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전거 국토종주/오천 자전거길 종주(2017)

(2017.09.16) 편안한 풍경, 편안한 길, 편안해지는 마음(괴산 괴강교-청주 오송역)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7. 9. 16.



다음주 월요일에 생애 첫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다.

병원 측 관계자가 검사 3일 전부터 음식을 가려 먹으라고 연락했는데, 먹어도 된다는 음식은 쌀밥, 죽, 두부 등 건강식 뿐이었다.

주말을 건강식만 먹으며 보내고 싶지 않아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일요일에는 삼시세끼 흰죽만 먹어야 하는 터라, 토요일 당일치기로 먼 곳에 가고 싶었다.

고민 끝에 오천자전거길을 달리기로 했다.





오천자전거길은 약 100km 코스인데, 미니벨로로는 야간 라이딩까지 정신없이 해야 달릴 수 있는 거리다.

지난해 국토종주를 하며 오천자전거길의 시작점인 괴산 연풍면 행촌교차로를 이미 들렀고, 종착점인 세종 합강공원 주변 코스는 최근 뻔질나게 달렸던 곳이다.

행촌교차로 다음 인증센터가 있는 괴산 괴강교에서 코스를 시작해 청주 오송역까지 달리면 미니벨로로도 하루면 달릴 수 있고, 코스도 거의 채울 듯싶었다. 


괴강교까지 가는 게 문제였다.

인터넷에서 지도를 열심히 뒤진 끝에, 오송역까지 움직여 열차로 충주까지 간 뒤 충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괴산까지 가기로 했다.

이동 자체도 일이다.

이번 오천자전거길 종주가 내 미니벨로로 달리는 마지막 자전거 국토종주 코스일 듯하다.




정말 오랜만에 무궁화호를 탔다.

충북선에 몸을 실은 일도 이번이 처음이다.

속도는 KTX가 무궁화호보다 훨씬 빠르지만, 좌석은 무궁화호가 KTX보다 넓다.

속도가 빠르지 않아 바깥 풍경을 즐기기에도 무궁화호가 KTX보다 낫다.







충주공용버스터미널은 충주역에서 1km 떨어진 가까운 곳에 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괴산행 버스를 탔다.





버스는 약 1시간만에 괴산에 도착했다.

괴산터미널 간판 오른쪽에 '삐삐 012' 광고가 붙어 있었다.

세월이 20년 전에 멈춘 곳이었다.





괴산터미널과 가까운 곳에 오천자전거길 코스가 있었다.

여기서 약 4km 떨어진 곳에 오천자전거길의 두 번째 인증센터인 괴강교 인증센터가 있다.

길은 그야말로 가을이었다.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가을에는 역시 코스모스다.





오천자전거길의 오천은 기존 지명이 아니다.

오천은 자전거길의 시작점인 괴산군 연풍면과 종착점인 세종시 합강공원 사이에 흐르는 쌍천, 달천, 성황천, 보강천, 미호천 등을 일컫는 말이다.

4대강처럼 큰강 주변에 만들어진 길이 아니어서 풍경이 아기자기하고 라이딩 난이도도 무난한 편이다.

지금까지 국토종주를 하면서 가장 편안한 느낌을 주는 코스였다.

또한 물도 매우 깨끗해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괴강교에서 종주수첩에 인증도장을 찍었다.





이번 오천자전거길 종주를 마지막으로 미니벨로로는 자전거 종주를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미 국토종주와 금강종주 등을 통해 경험했지만 자전거가 작아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속도가 나지 않는다.

이번 추석에 시도할 영산강(섬진강도 이어서 달릴까 고민 중) 종주에는 하이브리드나 MTB를 탈 생각이다.





오랜만에 배초향을 만났다.

어르신들은 '방아나물'이라고 많이 부른다.

박하라고도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만큼 매우 강한 향을 자랑하는 허브다.

중국요리에도 많이 쓰이는 모양이다.

잎을 뜯어 향기를 맡았다.

청량한 향기가 막힌 코를 뚫었다.





지난 여름에 비가 정말 많이 내렸나보다.

코스 곳곳에 무너진 곳이 보였다.

한참 보수 중인 구간도 적지 않았다.

비가 그친 지 꽤 됐는데... 빠른 시일 내에 보수되길 바라며.







가을꽃 둥근잎유홍초와 나팔꽃이 한 곳에 엮여 피어있었다.

색의 대비가 아름다웠다.





참취(취나물로 먹는 취)




들깨꽃.





고추꽃.




밤송이.




석류.




익어가는 대추.





조금씩 누렇게 물드는 논.


가을은 역시 수확의 계절이다.





가을에 피는 가장 우아한 꽃 중 하나인 옥잠화.

향기가 일품이다.





정말 오랜만에 새콩을 만났다.

이야~





작년에 자전거 국토종주 중 수시로 만났던 갈퀴나물.






증평으로 넘어갈 때 이상하게 힘이 든다 싶었는데 고개를 오르는 길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올랐다면 내리막도 있는 법.





약 2km에 걸쳐 내리막길이 펼쳐졌다.

정말 신났다.






증평 도착!



가을에 거리 곳곳을 물들이는 꽃인 가우라.





어느새 자전거는 달천, 성황천을 벗어나 보강천에 진입했다.





애기나팔꽃이 숨어서 꽃을 피웠다.






증평 백로공원에서 인증도장을 찍었다.

이제 무심천교 하나만 남았다.






한참 페달을 밟다가 돈을 주고도 못 볼 광경을 봤다.

길 한복판에서 뱀이 개구리를 사냥하고 있었다.

개구리는 필사적으로 도망가려 몸부림쳤고, 뱀은 악착같이 개구리를 물고 놓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가까이 다가가 렌즈를 들이대자 뱀은 위협을 느꼈는지 개구리를 그대로 두고 풀속으로 숨었다.

개구리는 벗어나자마자 미친듯이 뛰며 물가로 도망을 쳤지만 독 때문인지 어느새 움직임이 둔해졌다.

뱀은 어렵게 사냥한 먹이를 놓쳤고, 개구리는 살아도 산 게 아닌 처지가 됐다.

모두에게 미안했다.




가을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꽃을 피운 해바라기.







자전거는 어느새 보강천을 벗어나 미호천 주변을 달리고 있었다.

미호천은 평소에도 자주 자전거로 달렸던 곳이라 익숙한 풍경을 보여줬다.






오천자전거길 인증센터의 도장을 모두 수첩에 찍었다.





최근에 자전거를 열심히 탔더니 생각보다 너무 일찍 도착했다.

자전거에 몸이 익숙해지니 미니벨로를 밟아도 꽤 속도가 나온다.

내친 김에 일찍 오송역에 도착해 주차해둔 차를 몰고 세종보 인증센터에서 오천자전거길 종주 인증을 받기로 마음을 먹었다.





종주를 끝냈다고 생각하니 풍경이 더욱 맑아 보였다.





오송으로 향하던 도중 물이 떨어졌다.

갈증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걱정하던 찰나에 노점을 발견했다.

이 노점은 막걸리, 음료수, 파전 등 다양한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나는 사이다와 생수를 구입해 갈증을 털었다.






달걀에는 역시 사이다가 최고의 궁합!





가을의 억새도 겨울의 억새만큼 아름다웠다.






출발지였던 오송역에 다시 도착했다.

주차장에 세워뒀던 차에 자전거를 싣고 세종보 인증센터로 향했다.







세종보 인증센터는 오후 6시까지 여는데 나는 아슬아슬하게 센터에 도착해 인증스티커를 받았다.

수첩과 헬맷이 점점 풍성하게 채워진다.

10월에 달릴 영산강이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