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김탁환 장편소설 '살아야겠다'(북스피어)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8. 11. 11. 11:33

 

 

 

믿음이 무너진 사회에서 우리가 기댈 곳은 어디란 말인가.

 

‘살아야겠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뉴스를 다루고 또 가까이에서 수많은 뉴스를 접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나는 메르스를 다룬 뉴스를 지겨울 정도로 접했고, 또 메르스를 꽤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이 장편소설은 그런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나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특히 메르스 사태 종료 후 벌어진 일들에 대해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 소설은 메르스 사태 이후 벌어진 일들을 환자와 그 가족의 시선으로 따라가며 보여준다.

돌이켜보니 나는 수많은 메르스 관련 뉴스를 접했으면서도, 정작 환자와 가족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기억이 없었다.

소설 모두 읽은 뒤에야 나는 왜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지옥 속에서 살고 있었다.

고통을 피하는 태도는 본능이다.

굳이 지옥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다.

김탁환 작가는 굳이 그 지옥을 들여다봤고, ‘살아야겠다’는 그 보고서다.

 

이 소설의 주된 줄기는 치과의사 김석주, 출판사 물류창고 직원 길동화, 방송사 수습기자 이첫꽃송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다.

 

메르스 사태 당시 마지막으로 숨진 치과의사 출신 환자를 연상케 하는 김석주는 악성 림프종 재발을 의심해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왔다가 메르스에 걸렸다. 길동화는 아픈 동생을 데리고 병원에 왔다가 메르스에 걸렸다. 이첫꽃송이는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왔다가 메르스에 걸렸다. 하필 그 병원을 찾은 게 죄라면 죄인데, 대가는 너무 잔혹했다.

 

김석주의 메르스 검사 결과는 음성과 양성을 오간다. 의료진은 아직 메르스가 완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림프종 검사를 미룬다. 의료진은 그에게 전염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대책 없이 그를 격리병동에 가둬둔다. 새로운 격리 해제 기준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이유인데, 정부는 기준을 만들려는 의지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그 사이 그는 병세 악화로 병원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는 메르스 환자로 격리됐는데, 의료진이 인정한 사인은 악성 림프종이다. 그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완치 판정 후 가장 먼저 병원을 나선 길동화 앞에도 가혹한 일들만 가득했다. 후유증으로 폐 기능이 약화해 예전보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지만, 그가 더욱 숨을 쉬기 어려운 이유는 주변의 냉대와 외면 때문이었다. 그는 더러운 바이러스 덩어리 취급을 받으며 오랜 세월 일해온 직장에서 사실상 해고된다. 그는 이미 업계에 메르스 환자라고 소문이 나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일조차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생계를 위협받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는 몇 차례 자살 시도까지 벌이지만 책임을 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완치 후 현업에 복귀한 이첫꽃송이의 처지는 김석주, 길동화보다 나아 보이지만 뜯어서 살펴보면 역시 만만치 않다.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그가 심적으로 의지할 곳은 친척뿐이다. 친척들은 하필 아버지와 사이가 아주 좋았던 탓에 앞다퉈 병원에 왔다가 메르스에 걸렸고, 일부는 그로 인해 죽음을 맞았다. 아버지를 하필 그 병원으로 옮긴 이첫꽃송이는 후회하며 자책했고, 아버지 생전에 각별했던 친척들의 사이는 앞으로 다시 회복하기 어렵게 됐다.

 

메르스 사태에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탄식이 절로 흘러나온다. 정부는 메르스 발생 병원 명단 공개를 미루고, ‘2미터 이내 1시간 이상 메르스 환자와 머문 사람’이란 엉성한 밀집접촉자 기준을 고집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환자 접촉경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고 일부 의심환자가 통제선을 벗어나기도 했다. 그 사이에 메르스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간다.

 

초동대응에 실패했다면 사후대응이라고 제대로 해야 했는데, 정부의 대응은 그야말로 후진 모습을 보여준다. 환자들에 대한 사후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아, 많은 환자가 완치 후에도 심리적 외상으로 인한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 심지어 김석주가 입원한 병원이 질병관리본부에 보낸 ‘메르스 특별 사례팀 구성에 대한 회신’은 김석주 사망 후 닷새 후에 도착한다. 기가 막힐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사이에 메르스에 걸린 환자들은 오히려 타인을 감염시킨 가해자로 비난받는다. 길동화에게 전화를 걸어 욕하며 협박하는 한 남자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이미 메르스 관련 뉴스 댓글란을 채웠던 환자를 향한 온갖 비난을 본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환자뿐만이 아니다. 김석주의 아들 우람이는 단지 메르스 환자의 자녀란 이유만으로 어린이집으로부터 거부당한다. 정부와 병원과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깨진 허약한 세상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각자도생’뿐이다.

 

이첫꽃송이는 김석주를 격리병실에 가둬 내버려두고 있는 건 메르스도 림프종도 아니고, 우리의 두려움과 무관심이라고 말한다. 김탁환 작가가 책 마지막에 남긴 작가의 말이 아프게 읽히는 이유일 테다.

 

"삶과 죽음을 재수나 운에 맡겨선 안 된다. 그 전염병에 안 걸렸기 때문에, 그 배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행운’은 얼마나 허약하고 어리석은가. 게다가 도탄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배제하려 든다면, 그것은 공동체가 아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마션’의 감동은 공동체가 그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경제적 손실이나 성공 가능성 따위로 바꿔치기하지 않는 원칙으로부터 온다."

 

이 소설의 분량은 600페이지가 넘는다.

양장본이어서 더욱 두껍게 느껴질 테지만, 지레 겁을 먹지 않아도 된다. 건조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문체가 분량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 테니 말이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이 정말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들이는 품에 비해 돌아오는 게 너무 없고, 소설을 완성했더라도 출간으로 이어지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1쇄를 모두 팔아도 돌아오는 인세가 월급 수준도 안 되니 이 얼마나 가성비가 좋지 않은 일인가.

장편소설의 효용성에 관해 최근 의문이 많이 들었는데, ‘살아야겠다’를 읽은 후 충실한 취재와 문제의식을 담은 소설은 훌륭한 저널리즘의 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몰랐던 많은 이야기를 알게 해준 이 소설에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