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왕' 연재 이후 어떻게 꽃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번 편은 그 대답이자 나를 들꽃의 세계로 이끈 구슬봉이에 대한 찬사이다.
<식물왕 정진영> 9. ‘구슬봉이’는 무채색의 세상을 깨우고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기자가 ‘식물왕 정진영’을 연재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그렇게 많은 들꽃들을 어떻게 다 알아요?”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허세를 담아 고전 논어(論語)의 ‘학이(學而)’ 편을 인용하겠습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
기자가 들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지난 2003년 이맘 때 만난 한 작은 꽃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똑딱이(콤팩트 디지털 카메라)’를 대체했지만, 그 시절엔 ‘똑딱이’도 꽤나 귀한 물건이었죠. 당시 처음 ‘똑딱이’를 마련한 기자는 렌즈에 담을 무언가를 찾는데 혈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아직 겨울의 때를 제대로 벗지 못해 무채색이더군요.
사진 설명 : 대전 대덕구 송촌동 정수사업소 부근에서 촬영한 구슬봉이.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하릴없이 땅을 보며 걷던 기자의 눈에 하늘빛을 가진 조그만 무언가가 들어왔습니다. 겨우내 삭은 낙엽을 뚫고 올라온 작은 꽃 한 송이. 그 들꽃이 기자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접사로 꽃을 촬영한 뒤 가까운 서점에서 식물도감을 뒤져 녀석의 신원을 파악했습니다. 이름은 구슬봉이. 쌍떡잎식물 용담목 용담과의 두해살이풀. 생김새처럼 앙증맞은 이름이었습니다.
기자는 다음 날 다시 구슬봉이와 만난 장소를 찾았습니다. 그곳의 세입자는 구슬봉이만이 아니었습니다. 냉이, 꽃다지, 봄맞이꽃……. 기자가 몰랐던 이 작고도 넓은 세상에선 이미 봄이 한창이었습니다. 그 순간 무채색의 세상이 총천연색으로 일어서더군요. 구슬봉이의 꽃말은 ‘기쁜 소식’입니다. 꽃말은 절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십수년을 보내오는 동안 기자에게 새로운 들꽃들과 만나 친구의 연을 맺고, 익숙한 들꽃들과 재회의 인사를 나누는 일은 중요한 일상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만만치 않은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며 외로움이 물컹 만져질 때마다, 들꽃은 기자에게 말없이 위로가 돼줬죠.
오늘은 ‘불금’입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퇴근길에 잠시 길가를 들여다보시죠. 풋기가 도는 곳에는 어김없이 색이 번지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 사옥 가까운 곳에선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피어난 노란 민들레와 하얀 별꽃이 눈에 띄더군요. 여러분의 일터 가까운 곳에는 어떤 꽃이 피어있나요? 들꽃은 즐거운 중독입니다.
123@heraldcorp.com
'식물왕 정진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식물왕 정진영> 11. ‘영춘화’가 묻는다 “내가 아직도 개나리로 보이니?” (0) | 2015.04.04 |
---|---|
<식물왕 정진영> 10. 봄을 물고 도시의 빈틈으로 날아온 ‘제비꽃’ (0) | 2015.03.27 |
<식물왕 정진영> 8. 겨울의 끝에서 봄의 불을 밝히는 ‘동백’ (0) | 2015.03.13 |
<식물왕 정진영> 7. 개구리도 깨어났으니 ‘봄맞이꽃’ 보러가자 (0) | 2015.03.05 |
<식물왕 정진영> 6. 우리는 ‘산수유꽃’ 그늘 아래서 봄의 춤을 춘다 (0) | 2015.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