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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추천35

장강명 산문 <미세 좌절의 시대>(문학동네) 꽤 많은 글이 구면이어서 반가웠다. 가장 공감하며 읽은 글은 '제정신으로 살기 위하여', '불편함이 도덕의 근거가 될 때', '나는 왜 보수주의자인가', '대한민국 주류 교체와 두 파산', '저출생 대책을 넘어서' 등이었다. 작가는 편을 가르는 선동만 넘쳐나는 현상에 관해 우려하고, 우리 사회에 도덕적 감수성이나 공감 능력보다 합리적 이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반대 진영을 제거 대상으로 보는 극단적인 시각을 경계한다. 보수를 현실주의라고 보는 작가의 시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읽고 "맞아 맞아!"라며 동의하는 독자도 많고, 불편함을 느낄 독자도 많을 것이다. 특히 후자는 뭔가 반박하고 싶긴 한데, 논리적으로 반박할 게 마땅치 않아서 식식대지 않을까 싶다. 상식적인 시각으로 상식적인 논리를 담.. 2024. 4. 5.
김혜자 산문집 <생에 감사해>(수오서재) 나는 평소에 관심이 있었어도 남들이 관심을 가지면 바로 흥미를 잃어버리는 청개구리다. 일례로 나는 2010년대 중반부터 마라샹궈를 직접 요리해 먹을 정도로 마라를 즐겼는데, 몇 년 사이에 마라 열풍이 불면서 흥미를 잃었다. 책도 마찬가지여서 베스트셀러는 어지간해선 구입하지 않고, 구입하더라도 잘 읽지 않는다. 정지아 작가의 장편소설 ,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 , 김연수 작가의 소설집 등이 사놓고도 읽지 않은 대표작이다. 이런 심보로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를 뒤늦게 읽었다가 크게 후회했었지. 아무튼 심술 맞은 내게 지난해 베스트셀러로 큰 화제를 모았던 이 산문집이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지난해 내내 서재에 방치돼 있었다. 지난해 가족이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장에 들를 일이 많아서였을까. 최근에 이상하게 .. 2024. 1. 2.
이혁진 장편소설 <광인>(민음사) 이 작품이 2023년에 읽는 마지막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모로 놀라운 소설이다. 작가가 장편소설 로 데뷔했을 때, 이제 한국 문학계에도 이렇게 훌륭한 기업소설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동명의 드라마로도 제작된 작가의 출세작 를 읽었을 땐 섬세한 연애담과 감정선을 현실과 기막히게 엮어 기업소설의 범위를 넓히는 필력을 보고 감탄했었다. 하지만 나는 작가를 기본적으로 사회파 소설가로 여겨왔기 때문에, 이렇게 대놓고 치명적인 연애소설을 써서 내놓을 줄은 몰랐다. 이 작품은 돈에 미쳐 살아온 남자 '해원', 위스키 제조에 미친 여자 '하진', 음악에 미친 남자 '준연'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로를 존경하고 사랑했지만 마침내 미워하고 증오하며 광기로 물들고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린다. 제목처럼 그야말로 미친 .. 2023. 12. 29.
김하율 장편소설 <이 별이 마음에 들어>(광화문글방) 1978년 대한민국 서울에 불시착해 여공으로 살아가는 외계인. 설정만으로도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흥미롭지 않은가. 설정만 보면 SF스럽지만, 이 작품은 이방인의 시선으로 과거 대한민국의 열악한 노동 현실이 요즘에 어떤 형태로 반복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노동소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읽기에 무거운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경쾌하고, 심지어 웃기다. 주인공이 떠나온 행성의 생존 매뉴얼에 따르면, 낯선 행성에 불시착했을 때 생존율을 높이는 방법은 그 행성에서 가장 고등한 생명체로 변신하기다. 하필 주인공이 맨 처음 마주친 고등 생명체는 여공이었고, 주인공은 가장 평균적인 모습을 가진 여공으로 변신해 공장에 스며든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그야말로 미친 학습 능력을 발휘해 말도 안 되는 단기간에 시다, 미싱사를 거쳐 .. 2023.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