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손더 장편소설 『시간도둑』(한끼)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5. 5. 21. 03:02



시간이 지나치게 빨리 흐른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달력을 살펴보며 깜짝 놀랐다.
벌써 5월 말이라고?
벌써 1년의 절반 가까이가 지나가 버렸다고?
제대로 한 일도 없는데 벌써?
혹시 내 시간을 도둑질하는 놈이 있는 건 아닐까?
이 작품은 그런 발칙한 상상에서 시작한다.

이 작품은 기발한 설정 위에 서 있다.
인간은 평행우주 일곱 곳에서 각각 살아가고 있고 200년의 시간을 공유한다. 
누군가가 의미 없이 쓴 시간을 회수해 보관했다가 죽음 이후에 쓸 수 있게 하는 '균형자'라는 존재가 있다.
더불어 누군가를 죽여서 그가 가진 시간을 회수하는 '처리자'라는 존재도 있는데, 이들은 '균형자'와 별개로 움직인다.
이 작품은 '처리자'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구하려고 애쓰는 '균형자'들의 개고생을 그린다.
내용과 결은 다르지만, 문목하 작가의 장편소설 『돌이킬 수 있는』이 떠올랐다.

분량이 상당한 작품인데, 주인공을 둘러싼 '균형자'와 '처리자'의 꼬리를 무는 추적이 긴장감 있게 펼쳐져 지루하지 않다.
죽은 자들이 삶이 끝난 뒤에 자기에 주어진 시간을 자기가 아닌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쓰는 모습도 감동적이다.

기억에 오래 남는 문장이 있다. 
"바쁘게 일한다고 의미 있는 시간은 아냐. 널 위해 쓰는 시간인지가 중요한 거지."
올해 들어와 내게 가장 의미 있었던 시간이 언제인지 헤아려봤다.
마당에 혼자 지은 원두막에 누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던 순간이 먼저 떠올랐다.
삶이 풍성해지려면 그런 기억이 많아져야겠구나.
책을 덮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