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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만에 소설집 ‘당신의 외진 곳’ 펴낸 장은진 작가
사는게 힘들고 지쳐서 슬플때
가장 잘 할수 있는 일은 우는 것
인간의 삷은 결국 비극이지만
소설 쓰는 사람은 희망 남겨야
“모두가 주인공을 볼 때 우리는 당신을 봅니다”. 장은진(사진) 작가의 소설은 최근 화제를 모은 한 보험회사의 광고 문구를 연상케 한다. 장 작가는 그럴듯해 보이는 삶과 인연이 없는 보통 사람들, 그중에서도 더 소외된 사람들의 일상과 심리에 주목하며 작품 세계를 만들어 왔다.
장 작가가 8년 만에 출간한 새 소설집 ‘당신의 외진 곳’(민음사)은 고독한 가운데에서도 소통의 끈을 찾는 소외된 사람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장 작가는 “40대가 되자 내 고통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조금 더 공감할 수 있게 됐다”며 “나이를 먹어야만 알 수 있는 고통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고통은 글을 쓸 때 소중한 자양분이 된다”고 말했다.
이번 소설집에는 지난해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외진 곳’을 포함해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고독을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서로를 의식하며 소외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표제작인 ‘외진 곳’은 사기를 당해 원래 살던 원룸의 반 토막만 한 작은 방으로 이사를 온 자매와 다른 세입자들이 서로를 향한 약간의 배려와 관심으로 형성한 느슨한 연대를 그린다. ‘이불’은 직장과 연인을 잃은 청년과 아픈 어머니를 등장시켜 적당히 모르는 척하는 방식으로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리수리 마수리’에 등장하는 버린 물건을 모아 파는 여자와 그 여자의 고장 난 물건을 고치는 남자의 관계 또한 거래보다는 소통과 위로의 한 방법처럼 그려진다.
소외된 사람들을 주목하는 이유에 관해 장 작가는 “소설은 결국 인물의 결핍을 찾아서 그걸 채워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약자나 소외된 사람, 겉도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결핍이 많을 것이고, 그 결핍을 채우다 보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울어본다’는 주인공과 함께 울어주는 오래된 냉장고를 통해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을 살피는 작품이다. 장 작가는 “소설을 쓰면서 많이 울었고, 지금도 울고 있다”며 “사는 게 힘들고 지칠 때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우는 일이 아닌가 싶다”고 슬픔의 이기는 울음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외진 곳’을 비롯해 ‘망상의 아파트’ ‘이층집’ 등 작품들에 등장하는 공간은 대부분 좁은 주거공간이다. 이 같은 설정은 작품에 현실감을 주는 중요한 요소다. 장 작가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쓰다 보면 상상을 많이 하게 된다”며 “집이란 사람이 사는 곳이므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 집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자신의 작품관을 밝혔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다소 어둡지만, 밑바닥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따뜻한 기운이 흐른다. 장 작가의 소설은 우리가 아무리 외진 곳에 있어도 그곳에 불이 켜지기를 먼 곳에서 바라는 사람이 존재할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장 작가는 “살면서 희망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사람은 작은 희망만 있어도 죽음 앞에서 돌아선다는 걸 배웠다”며 “인간의 삶은 결국 비극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서는 희망을 그리거나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장 작가는 “요즘 청년은 자기 연령대에 누릴 수 있는 청춘과 젊음을 너무 일찍 포기하는 암울한 세대인 것 같다”며 “젊은이가 젊지 않은 생각을 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인지 모르겠다”고 우려를 표했다.
소설 전반에서 느껴지는 현실감은 작품들이 장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장 작가는 “자전소설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요즘에는 작가와 소설은 완벽하게 분리될 수 없다는 걸 느낀다”며 “작가란 자기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쓰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고독을 감추려 하면서도 알아봐 주길 원하는 이중적인 심리에 주목하는 ‘안나의 일기’는 마치 비밀을 들킨 듯한 뜨끔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장 작가는 고독한 시간과 고독하지 않은 시간 모두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고독한 시간에 내면을 들여다보며 성장하고, 고독하지 않은 시간에는 누군가와 함께하며 또 성장합니다. 나이테처럼 그런 시간을 반복하며 살아내는 게 삶이 아닐까요.”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