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쉽게 나이 들지 않는가 보다. 한평생 사랑을 주제로 시를 써온 노시인에게 아직도 사랑에 관해 쓸 시어가 남아있음을 보면 말이다. 김남조(93) 시인은 새롭게 출간한 시집 ‘사람아, 사람아’(문학수첩)에서도 언제나 그래 왔듯이 사랑의 축복과 기쁨을 노래한다.
김 시인은 1950년 연합신문에 ‘성수’ ‘잔상’ 등을 발표하며 등단한 뒤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내면서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순수시인으로 활동해왔다. 이번 시집에는 ‘내 심장 나의 아가’ ‘종소리’ ‘환한 세상 아기’ 등 52편의 시가 담겨 있다.
김 시인은 지난해 한 포럼에 참석해 ‘삶의 축복’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며 “1000편 가까이 시를 썼는데, 가장 많이 쓴 건 사랑이었다”며 “사랑이라는 것은 모든 곳에 다 있는 것이고 음식에 소금이 필요하듯이 사랑이 없는 행동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등단 70년을 넘긴 김 시인은 이번 시집을 “나의 끝시집”이라고 말하며 오랜 세월 천착해 온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시 한 번 시어로 새긴다.
“사랑 안 되고/사랑의 고백 더욱 안 된다면서/긴 세월 살고 나서/사랑 된다 사랑의 고백 무한정 된다는/이즈음에 이르렀다/사막의 밤의 행군처럼/길게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그 이슬 같은 희망이/내 가슴 에이는구나/사랑 된다/많이 사랑하고 자주 고백하는 일/된다 다 된다”(‘사랑, 된다’ 전문)
이번 시집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김 시인의 “나는 시를 구걸하는 사람”이라는 고백이다. 생의 대부분을 시인으로 살아왔는데도 김 시인은 “나는 시인이 아니다”라고 부르짖는다. 김 시인은 ‘노을 무렵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적은 시인의 말을 통해 “백기 들고 항복 항복이라며 굴복한 일 여러 번”이라며 “시여 한평생 나를 이기기만 하는 시여”라는 말로 지난 삶을 되돌아본다. 아무리 오랜 세월 시를 써왔어도 시 앞에선 늘 패배자로 설 수밖에 없다는 노시인의 고백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