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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승열 “극한의 자유 담아낸 음악…즐겁거나 혼란스럽길 바라”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3. 6. 27.

 

이 앨범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매혹'

못 들어봤으면 일단 들어보라. 매혹의 바다에서 허우적 거리게 될테니..

 

 

이승열 “극한의 자유 담아낸 음악…즐겁거나 혼란스럽길 바라”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이 앨범이 2013년 최고의 앨범에 등극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2013년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문제작으로 손꼽힐 가능성은 대단히 높아 보인다. 낯설고 난해한 선율, 거친 붓질을 닮은 질감의 연주와 녹음, 라디오 DJ 입장에서 청자에게 들려주기 망설여지는 긴 곡의 길이까지……. 싱어송라이터 이승열의 네 번째 정규앨범 ‘V’는 현재 한국 대중음악의 모든 것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이 앨범을 판단하는 일은 두렵고도 한편으로는 즐겁다. 이승열의 처녀작인 밴드 유앤미블루(U&ME Blue)의 1994년 1집 ‘너싱스 굿 이너프(Nothing’s Good Enough)’와 1996년 2집 ‘크라이… 아워 워너 비 네이션(Cry… Our Wanna Be Nation)’이 당대에 받은 ‘U2(아일랜드 록밴드)의 모방’이란 홀대와 후대에 받은 ‘한국 모던록의 선구자’란 환대를 동시에 떠올리면 말이다. 이승열을 서울 논현동 소속사(플럭서스뮤직)에서 만나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승열은 “변화를 의도했기보다는 그동안 내적으로 쌓인 음악적 자유에 대한 열망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며 “그야말로 ‘꼴리는 대로’ 앨범을 만들었다”고 멋쩍게 웃어 보였다. 이어 그는 “앨범은 정규 4집이지만 타이틀 ‘V’는 숫자 ‘5’를 의미한다. 이는 일종의 장난”이라며 “앨범의 타이틀을 거창하게 정해 무언가를 심각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네 번째 정규 앨범 ‘V’를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이승열.                                                                          [사진제공=플럭서스뮤직]

 

 

앨범은 첫 곡 ‘마이너토어(Minotaur)’부터 파격의 연속이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일부를 불어로 읊조리는 것으로 시작해 아라비안 스케일을 연주하는 베트남 전통 현악기 단보우(Dan Bau)까지 ‘마이너토어’는 8분에 가까운 시간동안 온갖 이국적인 색채로 덧칠된 전위적인 추상화를 그려낸다. 전면에 등장하는 단보우 연주가 이국적인 색채를 극대화하는 ‘위 아 다잉(We Are Dying)’과 ‘개가 되고’, 장장 10분 가까이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초기작을 연상케 하는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연출하는 ‘후(Who?)’까지 앨범의 수록곡들은 지금까지 한국 대중음악에서 들을 수 없었던 온갖 음악적 실험의 향연을 펼쳐낸다. 3집 ’솔직히‘의 영어버전인 ‘시크리트리(Secretly)’와 장필순과 함께한 블루스 넘버 ‘블루이(Bluey)’ 정도의 곡에서만 기존 앨범의 정서가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앨범이 귀에 익을수록 낯설음은 조금씩 매혹으로 치환된다. 이 매혹은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워 당혹스럽다. 앨범에 대한 호불호의 치열한 엇갈림이 점점 극찬으로 기울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승열은 “즐겨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던 단보우 소리에 매료돼 베트남인 연주자 레화이프엉을 수소문해 앨범 참여를 부탁했다. 기타인 것 같으면서도 기타가 아닌 묘한 느낌이 좋았다”고 단보우를 사용하게 된 배경을 밝히며 “난 소리에 반응했고 창작자로서의 나를 믿기로 결정했다. 사실 유앤미블루 시절부터 솔로 앨범까지 그동안 나의 음악이 대중친화적이었던 적은 별로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앨범의 또 다른 큰 특징은 주요 수록곡을 공연장(홍대 벨로주)에서 ‘원테이크(One Takeㆍ곡을 끊김 없이 한 번에 녹음하는 방식)’로 라이브에 가깝게 녹음을 했다는 점이다. 수록곡들은 스튜디오 녹음의 정밀한 사운드 대신 라이브 특유의 현장감으로 청자를 사로잡는다. 이 같은 녹음방식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승열은 “스튜디오의 규격을 벗어난 사운드를 자유롭게 한계가 드러나는 순간까지 들려주고 싶었다”며 “과거와는 달리 기술의 발전으로 스튜디오의 규모가 축소돼 모든 악기를 들여와 ‘원테이크’로 녹음을 소화할 만한 스튜디오가 없어 공연장을 녹음 장소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승열은 지난 3월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세계적인 음악 쇼케이스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에서 공연한데 이어, 지난 20일엔 영국 런던에서 열린 ‘K-뮤직 페스티벌’에 대중음악부문 한국 대표 뮤지션으로 선정돼 무대에 올랐다. 그는 “한국인 관객이 아닌 외국인 관객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는 페스티벌은 처음이었는데, 음악 그 자체를 즐기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며 “문득 평생 난 음악만 하고 살겠구나란 생각이 들었고, 이는 대단한 자극이자 즐거움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승열은 “벌써부터 이 앨범을 둘러싼 왈가왈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고 싶어진다”며 “앨범 속지에도 언급한 바이지만 이 음악으로 청자들이 즐겁거나, 혼란스럽거나, 혹은 무감각해지길 바랄 뿐”이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승열은 다음달 12일과 13일 서울 홍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가질 예정이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