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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 번 들으면 끊을 수 없는 매력적인 ‘가시내들’ 바버렛츠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4. 6. 6. 13:42

지난 2월 김창기 쌤이 자신의 병원 지하 소극장에서 연 작은 콘서트에서 바버렛츠를 처음 봤다.

그날 처음보고 진짜 뜨악!! 대박이었다. 

이 '가시내들'은 그야말로 모든 세대와 국가를 넘어서 어필할 수 있는 매력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것도 순수하게 보편적인 음악의 정서와 목소리의 힘만으로 말이다.

곧 앨범을 발표한다더니 이제야 나왔다. 반갑다!!






첫 정규 앨범 `바버렛츠 소곡집 #1`을 발매한 인디 걸그룹 바버렛츠. 왼쪽부터 박소희, 김은혜, 안신애. [사진제공=에그플랜트]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지난 2월 22일 오후 서울 도곡동 생각과마음의원 지하 소극장에서 작지만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이 병원의 원장이자 동물원 출신 싱어송라이터인 김창기는 이날 가까운 지인들만을 초청해 지하 소극장에서 공연을 벌였다. 이날 공연은 병원 지하에 소극장이 마련된 이후 벌어진 첫 행사였다. 김창기를 비롯해 김광석의 대표곡 ‘서른 즈음에’를 만든 강승원, 동물원의 멤버 박기영 등 한국 포크 음악의 전설 같은 존재들이 객석과 무대를 허물없이 오가며 노래로 과거를 추억하는 등 가슴 찡한 풍경을 연출했다.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 하나만으로도 단독 콘서트가 가능할 만큼 중량급 뮤지션들이 즐비한 이 자리에서 가장 많은 환호와 박수를 받은 손님은 세 명의 젊은 ‘가시내들’이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화음을 조절하던 셋은 이내 탁월한 화음으로 복고풍의 멜로디를 들려주며 객석을 사로잡았다. 함께 무대에 오른 강승원의 얼굴에선 사람 좋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객석의 손님들 역시 같은 표정으로 무대에 집중했다. ‘가시내들’은 자신들을 인디 걸그룹 바버렛츠(The Barberettes)라고 소개하며 곧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바버렛츠는 첫 정규 앨범 ‘바버렛츠 소곡집 #1’으로 가요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앨범에는 과거를 박제시키지 않고 현재와 절묘하게 조화시킨 그야말로 ‘끝내주는’ 음악들이 담겨 있었다. 지난 5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바버렛츠의 멤버 안신애, 김은혜, 박소희를 만났다.

▶ 입소문만으로 명성 얻은 탁월한 목소리들= 우리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이발소 언니들’이란 의미를 가진 독특한 그룹명에 대해 안신애는 “오래 전 미국에서 이발소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는데, 그곳에서 모인 사람들 사이에 시작된 아카펠라가 ‘바버샵(barbershop) 아카펠라’”라며 “우리의 롤모델이자 1950년대 말 미국에 진출해 현지인들을 사로잡았던 3인조 여성 보컬 그룹 김시스터즈처럼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을 선보이고 싶은 의지를 그룹 이름에 담았다”고 밝혔다.

그룹 결성은 우연처럼 이뤄졌다. 바버렛츠는 지난 2012년 더 코데츠(The Chordettes)의 ‘미스터 샌드맨(Mr. Sandman)’을 아카펠라로 불러보고 싶어 모인 멤버 셋의 스터디 그룹 차원에서 시작됐다. 이들을 눈여겨 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노영심으로부터 무대에 서볼 것을 권유 받아 게스트로 곳곳에 올랐는데 반응이 ‘대박’이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오가는 이태원과 홍대 클럽부터 동네 어르신들의 잔치까지 모든 곳이 바버렛츠의 무대였다. ‘비 마이 베이비(Be My Baby)’ 같은 50~60년대 스탠더드와 옛 가요부터 TLC 같은 90년대 팝까지 목소리만으로 새롭게 풀어내는 이들의 실력은 앨범을 내기 전부터 입소문을 타고 공연계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특히 동영상 경연 사이트 ‘vube.com’에 게시된 바버렛츠의 ‘비 마이 베이비’ 영상은 조회 수 500만 건을 넘기며 큰 인기를 끌었다.


안신애는 “그룹으로 활동하려는 계획이나 앨범을 내려는 계획은 없었고 반향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는데 점점 우리를 불러주는 곳이 늘어나 일이 커졌다”며 “처음에는 주한 외국인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는 순수 외국인들의 관심이 늘어났고, K팝을 다루는 거의 모든 외국 사이트들이 우리의 음악을 비중 있게 다루는 모습을 보고 고무됐다”고 전했다.

▶ 복고와 현대적 요소의 절묘한 줄타기= 이번 앨범에는 주 멜로디를 부르는 보컬을 중심으로 새침하게 치고 빠지는 화음이 매력적인 곡으로 김용택 시인이 바버렛츠를 부르는 애칭에서 제목이 유래한 타이틀곡 ‘가시내들’을 비롯해 스윙감이 넘치는 흥겨운 로큰롤 ‘쿠커리츄’, 악기 없이 목소리만으로 층층이 정교하게 쌓아올린 화음의 조화가 압권인 ‘한여름 밤에 부는 바람’과 이와 극적으로 이어지는 현악 4중주의 선율이 돋보이는 연결곡 ‘한여름 밤의 꿈’, 우리의 전통 노동요와 흑인 블루스의 정서가 이물감 없이 화학적으로 어우러지는 ‘비가 오거든’, 50년대 팝 블루스의 정서를 우아한 현악 편곡과 절제된 보컬로 담아낸 ‘미시즈 론리(Mrs. Lonely)’ 등 9곡이 실려 있다. 특히 ‘쿠커리츄’는 안신애가 뉴질랜드 여행 중 만난 영국 출신 재즈 싱어송라이터 코진 엘리스(Cousin Alice)가 선물한 곡이어서 눈길을 끈다.

안신애는 “당시 우연한 기회에 엘리스에게 바버렛츠의 공연 동영상을 보여줬는데 즉석에서 ‘쿠커리츄’를 선물해줬을 정도로 우리의 음악을 좋아해줘 용기를 얻었다”며 “당시 함께 선물 받은 영어가사는 한글가사 버전과는 다른 편곡으로 마지막 트랙에 실었는데 마지막 부분의 애드리브를 주목해 들으면 더욱 즐거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초 이 앨범은 지난 4월 미니앨범으로 발매될 예정이었지만 세월호 참사로 인해 일정이 미뤄졌는데, 미뤄진 기간 동안 다음 미니앨범에 넣으려고 했던 ‘한여름 밤에 부는 바람’ ‘한여름 밤의 꿈’ ‘비가 오거든’ 등의 곡을 추가해 정규 앨범으로 만들었다”며 “결과적으로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더 충실한 앨범이 나왔다는 점에서 전화위복이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앨범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 중 하나는 사운드의 질감이다. 바버렛츠는 디지털로 녹음한 음원을 아날로그 릴테이프에 담아 다시 하나하나 재생해 새롭게 곡을 녹음했다. 그 결과 50~60년대 팝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깊은 질감의 사운드를 연출할 수 있었다. 여기에 선우정아, 아스트로비츠, 밴드 옥수사진관의 김대홍, 홍준호 등 실력파 뮤지션들과 연주자들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이들은 편곡과 녹음 등 기술적인 면에서 음악이 복고에 치우치지 않고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는데 힘을 보탰다. 

안신애는 “주변에 운이 좋게도 바버렛츠를 아껴주는 뮤지션들이 많았고 그들 덕분에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며 “특히 고교 시절부터 오랫동안 친분을 쌓은 각별한 사이인 선우정아는 편곡에 있어서 세부적인 부분에 많은 조언을 해줬다”고 전했다.


▶ 세계시장 노리는 당당한 ‘인디 걸그룹’= 바버렛츠는 ‘인디 걸그룹’을 자처하고 있다. 자칫 뻔해 보일 수 있지만 이 수식어는 이들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직접 대부분의 곡을 만들고 무대 의상과 헤어스타일까지 챙기는 걸그룹은 바버렛츠뿐일테니 말이다. 

안신애는 “우리가 음악 말고 제일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머리 파마”라며 “자본으로부터 독립이라는 의미를 가진 ‘인디’ 정신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이상 ‘인디 걸그룹’은 수식어는 결코 시쳇말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유일무이한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바버렛츠는 다음 달 6일 오후 3ㆍ7시 2회에 걸쳐 서울 서교동 벨로주에서 앨범 발매 기념 단독 콘서트를 벌일 예정이다. 바버렛츠는 걸그룹 역사상 최초로 KBS 1TV ‘가요무대’에 출연해보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향후 목표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내보였다.

바버렛츠는 “‘쿠커리츄’의 가사는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는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이야’라는 문구에서 출발했고 또 우리의 진심”이라며 “우리의 최종 목표는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이고 이번 앨범은 그 시작”이라고 자신했다.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가시내들’의 무대 앞에 아류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이들의 호기는 결코 호기로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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