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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46

앤설로지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문학동네) 월급사실주의의 세 번째 동인지다. 첫 번째, 두 번째 동인지가 그랬듯이 이번에 참여한 작가 모두 새 얼굴이다. 첫 번째 동인지는 분량과 내용이 다소 무거워 한 번에 읽기 버거웠던 반면, 두 번째 동인지는 다소 가벼워지고 읽는 재미도 쏠쏠하게 진화했다. 세 번째 동인지는 두 번째 동인지보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재미만 놓고 보면 지금까지 나온 월급사실주의의 동인지 중 최고다. 참여 작가 역시 빵빵하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여럿 목격했다. 온라인 게임의 화폐나 아이템을 현금으로 환전해 생계를 유지하는 게이머를 통해 청년 실업 문제마저 도둑맞는 현실을 꼬집고(쌀먹:키보드 농사꾼), 정치적 올바름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해외의 근로 현장을 들여다보며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올바른 크리스마스). 직업이.. 2025. 6. 24.
김지연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문학동네) 표제작에서 소설집의 제목을 따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집은 따로 지은 제목을 달고 있어서 신선했다. 『조금 망한 사랑』보다는 『조금 망한 인생』이라는 제목이 더 낫지 않았을까. 뒤늦게 다시 펼쳐 끝까지 읽고 난 뒤 떠오른 생각이다. 하지만 『조금 망한 인생』이었다면 이 소설집의 인상이 꽤 달라졌겠지. 그래. 『조금 망한 사랑』이 낫겠다. 수록작 중 「반려빚」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 소설집 속 등장인물은 대체로 돈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다. 산재에 교통사고에 전세사기에 자연재해까지... 그중에서도 「반려빚」이 가장 노골적이다. 가깝고 친밀한 사이에서 벌어지는 금전 문제와 여기에 얽히고설킨 감정 문제를 엮어서 풀어내는 방식이 능청스럽다. 제목부터 '반려'에 '빚'을 더한 조어다. 어울리지.. 2025. 6. 17.
천선란 소설집 『모우어』(문학동네) 표지처럼 따뜻하면서도 몽환적이다.서사보다는 이미지가 강렬하다.작가의 전작과 비교해 난해해서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작가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독성이 가장 떨어진다.그러다 보니 처지는 기분이 들어 후반부에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이미지만 느끼며 스쳐 지나갔다.그래도 보물은 있다.염장이 안드로이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뼈의 기록」이 그런 작품이었다.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보다 더 인간다워 보이는 연출은 흔하긴 해도 가슴을 치는 무언가가 있다.안드로이드가 생전에 친분을 나눴던 장례식장 청소부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염을 치르는 모습을 볼 때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사람은 저마다 살아온 삶을 통해 다른 뼈 모양을 가지게 되며, 인간이 생을 다할 때까지 성장하고 변형된다는 메시지가 뒤통수를 쳤다... 2025. 6. 16.
김유진 장편소설 『평균율 연습』(문학동네) 소설 제목을 보면 어떤 이야기를 담은 작품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는데, 이 작품 앞에선 짐작이 모두 빗나갔다. 나는 이 작품이 피아노 연주자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소재로 다룬 장편소설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주인공의 직업이 편집자여서 짜게 식었다. 작품의 주인공이 작가이거나, 출판사 관계자이거나, 대학 관계자면 한숨부터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한국 작가들의 경험치와 시야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기대감을 완전히 내려놓고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는데, 짜게 식었던 마음이 슬슬 사라졌다. 피아노 조율사로 전직을 준비하는 편집자에 관한 이야기였고, 직업 묘사가 대단히 디테일해 놀랐다. 나는 피아노는 몰라도 기타는 오랫동안 만져왔기에, 이 작품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2025.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