 등이 연주와 코러스로 참여해 힘을 보탰다.
빅베이비는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참여한 뮤지션들과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일이 매우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란 사실을 깨달았다”며 “특히 모로코 출신인 오마르와 한국에서 영어로 음악적 소통을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신선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 음악으로 경험하는 일상으로부터의 조용한 탈출= 심심한 것 같으면서도 부지불식간에 스며들어와 존재감을 드러내는 빅베이비의 음악적 특징에 주목한 것은 드라마였다. MBC 미니시리즈 ‘트리플’의 OST ‘에브리 플레이스 이즈 유어 플레이그라운드(Every Place is Your Playground)’, KBS 미니시리즈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스프링 아이 러브 유 베스트(Spring I Love You Best)’, SBS 미니시리즈 ‘신사의 품격’의 ‘유 아 에브리웨어(You Are Everywhere)’, tvN 미니시리즈 ‘연애조작단, 시라노’의 ‘인 더 세임 스톰(In The Same Storm)’ 등 드라마의 잔잔하고도 극적인 길목엔 빅베이비의 곡들이 있었다.
빅베이비는 “OST를 작업할 때에는 구체적인 키워드를 주문받는데, 이는 마음이 가는대로 음악을 만들어 온 내게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며 “소재와 주제가 명확한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대중가요의 어법과 정서를 알게 됐다는 점에서 OST 작업은 좋은 공부가 됐다”고 전했다.
앨범 전반을 관통하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많은 부분은 영어 가사로부터 나온다. 영어 가사는 지난 앨범에 비해 비중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앨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글 가사를 영어로 번역하는 대신 처음부터 영어로 쓰인 가사의 운율감은 한글 이상으로 자연스럽다. 빅베이비의 대학 전공(영문과)과 음악적 자양분이 긍정적인 형태로 결합한 결과다.
빅베이비는 “영어 가사는 쉽게 들리지 않기 때문에 음악 자체에 집중할 수 있고, 한글 가사는 말의 힘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굳이 애를 써서 한글 가사를 쓰려고 하지 않는 편이지만, 다음 앨범에는 ‘구름게으름민요’처럼 자연스러운 한글 가사를 가진 곡들을 조금 더 많이 싣고 싶다”고 전했다.
빅베이비는 오는 12일 오후 9시 ‘잔다리 페스타’에 참가해 서울 서교동 벨로주에서 공연하고, 다음 달에는 EBS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도 설 예정이다.
빅베이비는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MBC ‘무한도전’처럼 음악에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는 방송 프로그램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라며 “언젠가는 꼭 미국 NPR(미국 공영 방송)의 ‘타이니 데스크(뮤지션이 직접 사무실로 찾아가 연주를 하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에서 라이브를 선보이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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