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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141

최하나 장편소설 <반짝반짝 샛별야학>(나무옆의자) 인생의 황혼에 들어선 뒤에야 다시 공부를 시작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나는 배우고 싶었는데도 배우지 못한 사람의 한스러운 마음을 조금은 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랬으니까. 어머니는 생전에 내게 자주 국민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어머니가 만약 살아계셨다면 올해 66살(한국 나이)이었을 텐데, 공교롭게도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들의 나이와 비슷하다. 할머니들을 어머니라고 생각하면서 소설을 읽으니 몰입감이 높았다. 뒤늦게 배움의 길에 들어선 할머니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면 뭔가 감동적이고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이 작품이 마냥 감동적이거나 따뜻한 작품이 아니라서 좋았다. 소설 속에 펼쳐지는 갈등이 날것의 느낌을 줘서 실감 났다. 연장자의.. 2024. 4. 5.
이혁진 장편소설 <광인>(민음사) 이 작품이 2023년에 읽는 마지막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모로 놀라운 소설이다. 작가가 장편소설 로 데뷔했을 때, 이제 한국 문학계에도 이렇게 훌륭한 기업소설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동명의 드라마로도 제작된 작가의 출세작 를 읽었을 땐 섬세한 연애담과 감정선을 현실과 기막히게 엮어 기업소설의 범위를 넓히는 필력을 보고 감탄했었다. 하지만 나는 작가를 기본적으로 사회파 소설가로 여겨왔기 때문에, 이렇게 대놓고 치명적인 연애소설을 써서 내놓을 줄은 몰랐다. 이 작품은 돈에 미쳐 살아온 남자 '해원', 위스키 제조에 미친 여자 '하진', 음악에 미친 남자 '준연'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로를 존경하고 사랑했지만 마침내 미워하고 증오하며 광기로 물들고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린다. 제목처럼 그야말로 미친 .. 2023. 12. 29.
조영주 장편소설 <크로노토피아 : 엘리베이터 속의 아이>(요다) 나이가 한 자릿수였던 시절의 나는 지금 사는 세상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 기억을 더듬어 보면 수시로 맞은 기억과 뭐든 부족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당시 나는 지금 여긴 꿈이고 꿈에서 깨어나면 행복한 현실이 펼쳐질 거라고 진지하게 믿었다. 동네 아이들이 모두 유치원에 등교하고 TV 오전 정규 방송마저 끝나면, 할 일이 없는 나는 꿈에서 깨어나기 위한 통로를 찾기 위해 골목을 뒤지고 공터를 맴돌곤 했다. 그때 느낀 간절했던 마음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 작품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집에서 학대당하는 어린 소년으로,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통해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바꾸고 가족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애를 쓰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마치 영화 의 주인공처럼... 2023. 12. 21.
김초엽 장편소설 <파견자들>(퍼블리온) 언젠가 우리 모두가 별의 자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었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은 모두 별에서 왔고, 인간은 그 물질이 우주적 시간 기준으로 찰나 동안 모여있다가 흩어지는 존재에 불과하며, 언젠가 다시 어느 별의 일부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 태양은 항성 규모에 비해 중원소 함량이 높은데, 태양보다 먼저 그 자리에 있던 '퍼스트 스타'가 소멸한 뒤 만들어진 중원소가 태양의 재료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읽은 일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사라지지 않는 수많은 원자가 별을 통해 순환하는 과정의 일부에 불과할 테다. '창백한 푸른 점' 위에 우연한 계기로 결합한 물질 덩어리에 불과한 인간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자아로 살아간다는 건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기운이 빠졌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 2023. 1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