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간소설66

최하나 장편소설 <반짝반짝 샛별야학>(나무옆의자) 인생의 황혼에 들어선 뒤에야 다시 공부를 시작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나는 배우고 싶었는데도 배우지 못한 사람의 한스러운 마음을 조금은 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랬으니까. 어머니는 생전에 내게 자주 국민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어머니가 만약 살아계셨다면 올해 66살(한국 나이)이었을 텐데, 공교롭게도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들의 나이와 비슷하다. 할머니들을 어머니라고 생각하면서 소설을 읽으니 몰입감이 높았다. 뒤늦게 배움의 길에 들어선 할머니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면 뭔가 감동적이고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이 작품이 마냥 감동적이거나 따뜻한 작품이 아니라서 좋았다. 소설 속에 펼쳐지는 갈등이 날것의 느낌을 줘서 실감 났다. 연장자의.. 2024. 4. 5.
이혁진 장편소설 <광인>(민음사) 이 작품이 2023년에 읽는 마지막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모로 놀라운 소설이다. 작가가 장편소설 로 데뷔했을 때, 이제 한국 문학계에도 이렇게 훌륭한 기업소설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동명의 드라마로도 제작된 작가의 출세작 를 읽었을 땐 섬세한 연애담과 감정선을 현실과 기막히게 엮어 기업소설의 범위를 넓히는 필력을 보고 감탄했었다. 하지만 나는 작가를 기본적으로 사회파 소설가로 여겨왔기 때문에, 이렇게 대놓고 치명적인 연애소설을 써서 내놓을 줄은 몰랐다. 이 작품은 돈에 미쳐 살아온 남자 '해원', 위스키 제조에 미친 여자 '하진', 음악에 미친 남자 '준연'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로를 존경하고 사랑했지만 마침내 미워하고 증오하며 광기로 물들고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린다. 제목처럼 그야말로 미친 .. 2023. 12. 29.
김초엽 장편소설 <파견자들>(퍼블리온) 언젠가 우리 모두가 별의 자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었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은 모두 별에서 왔고, 인간은 그 물질이 우주적 시간 기준으로 찰나 동안 모여있다가 흩어지는 존재에 불과하며, 언젠가 다시 어느 별의 일부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 태양은 항성 규모에 비해 중원소 함량이 높은데, 태양보다 먼저 그 자리에 있던 '퍼스트 스타'가 소멸한 뒤 만들어진 중원소가 태양의 재료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읽은 일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사라지지 않는 수많은 원자가 별을 통해 순환하는 과정의 일부에 불과할 테다. '창백한 푸른 점' 위에 우연한 계기로 결합한 물질 덩어리에 불과한 인간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자아로 살아간다는 건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기운이 빠졌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 2023. 12. 21.
정세랑 장편소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문학동네) 현재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소설가 중에서 가장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를 한 명만 꼽자면 정세랑 작가를 꼽겠다. 같은 장르 소설은 물론 같은 성장소설, 처럼 현대사와 여성 서사를 훌륭하게 엮은 장편소설까지. 특히 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한국 소설을 통틀어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한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소재를 자유롭게 다루고 심지어 잘 쓰는지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짜증 날 때가 많다. 물론 질투 섞인 칭찬이다.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진심으로 기다리는 몇 안 되는 작가인데, 역시 예상치 못한 장르의 소설로 뒤통수를 친다. 역사 추리소설이라니. 그것도 통일신라를 배경으로 다룬. 이 작품은 당나라 유학파 출신인 육두품 가문 남장여자가 신라의 수도 금성으로 돌아와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 2023.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