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희선이 형님이 오랜 세월 뒤에도 무대에서 끝장나는 연주를 들려줬으면 좋겠다.
정말 멋지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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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를 보컬의 반주자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의 음악 풍토에서 최희선은 40년 가까이 프로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정상의 자리를 지켜 온 보기 드문 연주자입니다. 그의 연주는 기름진 톤을 들려주면서도 정확하고 깔끔해, 후배 연주자들은 늘 그가 어떻게 연주하고 어떤 장비로 톤을 연출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봅니다. 그는 연주자 세계에선 황혼의 나이이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후배 연주자들을 긴장시키는 거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희선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대중에게 낯섭니다. 하지만 수식어 하나가 추가되면 그의 이름은 꽤 익숙해집니다. 그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20년 넘게 리더로 활동해 온 연주자이기 때문이죠. ‘가왕’의 팬들에게 그는 익숙한 얼굴입니다. ‘가왕’이 무대에서 선보이는 히트곡의 편곡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습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발표한 첫 앨범은 2013년 작 ‘어너더 드리밍(Another Dreaming)’이지만, 이미 알게 모르게 대중은 그의 음악을 간접적으로 많이 접한 셈이지요. 오랜 세월에 걸쳐 ‘가왕’의 옆에서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그를 향한 팬들의 관심도 늘어났습니다. 그 결과 그는 연주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팬 카페(http://cafe.daum.net/choi-heesun)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날 클럽에는 팬클럽 회원들이 내건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팬들은 야광봉을 흔들며 그를 맞았습니다. 규모와 상관없이 클럽 안은 여느 아이돌 부럽지 않은 열기로 가득했죠.
최희선은 이번 공연에서 ‘뱀’ ‘야간비행’ ‘하늘을 보고’ ‘선더 스톰 플라워(Thunder Storm Flower)’ ‘동물농장’ 등 자신의 앨범 수록곡들을 비롯해 게리 무어(Gary Moore)의 ‘스틸 갓 더 블루스(Still Got The Blues)’,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의 ‘유로파(Europa)’ 등 다양한 곡들을 선보였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연주곡을 중심으로 무대를 꾸몄다는 사실입니다. 무대에 오른 최희선은 “연주곡만으로도 충분히 지루하지 않은 무대를 꾸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게스트 무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무대를 연주곡으로 채웠습니다. 보컬 없는 공연을 생각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이는 파격적인 구성이었죠. 이는 자신의 음악과 연주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한 선언입니다. 최희선은 자신이 공언한대로 2시 간여 동안 연주만으로도 지루하지 않은 화끈한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입니다. 클럽에서 좀처럼 마주치기 힘든 중장년층부터 이제 막 어린 티를 벗은 젊은이들까지 다채로운 관객들이 클럽 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중장년층 관객은 자녀를 동반한 경우가 많았고, 젊은 관객 중엔 기타를 메고 있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겉보기에 아무런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관객들은 연주곡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공연 현장에선 국내 정상급 악기업체인 물론(www.moollon.co.kr)과 길모어(www.gilmour.co.kr)가 부스를 만들어 악기를 지참한 관객들에게 악기를 무상으로 수리해주는 특별 이벤트를 벌였는데, 많은 이들이 이 부스 앞을 오가고 있었습니다.
문득 기자는 이 공연 현장이 한국의 음악시장에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이돌 음악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이런 형태의 음악을 향한 수요가 있었고, 연주 그 자체를 진지하게 듣고자하는 자세를 가진 관객들 역시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미래를 이제 노장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연주자가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기자와 함께 공연을 본 정상급 기타리스트 이현석은 “최희선은 끊임없이 자신의 톤을 연구하고 연습을 멈추지 않는 등 연륜이라는 핑계로 자기 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는 연주자”라며 “폴 매카트니처럼 그는 60이 넘어서도 무대에 올라 온전히 자신의 음악과 연주로 무대를 꾸밀 수 있는 한국의 첫 연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마지막 무대에서 최희선은 마이크까지 잡으며 수준급의 가창력을 선보여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딥 퍼플(Deep Purple)의 명곡 ‘솔저 오브 포춘(Soldier Of Fortune)’을 연주와 함께 멋들어지게 부른 그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본 조비(Bon Jovi)의 ‘런어웨이(Runaway)’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매우 즐거운 무대였지만 아직 한국의 연주자가 연주만으로 평가를 받지 힘든 현실을 보여준 것 같아 아쉬움이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공연을 마친 후 기자와 만난 최희선은 “외국의 정상급 연주자들처럼 무대를 연주로만 채우고 싶었는데, 아직은 그렇게 무대를 꾸미기에 어려운 환경인 것 같다”며 “새 앨범이 나오면 꼭 연주곡만으로 채운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관객들의 여운은 가시지 않은 듯, 공연장 안팎에 머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등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최희선의 바람은 머지않은 날에 이뤄질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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