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것 없는 이야기인데 사정없이 빨려 들어간다.
재미가 없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재미있다.
슬그머니 밑밥을 깔아뒀다가 헛웃음(다시 말하지만 웃음이 아니다)을 터트리게 하는 기술이 기가 막힌다.
자기 이야기를 남 말하듯 풀어내는 말발이 장난 아니다
헛웃음 사이에서 짙은 서글픔도 함께 느껴져 가슴이 아렸다.
교차하는 희극과 비극 속에서 짙은 화장을 한채 표정으로는 웃고 눈으로는 우는 광대를 마주한 기분이다.
대단히 솔직하고 그 솔직함이 거북하지 않다.
끝없는 자학하는 가운데에서도 은근슬쩍 자부심이 엿보이기 때문이리라.
시종일관 강약강약을 조절하며 이야기를 끌고 가는 내공이 장난 아니다.
책을 덮을 때 찰리 채플린이 남겼다는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명언과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요 장면이 동시에 머릿속을 스쳤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첫 작품으로 이런 장편을 쓰면 나 같은 놈은 어떻게 버티라는 말인가.
올해로 31년차 배우인 아내에게서 코미디언만큼 똑똑한 사람이 드물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이 작품을 읽고 그 말이 사실임을 새삼 깨달았다.
최근에 읽은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뻔하지 않고 신선했던 작품이다.
'신박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장편소설이다.
작가가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을 써낼지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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