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파올로 조르다노 저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은행나무)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2. 17. 11:38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가 10만 명이 되지 않았던 시절에 쓰였지만, 지금도 곱씹어 읽어야 할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
어려운 비유 없이 심각한 사안을 설명해주고, 이와 동시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일례로 저자는 75억 인류를 구슬에 빗대 확진자가 어느 순간 급증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구슬 하나가 안정적으로 모여 있는 75억 개 구슬 중 하나와 전속력으로 부딪힌다.
부딪힌 구슬이 다른 두 구슬에 부딪히면, 두 구슬은 튕겨 나가 각각 다른 두 구슬과 거듭 부딪힌다.
이 같은 현상이 걷잡을 수 없이 반복되면서 75억 개 구슬 전체가 흔들리는 건 금방이다.
이미 다양한 뉴스를 접해 아는 내용인데도 사태의 심각성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는 문득 숫자 2가 몇 번 거듭제곱해야 인류의 숫자를 넘기는지 궁금해졌다. 
2가 33번 거듭제곱하자(85억8993만4592) 인류의 숫자를 넘겼다.
최악의 가정이지만, 1명의 감염자가 전 세계 인류를 감염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한 달여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는 코로나19 감염자가 평균 2.5명의 추가 감염자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왜 이동을 최소화해야 하는지 마음에 확 와닿았다.

저자는 펜데믹 시대에 연대감 부재는 상상력의 결여에서 온다고 지적한다.
75억 인류 각자의 행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전체 결과로 이어지는지 상상하기는 어려우니 말이다.
이 책은 인류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상상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책이다.
분량이 작아 가벼워 보이지만, 개인적인 선택을 할 때도 타인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화두를 던진다는 점에서 내용까지 가벼운 책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