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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섬·김진경 인터뷰 에세이 『난파선의 선장들』(어크로스) 삶에서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단 두 가지다. 하나는 지금 우리가 숨 쉬고 살아있다는 사실, 다른 하나는 언젠가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 우리는 대체로 이를 잊고 살아가지만, 이 두 가지 진실은 불시에 삶의 궤도를 흔들어 놓곤 한다. 이 책은 지난해 갑작스럽게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으며 삶이라는 배가 난파되는 위기를 맞은 독서 플랫폼 '그믐'의 김새섬 대표와 스위스에 거주하는 김진경 작가가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죽음에 관해 함께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두 저자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 등 다양한 책 속에 담긴 문장을 매개로 물리적인 거리를 무색하게 만드는 깊은 대화를 나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개인적 경험이 겹쳤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 2026. 10. 6.
한소범 산문집 『독자 되는 법』(유유)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어떻게 책을 좋아하게 됐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될 책. 독서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어도, 완독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줄 책(얇은데 내용까지 얇지는 않다). 목차별로 자신은 어떤 독자인지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1. 양서와 양서 아닌 것이 따로 있다? 세상에 나쁜 술은 없고, 좋은 술과 더 좋은 술만 있을 뿐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나쁜 책은 없고, 좋은 책과 더 좋은 책이 있다고 생각한다. 2. 책 읽을 시간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책은 시간이 있어서 읽는 게 아니라, 읽는 시간을 만들어야 읽을 수 있다는 작가의 의견에 동의한다. 독서는 꽤 큰 결심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3. 많이, 빠르게 읽기 vs 느리게, 제대로 읽기 예전에는 많이 빠르게 제대로 읽.. 2026. 9. 27.
윤고은 장편소설 『테니스나무』(문학동네) 책 뒤표지에 실린 정이현 작가의 추천사 중 '사회파 연애소설'이라는 문구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사회파'와 '연애소설'이 과연 공존할 수 있는 단어인지 의문을 품은 채 책을 열었는데, 덮을 때는 정말 기가 막힌 공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 사회면에서나 읽을 법한 다양한 사건을 엮어 묵직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지극히 사적인 로맨스를 풀어낼 수 있다니. 윤고은 작가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충분히 존재할 법한 이야기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능청스럽게 상상하고 펼쳐내는 작가다. 이 작품의 배경은 지금보다 AI가 우리 삶에 한층 깊숙이 침투한 근미래의 대한민국이다. 주인공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30대 후반 여자와 인턴으로 일하는 20대 중반 남자다. 생존배낭을 만드는 회사의 직원인 여자는 미래를 바라.. 2026. 9. 23.
박문구 장편소설 『너나』(예서) 소설을 읽을 때는 같은 주제를 다룬 작품이 있으면 일부러 함께 읽곤 한다. 같은 주제를 서로 다른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해서다. 마침 나란히 비교하며 읽기 좋은 작품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40대 여성인 윤고은 작가가 쓴 연애소설 『테니스나무』였고, 하나는 70대 남성인 박문구 작가가 쓴 연애소설인 이 작품이었다. 후자가 조금 더 흥미로워서 먼저 페이지를 펼쳤다. 그 연배에 신작을, 그것도 연애소설을 내는 작가는 천연기념물처럼 귀하니까. 타임머신을 타고 80년대 심야극장의 한가운데 좌석에 뚝 떨어져 홀로 고풍스러운 멜로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주제인 목숨을 건 사랑(그것도 윤리적으로는 금지된 사랑)이 잃어버린 일종의 낭만처럼 느껴졌.. 2026. 9. 23.
박상영 장편소설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래빗홀) 작가의 소설집과 장편소설, 산문집까지 전작을 따라 읽어온 독자로서 그에 대한 신뢰는 견고한 편이다. 퀴어라는 소재를 특수한 영역에 가두지 않고 보편적이면서도 애틋한 감정으로 끌어올리는 특유의 필력에 매번 감탄해 왔으니 말이다. 단 한 번도 실망을 안기지 않았던 작가이기에,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대기업의 막전막후를 다룬 이 작품을 펼쳐 들 때의 기대감 역시 컸다. 작품은 실제 사건들과 기업사를 오버랩하며 생생한 현장감과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특히 작가의 드라마 각본 작업 경험이 반영된 듯한 시각적 구성은 시대극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나 역시 내 소설을 맛보기로나마 드라마로 각색해 본 경험이 있기에, 작가가 대놓고 영상화를 노리고 썼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2026. 9. 13.
천명관 장편소설 『아코디언』(창비) 작품의 주무대는 한국전쟁 이후 살아남기 위해 거리로 내몰린 어린 앵벌이들의 연명하는 서울의 거리다. 작가는 그 폐허 속을 헤집어 당대 서울의 남루한 풍경과 코를 찌르는 악취, 처참한 생존 투쟁을 생생하게 복원해 낸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밑바닥 삶의 고통과 슬픔이 느껴져 가슴이 답답하고 처참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언젠가 소설을 읽고 이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는데, 어떤 작품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였다. 19세기 런던의 어두운 뒷골목을 헤매던 불우한 아동들의 초상이 전쟁 직후 서울의 거리 위로 겹치며 곳곳에서 강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도덕적 구원이나 극적인 인생역전의 판타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구원의 손길을 기대할 수.. 2026. 9. 12.
소향 장편소설 『모방소녀』(텍스티) 사건 전개가 대단히 빠르고 적재적소에 배치된 반전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잘 만든 서스펜스 드라마를 보듯 머릿속에 시각적 이미지가 입체적으로 펼쳐져, 앉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 읽을 수 있었다.이 소설의 중심 주제는 학벌지상주의다.읽는 내내 자연스럽게 드라마 을 떠올리게 되지만,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학부모가 아닌 '학생'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 시선의 재미를 안겨준다.그렇다고 이 작품의 매력이 속도감과 재미에만 머물지는 않는다.누군가를 모방하는 자와 그 모방의 대상이 되는 자 사이의 심리를 대조하는 묘사는 숨 막히는 긴장감을 자아낸다.결핍이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비틀어놓는지, 보여지는 삶에 집착하는 태도가 영혼을 어떻게 좀먹어 들어가는지에 대한 작가의 의식이 대단히 예리하다.작중 인물 중.. 2026. 9. 11.
김호연 장편소설 『서울의 선인』(위즈덤하우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다분히 종교적이거나 오컬트적인 요소를 다룬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초반부에는 미스터리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은근히 자아내며 의심과 호기심을 동시에 유발한다. 그러나 중후반으로 넘어가면 역시나 특유의 유쾌하고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김호연 표' 소설로 차분히 귀환한다. 전작들처럼 인물들의 세밀한 심리 묘사에 서울 곳곳을 포착해 낸 현장감이 더해졌다. 초반부에 치밀하게 깔아놓은 복선들을 후반부에 모두 자연스럽게 회수하여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전개도 여전하다. 작가의 전작 『망원동 브라더스』와 『파우스터』를 뒤섞어 놓으면 이 작품의 결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불편한 편의점』이나 『나의 돈키호테』처럼 처음부터 따스하고 다정한 분위기만을 기대하며 페이지를 펼쳤.. 2026. 9. 11.
문지혁 장편소설 『나이트 트레인』(현대문학) 이 작품을 읽는 내내 17년 전 여름에 걸었던 1번 국도를 떠올렸다. 작품 속 주인공은 유럽 여러 나라의 도시를 넘나들지만, 나는 며칠 동안 1번 국도를 걸으며 몇몇 지자체의 경계만을 겨우 넘었다. 주인공에게는 여러 동행이 있었지만, 내겐 동행이 없었다. 공통점이라고는 '여행'이라는 키워드뿐이지만,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기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1번 국도를 걸었던 그 지난한 여행이 내가 소설을 쓰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실연이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모호한 상처를 안고 떠난 주인공은 여행을 통해 내면을 정리하려 하지만, 계획은 좀처럼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낯선 곳에서 의도치 않게 여러 사람과 얽히는 동안 주인공은 끊임없이 자신의 진짜 얼굴과 대면한다. 내가 1번 국도의.. 2026. 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