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세상만사 모든 것… ‘관계’에 달려 있다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9. 12. 20. 16:37
‘관계의 과학’은 복잡해서 방정식이나 간단한 논리체계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사회현상에 통계물리학을 적용해 거시적 의미를 파악하고, 친숙한 사례를 통해 알기 쉽게 풀어낸다. 게티이미지뱅크

- 관계의 과학 / 김범준 지음 / 동아시아

주체간 상호관계 ‘복잡계’ 연구

통계물리학 접목한 5개 주제로

사회·자연의 구조적 특성 살펴

흰개미 상호작용 통해 집 짓듯

작은 부분 모여 전체사건 형성

인간도 사회성 통해 성공했듯

같은 경험도 함께할때 더 행복




명절에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오르면 드는 의문이 있다. 왜 어떤 구간에선 정체가 발생하고, 어떤 구간에선 갑자기 정체가 풀리는 걸까. 모두가 일정한 속도로 운전하면 정체가 발생하지 않을 텐데, 왜 우리는 명절 때마다 정체를 피할 수 없는 걸까. 그 이유는 복합적이다. 한 운전자가 급정거하거나 무리하게 차선을 침범하면 그 결과는 주변 자동차의 움직임에도 적든 많든 영향을 미친다. 도로 위 신호체계 또한 교통의 흐름에 많은 영향을 준다. 운전자의 운전 습관도 영향을 주는 요소다. 이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교통사고나 진입로의 병목현상이 없어도 정체가 발생한다.

이처럼 다양한 요소가 한곳에 모이면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특성을 만들어내는 체계를 복잡계라고 부른다. 인간 사회는 복잡계의 대표적인 예다. 복잡계는 말 그대로 너무 복잡해서 방정식이나 간단한 논리체계로 설명하기 어렵다. 통계물리학은 수많은 미시적 구성요소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나는 거시적 성질을 파악해 복잡계를 이해하는 틀을 제공한다. 이 책은 어떻게 작은 부분이 모여 전체로서의 사건을 형성하고 현상이 되는지 통계물리학의 방법으로 살핀다.


저자는 연결·관계·시선·흐름·미래라는 다섯 개의 큰 주제를 제시하고 각 주제 안에서 문턱값·때맞음·상전이·링크·창발·인공지능·중력파·암흑물질 등 다양한 과학개념을 친숙한 사례로 풀어낸다. 통계물리학자로 복잡계를 연구해 온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 개념은 ‘연결’이다. 두 작가가 각자 위대한 소설을 완성했다고 가정해보자. 그중 한 작가는 많은 동료 작가 및 문학계 인사와 유대 관계를 맺고 있으나, 다른 작가는 누구도 모르게 홀로 소설을 집필했다. 이럴 때 후자의 소설은 세상에 나올 기회도 찾지 못한 채 묻힐 가능성이 크다. 둘의 차이는 자신과 연결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이다. 흰개미 한 마리는 집을 지을 만한 지능을 갖고 있지 않지만, 무수히 많은 흰개미 집단은 상호작용을 통해 거대한 집을 짓는다. 이처럼 복잡계에선 구성요소 사이의 강한 연결이 하나의 구성요소에서 발생한 사건의 규모를 키워 급격한 변화를 유도하거나, 구성요소에선 없던 특성이나 행동이 전체구조에서 자발적으로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친구관계·사회현상·자연현상 등 다양한 사례에 숨은 규칙과 패턴을 연결망으로 만들어 살펴보고, 연결했을 때만 보이는 구조적인 특성을 살핀다. 이를 위해 저자는 페이스북에서 서로가 공통으로 맺고 있는 친구 수를 조사해 관계의 강도를 측정하는 연결망을 그려보기도 하고, 페이스북 친구 관계에서 이른바 ‘마당발’이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관계가 달라지는 양태도 연결망을 만들어 보여준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과학과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사회현상을 과학개념을 빌려 설명하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예는 국회의원들 간의 관계로 살펴본 발의 법안 국회 통과 비율이다. 저자는 국회의원들 간 관계를 측정하기 위해 법안 발의를 할 때, 누가 누구와 협력했는지를 조사해 연결망을 만들어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저자는 국회의원들이 정치적 성향이나 정책보다는 소속정당별로 폐쇄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지적한다. 소수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국회에서 통과해 입법까지 이뤄지는 경우가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관계의 과학을 이해하는 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자의 결론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저자는 우리나라 국민이 비슷한 경제 수준인 나라의 국민보다 덜 행복한 이유는 남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서 행복을 찾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행복에서 다름은 중요하지만, 그 다름은 자신의 어제와의 다름이어야지 다른 사람의 현재와의 다름이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아울러 저자는 인간은 사회성을 바탕으로 지구상에서 성공했으므로, 같은 경험이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행복도 커진다고 전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더불어 새롭고 멋진 경험을 하기 위해 노력하라. 저자가 책 마지막에 남긴 조언은 따뜻하면서도 날카롭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