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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대 을의 대결… “부조리한 노동현실 기록”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9. 6. 27.

최근 문학시장에서 가장 핫한 장강명 작가를 만났다.
소설집을 동시에 두 권이나 내놓다니... 왕성한 창작력이 부러웠다.
작가가 먼저 나를 알아봐 줘서 기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사실 장 작가와 나는 나름대로 인연이 있다.
지난 2011년 장 작가가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고, 내가 ‘도화촌기행’으로 조선일보판타지문학상을 수상해 기자협회보에 함께 소개된 일이 있다.
장 작가는 내가 지난해에 오랜만에 신작을 낸 사실도 알고 있었다.
장 작가가 민음사 관계자에게 나를 "나와 같은 해에 등단한 작가"라고 소개할 때엔 정말 쑥스러웠다.
같은 해 등단했어도 부지런히 작품 활동을 하면 장강명 작가처럼 핫한 작가가 되는 거고, 넋을 놓으면 내가 되는 거다.

인터뷰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소설에 W.A.S.P의 [Crimson Idol] 앨범이 언급돼 있어,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느라 인터뷰가 다른 방향으로 한참 샜다.
[Crimson Idol] 앨범을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다니.
그것만으로도 인터뷰는 큰 수확이었다.
못다 한 이야기는 나중에 사석에서 나누기로 했다.

6월 26일 자 28면 톱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연작소설 ‘산 자들’과 과학소설(SF)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을 동시에 출간한 장강명 작가. 방문수 작가 제공


- 소설 ‘산 자들’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동시출간 장강명

‘공장밖…’등 단편 10편 통해

서로를 억압하는 양상 포착

꼼꼼한 취재로 ‘르포’ 방불케

‘…초능력’에 SF 10편 담아

“다양한 장르 잘 쓰고 싶어”


소설이 우리 사회를 비추는 자화상이라면, 장강명 작가의 화풍은 극사실주의다. 장 작가는 데뷔작 ‘표백’을 비롯해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우리의 소원은 전쟁’ 등을 통해 한국 사회의 각종 문제를 적시에 부지런히 짚으며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왔다. 그런 장 작가에게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 원인인 노동 격차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문제였을 테다. 하지만 그가 들여다본 노동 현실은 ‘갑 대 을’의 대립이 아닌 약자들의 ‘을 대 을’의 대결. 그는 이번 연작 ‘산 자들’(민음사)에서 취업·해고·구조조정·자영업·재건축 등을 소재로 살아남기 위한 ‘을 대 을’의 대결 양상을 포착해 이 같은 노동 현실을 빚어낸 경제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2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민음사에서 만난 장 작가는 “현재 노동시장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원인은 복잡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바라봐야만 이해할 수 있다”며 “살기 위해 남을 밀쳐야 하는 상황을 둘러싼 노동과 경제 문제를 기록하고 싶었다”고 출간 소감을 밝혔다.

장 작가는 단편소설 10편을 통해 사회의 약자들이 생존을 위해 서로를 물어뜯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태의 근원을 살핀다. ‘알바생 자르기’를 읽다 보면 아르바이트생을 해고하려는 직원보다 노동법상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미워지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자 명단에 오른 ‘죽은 자’와 오르지 않은 ‘산 자’가 극렬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그린 ‘공장 밖에서’, 승자 없는 치킨 게임을 벌이며 벼랑 끝으로 몰리는 동네 빵집의 경쟁을 그린 ‘현수동 빵집 삼국지’, 화가 나는 상황이 속출하는데 누구도 책임자가 아니어서 화를 낼 수 없는 어느 부부의 하루를 그린 ‘모두, 친절하다’를 읽다 보면 답답함 속에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이 같은 사태를 만든 책임자는 어디로 사라지고, 왜 ‘을’들만 모여 서로 공허한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말인가. ‘공장 밖에서’에 등장하는 한 생산직의 사무직을 향한 “저희도 같이 좀 살면 안 됩니까?”란 덤덤한 대꾸는 소설 전체를 꿰뚫는 절규로 들린다. 소설로 드러나는,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익숙한 풍경 앞에서 장탄식이 쏟아진다.

장 작가는 연작소설의 제목 ‘산 자들’에 관해 “‘공장 밖에서’에서 나오는 모습처럼 해고자 명단에 오르지 않은 ‘산 자’도 사회의 억압 구조에 사로잡혀 옴짝달싹 못 한 채 그저 살아만 있을 따름이어서 괴롭기는 마찬가지”라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억압하는 양상을 포착해 보여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장 작가 특유의 꼼꼼한 취재는 소설이 현실인지 허구인지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재개발 현장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그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세입자의 비극을 그린 ‘사람 사는 집’, 살인적인 경쟁률을 자랑하는 방송사 아나운서 입사 시험 과정을 따라가는 ‘카메라 테스트’, 작가 자신을 등장시켜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인 음악 시장에서 소외된 창작자의 현실을 보여주는 ‘음악의 가격’은 소설보다는 르포르타주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장 작가는 “공감 없는 이해는 잔인해지고, 이해가 결여 된 공감은 공허해진다”며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장면들을 단순히 전시하기보다는 그 원인을 소설이란 형식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 작가는 ‘산 자들’과 함께 새로운 소설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아작)도 동시에 출간했다. 이 소설집엔 그간 준비한 과학소설(SF) 중단편 10편이 담겨 있다. 장 작가는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가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꾸준히 SF를 집필하고 발표하는 등 장르문학에 대한 애정을 보여왔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이다. 장 작가는 얼핏 SF란 장르와 대립 돼 보이는 주제를 때로는 비장하게, 때로는 따뜻한 필치로 흥미롭게 엮어 나간다. 장 작가는 “대학 때부터 SF를 써왔고, 더 다양한 장르를 잘 쓰고 싶다는 작가적 욕심을 가지고 있다”며 “순문학과 장르소설이란 양극단에서 벗어나 좋은 대중소설을 쓰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