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010 김본 소설집 『라디오 스타가 사라진 다음에는』(문학동네) 읽은 지 두 달이 넘은 소설집인데, 뭐라도 한 줄 끼적이지 않으면 읽었다는 기억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역시나 읽었다는 기억 외엔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래도 한 가지 감각만은 확실하게 남아 있다. 우리 가족이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살았던 대전직할시 대덕구 오정동의 반지하 빌라. 당시 우리 가족은 신축이었던 그 반지하 빌라로 이사 오며 오랜 셋방살이에서 벗어났다. 내 평생 가장 걱정 없이 편안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던 시절이었다. 사실 그 정도로 걱정 없고 편안했던 시절은 아닐 텐데, 반지하 빌라를 떠난 뒤 집이 폭삭 망해버려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반지하 빌라는 오랫동안 아버지의 소유였다가 2023년에 팔렸다. 1990년에 3000만 원에 산 집이 33.. 2026. 4. 5. 정해연 장편소설 『매듭의 끝』(현대문학) 작가의 베스트셀러 『홍학의 자리』만큼 빨리 페이지가 넘어갔다. 예상할 수 있는 반전이었고, 결말 또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일그러진 모성애와 또 다른 모성애, 반전에 반전이 겹겹이 쌓이다가 터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어머니란 자식에게 어떤 존재이고, 그 모성의 빛나는 조명 아래에 얼마나 짙은 그림자가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지점이 많았다. 모성이 깊어질수록 자식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란 쉽지 않은 걸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2026. 3. 14.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창비) 지난해 봄에 산 책을 이제야 읽었다. 2025년 한국 문학에서 최고의 화제작이었는데도 이상하게 손이 가질 않았다. 너도나도 읽으니 유행에 편승하고 싶지 않은 청개구리 같은 심리 때문이었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해가 바뀐 요즘에도 이 책은 여전히 베스트셀러이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 위치에서 내려올 일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펼쳤다. 내가 장편소설을 선호하는 이유는 재미 때문이다. 단편으로만 채워진 소설집을 읽고 "잘 썼네"라는 기분은 많이 느껴봤지만, "재미있네"라는 기분을 느껴본 적은 드물다. 단편을 그리 선호하지도 않는 편이기도 하고. 이 소설집은 잘 썼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재미있었다. 소재도 매우 다채롭고 가독성까지 좋은데 얄팍하지 않았다. 한국 문학에 으레 등장하는 소재(페미, 퀴어 등)가 전면에.. 2026. 1. 21. 조예은 소설집 『치즈 이야기』(문학동네) 20년 전쯤의 일이다. 대형마트에서 호기심에 이끌려 고르곤졸라 치즈를 샀다. 『맛의 달인』 『아빠는 요리사』 등 음식 만화에 빠져 있던 시절이어서, 돈은 없어도 낯선 식재료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시절이었다. 고시원에서 처음 맛본 고르곤졸라의 맛은... 썼다. 다른 치즈보다 꽤 비싼 편이어서 기대했는데 크게 실망했다. 고르곤졸라 피자가 맛있다는 소문은 헛소문이었다는 말인가... 비싼 물건이어서 차마 버리진 못하고 냉장고에 방치했다. 출출했던 어느 날, 문득 남은 고르곤졸라로 야마 고르곤졸라 피자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슈퍼에서 만두피를 사 온 뒤 그 위에 고르곤졸라를 조금 올리고 전자레인지로 데워봤다. 고시원 주방에 고릿고릿한 냄새가 퍼졌다. 조리를 마친 야매 고르곤졸라 피자의 맛.. 2026. 1. 19. 손원평 장편소설 『젊음의 나라』(다즐링) 작가의 전작인 『튜브』를 읽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터라, 이 작품을 사다 놓은 지 꽤 됐는데도 펼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새해 첫날에 사다 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을 뒤적거리다가 이 작품을 펼쳤다. 첫 목차가 1월, 마지막 목차가 12월이란 점이 눈에 띄었다. 1월 1일부터 일기장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의 형식이 흥미로워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올해 처음으로 완독한 책이 됐다. 무섭고 잔인한 장면은 하나도 없는데 섬뜩했다. 고령화와 저출생 때문에 활력을 잃은 대한민국 사회의 풍경, 급격한 기술의 진보에 따른 AI의 일상화, 노인을 향한 극단적인 혐오, 다문화 가정을 향한 차별, 존엄사 등 현재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 벌어질지 모를 온갖 사회 문제의 종합 선물 세트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이 가장 아프게 파고.. 2026. 1. 6. 김홍 장편소설 『말뚝들』(한겨레출판) 시도해 보진 않았지만, 전국의 희석식 소주를 모아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보해 '잎새주' 하나는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위스키로 테스트하면 다른 건 몰라도 피트 위스키는 걸러내 '탈리스커' 아니냐고 아는 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소설로 테스트한다면 어떨까? 여성 작가 중에선 아리까리하지만 최정나 작가를, 남성 작가 중에선 확실하게 김홍 작가를 걸러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김홍은 김홍'이라고 감탄했다. 작품의 소재는 사람이 죽어서 바다에 꽂혀 있는 말뚝인데, 왜 말뚝이고 왜 거기에 꽂혀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설명도 없다. 느닷없이 말뚝들이 바다에서 나와 거리에 등장하고, 광장에 등장하고, 회사에 등장하고, 주인공의 집에도 등장하는데, 말뚝을 목격한 사람들은 하.. 2025. 12. 31. 2025년 12월 5주차 추천 앨범 ▶서울 전자 음악단 [Anthology 1] ▶하임 [FLOW FORM] ▶검엑스 [SLAPS] 2025. 12. 28. 강화길 장편소설 『치유의 빛』(은행나무) 많은 인물과 많은 이야기가 어지럽게 뒤엉켜 있어 따라가기 어려웠다. 작가의 생각을 알고 싶어 수시로 지나간 페이지를 살피다가 포기했다. 이야기보다는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았다. 몸으로 겪는 고통과 수치심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으며,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 고통의 원인을 찾아내면 고통, 수치심,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제목의 뉘앙스와 달리 이 작품 속 주인공들은 딱히 치유받지 못한 것 같다. '해리'가 '지수'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사람들은…… 다…… 자기만 아프다고 생각해."(368p)라는 말이 이 작품을 잘 요약한 한 줄 아닌가 싶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2025. 12. 24. 2025년 12월 4주차 추천 앨범 ▶솔루션스 [우화] ▶강허달림 [강허달림 20th] ▶전자양 [합주와 생활] * 살짝 추천 앨범 ▶이윤주 [선명해진 일기장] ▶카더가든 [Blue Heart] ▶낚싯대와 곰방대 [호랑이와 곶감] 2025. 12. 21. 이전 1 2 3 4 ··· 2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