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건 결국 나밖에 없다...
이현세 작가의 인생관은 나와 거의 비슷했다.
믿을 게 나밖에 없는 세상은 그리 좋은 세상은 아니다.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이현세 지음토네이도 |
삶의 경험서 우러난 ‘돌직구’ 에세이
“길들여진 삶은 가축과 다름없어”
불안한 청춘들에 ‘야성의 DNA’ 일갈
“10년이든 20년이든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보면 어느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산다는 것은 긴긴 세월에 걸쳐 하는 장거리 승부지 절대로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한국 만화의 거장 이현세 작가의 인생관은 선 굵은 자신의 작품처럼 명확했다. 그의 첫 에세이집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는 뜬구름을 잡는 듯한 위로의 문장 대신 지극히 현실적인 ‘돌직구’를 뿌리고 있다. 작가는 ‘힐링’ 열풍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견지했지만, 에세이집의 내용은 기존의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형태의 ‘힐링’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 같은 돌직구를 힐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진 이현세는 “불확실한 시대에 살아가는 내 자녀들과 20~30대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며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하려면 나 자신과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에세이집은 이현세가 단 한 장의 만화도 담지 않고 오로지 글만 담은 첫 작품이다. 결코 세련됐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자기 확신에 찬 문장은 독자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준다.
그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을 그림으로 요약할 수 있고 대리인으로 캐릭터를 내세울 수 있는 만화와는 달리 에세이는 있는 모습을 그대로 글로 풀어내야 하니 어려움이 많았다”며 “글을 쓰는 동안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에세이 집필은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에세이집의 제목처럼 이현세는 개개인의 의지와 노력의 위대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에세이집엔 인민군 장교였던 숙부 때문에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보낸 그의 유년기와 이른 나이에 가까운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청소년기가 가감없이 드러나 있다.
최근 첫 에세이집을 출간한 만화가 이현세는 “젊은 청춘에게 근거없는 확신이라도 밀고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고 출간 의미를 밝혔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
그는 “최근의 힐링 열풍은 문제를 방치한 채 표면적인 힐링에만 주력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일종의 책임회피”라며 “나는 근거없는 확신이라도 밀고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현세는 불확실한 미래를 불안해하는 후배와 제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내가 만화를 선택했을 당시에 만화가는 어린아이들에게 사기쳐서 먹고 사는 직업이란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며 “만화를 그리면서 밥을 먹을 수 있을지, 결혼은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등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있었지만 ‘나는 잘될 수 있다’는 근거없는 확신을 가지고 임했다. 또 그런 확신 없이는 버티기 어렵다”고 전했다.
“잘못된 시스템 탓만 하기에는 한 번뿐인 인생이, 그리고 바로 지금이 너무도 소중하고 아깝지 않은가. 불안을 이유로 버티고 선 울타리 안은 안전할 것이다……하지만 그렇다고 야성의 DNA를 잃어버리면 가축과 같이 길들여진 삶이 만족스러워 바깥으로 나오기가 더 힘들어진다.”(119쪽)
개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에세이 속 문장의 행간에선 이현세의 현실정치에 대한 회의가 짙게 느껴졌다. 그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낙후되고 믿을 수 없는 것이 정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다버릴 수 없는 것이 정치”라고 어렵게 말문을 열며 “정치인을 선구자나 지도자가 아닌 직업인으로 바라봐야 우리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해진다”고 자신의 정치철학을 전했다.
이현세는 곧 포털사이트에 웹툰을 연재할 계획이라 밝혔다. 그는 “남자의 야성을 주제로 40~50대가 볼 만한 웹툰을 그리고 싶다”며 “웹툰이 밀도가 떨어진다는 말이 많은데 그런 말을 극복하고 싶은 웹툰을 그려보고 싶다. 40~50대가 내 만화를 보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면 참으로 멋진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현세는 동화를 그려보고 싶다는 예상치 못한 꿈을 밝혀 관심을 모았다. 그는 “70대가 되면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그리고 싶다”며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인데 내 성격상 그게 될지 안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웃어보였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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