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한 이후에는 자전거와 가까이 할 일이 없었다.
헤럴드경제 퇴사 이후 절에 들어가 7년 만에 새로운 장편소설 집필을 마친 뒤, 문화일보에 입사해 적응하고 정신 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새 1년의 3분의 2가 지나 버렸다.
세종시로 내려온 이후 가까운 금강을 자전거로 종주해야겠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일 때문에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다.
계획 없이 여름 휴가를 맞았는데, 마침 이번 주말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없었다.
이번이 아니면 종주에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 같아 바로 짐을 챙겼다.
8달 만에 인증수첩과 노선도를 꺼냈다.
문제는 집에서 종주코스의 시작지인 대청댐 물문화센터로 가는 길이었다.
무려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야 대청댐으로 갈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평소에 늦잠을 자는 준면 씨를 깨웠다.
준면 씨가 나와 자전거를 싣고 대청댐으로 향했다.
날이 푹푹 쪘다.
몇 걸음 걷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렀다.
그래도 작년에 국토종주를 했는데 고작 145km가 어렵겠느냐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오산이었다.
이때까진 즐거웠다.
먼저 인증도장을 찍어 주고!
나를 대청댐에 데려다 준 준면 씨는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준면 씨가 촬영한 막 출발한 내 뒷모습.
700km도 달렸는데 145km가 대수냐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더위는 내가 상상한 이상이었다.
너무 더워서 더운 바람만 뿜어내는 선풍기를 쐬면서 다닌다고 생각해보라.
딱 그런 상황이 계속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치기 시작했다.
미니벨로라서 잘 나가는 편이 아닌데 오늘은 유난히 안 나갔다.
앞바퀴, 뒷바퀴 모두 바람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내가 체크를 안 해 벌어진 일이었다.
종주코스를 달리던 나는 고민 끝에 신탄진 쪽으로 되돌아가 자전거포에 들러 바퀴에 바람을 넣었다.
대전을 벗어났다.
좀처럼 견디기 어려울 만큼 더웠다.
뭐 하러 생고생을 하러 나왔나 잠시 후회를 했다가 접었다.
지금 당장은 더워도 몸으로 경험한 풍경들이 몸에 스며들어 오랫동안 남을 거란 걸 아니까.
다시 사진을 보니 이때 그렇게 더웠나 싶다.
기억에는 아름다운 풍경만 남아 있다.
세종시 진입!
사진은 보기 좋을지 몰라도 이 사진을 찍을 때 너무 더워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등짝이 불판이라도 올린 듯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페달을 밟다 발견하는 카페는 그야말로 오아시스다.
여기서 자몽에이드를 마시고 식수를 보충했다.
한송이 만으로는 볼품없지만 모이면 이렇게 아름다운 게 또 개망초다.
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시원한 물은 이게 끝이다.
이후 내가 만난 금강은 정말 금강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심각했다.
똥물 그 자체였다.
더러워서 똥물이 아니다.
진짜 똥냄새가 물에서 나더라.
금강 종주 코스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쉴곳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좀처럼 그늘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어렵게 발견한 그늘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다 살짝 잠이 들었다.
한여름에 그늘은 위대하다.
30여 km를 달린 끝에 대청댐 이후 첫 인증센터인 세종보 인증센터를 알리는 표지를 발견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뒷바퀴가 퍼졌다.
작년에 국토종주를 할 때에도 한 번 펑크가 난 일이 있는데, 그때에는 공교롭게도 자전거포 근처에서 펑크가 나 위기를 모면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변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늘도 없이 땡볕이 쏟아지는 길에서 튜브에 열심히 펌프질을 했지만 바람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길 위에서 1시간 가량 씨름하는 동안 햇살에 구워지는 느낌이었다.
태블릿을 열어 근처에 자전거포가 있나 확인해보니 약 2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비오듯 땀을 쏟으며 자전거를 끌고 터덜터덜 걸었다.
OMG...
간신히 도착한 자전거포는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 상태였다.
온몸에서 힘이 쪽 빠졌다.
근처에 자전거포가 더 있나 확인해보니 2km 이상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는 종주의 의욕을 잃고 준면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 맥주나 마실 생각이었다.
그런데 준면 씨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요즘 준면 씨가 수영장에 다지고 있어, 나는 그녀가 수영장에 갔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전화를 걸지 않았다.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종주를 재개하기로 했다.
다른 자전거포에서 뒷바퀴 튜브를 갈았다.
세종보 인증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내가 대청댐에서 출발한 지 5시간이 넘은 뒤였다.
고작 그시간 동안 30km 정도 온 것이다.
정상급 마라토너들이 42.195km를 2시간 만에 주파하는데 한심한 노릇이었다.
오늘 목표로 잡은 부여 백제보까지 거리는 50km 이상 남아있었다.
해가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찍 출발했는 데도 불구하고 야간라이딩 확정이라니 참담했다.
세종보에 흐르는 흙탕물.
준면 씨가 전화를 줬다.
알고보니 전화를 무음으로 설정해 놓아 못 받은 것이었다.
준면 씨는 자기가 전화를 받지 않아 종주를 포기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틀린 말도 아니어서 페달을 밟았다.
길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꽃은 금계국과 기생초였다.
금계국과 기생초의 노란색은 해질 무렵에 가장 선명하게 빛난다.
마치 형광색처럼 말이다.
내가 일몰 무렵에 페달을 밟는 길은 노란색으로 환했다.
물에서 진짜 똥냄새가 나더라.
아놔...
이젠 페달까지 말썽을 부렸다.
왼쪽 페달이 제대로 돌지 않고 뻑뻑하게 움직였다.
미니벨로로 태어난 녀석이 주인을 만나자마자 말도 안 되는 장거리를 뛰었으니 뭐.
돌아가서 손 봐야겠다.
해가 떨어지기 직전에 공주에 도착했다.
공주가 시여도 촌은 촌이다.
이렇게 닭을 풀어놓고 키우는 모습을다 볼 줄이야.
공주는 석장리 구석기 유적지로 유명하다.
그런데 저 집은 ㅋㅋㅋㅋㅋ
소싯적 DOS 시절에 즐겼던 게임 '고인돌(Prehistorik)'이 떠올랐다.
젠장!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제법 굵었다.
주변에는 비를 피할 곳이 전혀 없었다.
먼 하늘을 바라보니 내가 향하는 곳 하늘은 맑았다.
빨리 저곳에 도착하면 비를 맞지 않을 듯싶었다.
고민 끝에 비를 맞으며 페달을 밟았다.
다행스럽게도 내 판단이 맞았다.
그 유명한 녹조라떼를 알현했다.
역겹더라.
공주 시내 진입!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돌아갸아하나 말아야 하나 수없이 번민했다.
공산성 도착.
공주의 금강 자전거 코스는 주요 역사 유적지를 경유하고 있다.
당연히 무령왕릉도 경유한다.
해가 떨어진 후에야 겨우 공주보에 도착했다.
해가 떨어졌는데 이제 겨우 50km를 달렸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펑크는 답이 없다.
저렇게 허술하게 도장을 관리해 분실되면 라이더들의 불만이 속출할 텐데...
길가에서 모텔이 보였다.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나는 작년에 국토종주를 할 때 길에서 멧돼지를 만난 이후 야간 라이딩에 살짝 트라우마가 생겼다.
야간 라이딩 중 다행스럽게도 멧돼지를 만날 일은 없었지만 매우 귀찮은 녀석들이 달려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이렇게 날벌레들을 많이 만난 일이 없었다.
한여름의 야간 라이딩은 지난해 늦가을에 했던 야간 라이딩과 많이 달랐다.
늦가을 야간 라이딩은 꽤나 공포스럽다.
보이는 풍경은 라이트에 비치는 범위가 전부다.
보이는 게 없을 때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가 공포로 다가온다.
단순한 바람소리까지도 공포스럽다.
그런 상황에서 고라니 울음소리(고라니 울음 소리는 사람 비명 소리를 닮았다)가 갑자기 들려오면 온몸에서 소름이 돋는다.
한여름의 야간 라이딩은 온갖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로 풍요로웠다.
가끔 고라니 울음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꽤나 불안을 덜어줬다.
기온까지 적당히 내려가 낮에 비해 페달도 밟을 만했다.
하지만 날벌레들의 공격은... 힘들다.
날벌레 울음소리만큼이나 야간 라이딩에서 위안을 주는 요소는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자동차들이다.
순식간에 나를 스쳐가고 나와 인연도 없는 이들이지만, 이 어둠 속을 누군가가 나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오늘의 목표인 백제보 인증센터를 알리는 표지.
오늘 하루 저 표지를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밤 10시가 다 돼서야 백제보에 도착했다.
저녁도 먹지 못해 허기진 상황이었으나 보에 마련된 편의점은 이미 영업을 종료한 상황이었다.
백제보 근처에는 숙소도 식당도 없다
하는 수없이 부여읍으로 향했다.
부여읍은 여기서 7km를 더 가야 한다.
겨우 페달을 밟으며 부여읍으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부여읍으로 향하는 길이 어차피 내일 달려야 할 코스라는 점이었다.
덕분에 내일 달려야 할 코스 중 7km를 줄였다.
부여군청 사거리에서 태블릿을 열어 여관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들어가는 여관마다 이미 방이 다 찬 상태였다.
침대 두개가 있는 방 하나가 남은 여관이 있었다.
나는 너무 지쳐 숙소 찾기를 멈추고 그 방으로 들어갔다.
단맛이 나는 술로 저녁을 대신 했다.
내일 달려야 할 거리는 60km가 채 되지 않는다.
일찍 도착해 해가 떨어지기 전에 금강하굿둑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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