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세 번째 장편 ‘짖는 개가 건강하다’ 쓰기를 마쳤다.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7. 2. 23. 11:25



1. 오늘 세 번째 장편 짖는 개가 건강하다(가제)’ 쓰기를 마쳤다.

지난 11"진심이란 단어는 입에 담으면 담을수록 본래의 뜻과 멀어진다"로 시작한 이야기가 223"다음에 한국으로 놀러오면 꼭 평양냉면 같이 먹으러 가요"로 끝났다.

첫 번째 장편 발렌타인데이23, 두 번째 장편 도화촌기행29살에 탈고했으니 이번 장편은 내가 30대에 들어와 처음 쓴 장편이기도 하다.

발렌타인데이는 탈고에 3, ‘도화촌기행1년이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속도로 썼다. 1월에는 고작 도입부만 썼고 2월에 대부분 분량을 썼다. 어쩌면 이 짓으로 먹고 살아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으니 하루하루가 절박해 쉬지를 못했다. 2월 안에 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며칠 빨리 끝났다. 원고지 1000매를 예정하고 절에 들어왔는데 980매 정도에서 끝났으니 분량은 계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2. 내가 장편을 쓰는 방식은 허술한 편이다. 따로 창작을 배운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적용할 방식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장편을 쓰기 위해 정하는 것은 딱 두 가지다.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가,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다. 나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먼 곳에 놓고, 주인공이 그곳으로 달려가게 만든다. 그 외에는 어떤 이야기도 등장인물도 정해놓지 않는다. 나머지는 모두 주인공이 달려가는 도중에 만들어진다.

내가 처음에 막연하게 생각했던 이야기는 스케일이 크고 복잡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40% 정도 작업이 이뤄졌을 때, 이 그림은 내 생각대로 그려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1인칭으로 소설을 시작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는 3인칭이어야만 온전히 설명할 수 있었다. 그때 멘붕이 왔다. 어쨌든 근성으로 버티고 먼 길을 돌아서 주인공이 마지막 장면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고 잔잔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다음에 장편을 쓸 때에는 조금 더 치밀하게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3. 탈고를 했지만, 이는 초벌구이에 불과하다. 퇴고도 탈고에 못지않은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서울로 올라가면 당분간 퇴고에 집중할 생각이다. 그런데 힘들게 장편을 썼어도 언제 빛을 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발렌타인데이는 탈고하고 5년이 흐른 뒤에 한양대학보 문예상 대상을 받았는데, 출간 기회를 잡지 못해 지금도 파일로만 남아있다. ‘도화촌기행은 탈고 후 출판사 10곳 이상에 원고를 보냈다가 답이 없어 2년을 묵혔는데, 뒤늦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아 출간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내 허접한 첫 앨범 오래된 소품에 실린 곡들은 모두 작곡한 지 11~16년 만에 빛을 봤다. 이번에 쓴 장편도 언제 빛을 보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미 몇 번 그런 경험을 해본 터라 어느 정도 해탈했다. 어쩌면 내 평생 USB메모리에 워드 파일로만 남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확실한 것 하나가 있다. 기회를 잡으려면 일단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815만분의 1로 매우 낮다. 그런데 로또도 구입을 해야 당첨이 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4. 서울로 올라가 퇴고를 하면서 조금씩 밥벌이를 알아볼 생각이다. 음악기자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있는데,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변에 빈자리가 보이면 가져다 써 달라. 지금도 음악 많이 듣고 꽤 쓸 만한 놈이다. 밥벌이를 찾지 못하면? 백수에 대한 이야기를 장편으로 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준면 씨는 잔소리를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