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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종주/금강 자전거길 종주(2017)

(2017.07.30) 뒤돌아도 나아가도 고통스럽다면 빨리 나아갈 수밖에(부여 백제교-군산 금강하구둑)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7. 7. 30.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쑤셨다.

하루 빡세게 자전거를 타고 나면 몸상태가 엉망이 된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고통은 경험했다고 해서 익숙해지지 않는다.

지난해 국토종주 첫날에 그러했듯이 이날 아침에도 엉덩이와 손바닥이 쑤셔왔다.




모텔에서 나온 시간은 오전 10시였는데 나오자마자 더운 공기가 온몸을 덮쳤다.

표정이 절로 찡그려졌다.

이 시간에 이 정도 더위인 걸 보니 오늘 하루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아침 식사는 모텔에서 가까운 24시간 콩나물 국밥집에서 먹었다.

가격은 3800원인데 그 이상 맛을 하는 국밥이었다.

장사가 잘 되는 이유가 있었다.




밥을 먹고 나오자 부여군청 건물이 보였다.

어제 어두워서 무심코 지나쳤던 건물이 군청이었다.

딱 군청스럽게 생긴 건물이었다.




남은 거리는 55.4km.

지난해 국토종주를 할 때엔 하루에 평균 100km 이상을 달렸다.

후딱 끝날 일정 같았으나 그건 완전한 오산이었다.

어제도 느꼈지만 더위는 어마어마한 장애물이었다.




종주코스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맞아준 원추리꽃.

원추리꽃은 흐린 하늘 아래에서 더욱 선명한 색을 드러냈다.





대청댐 기점 90km.

꽤 많이 왔구나.





날씨가 흐렸다.

무더웠지만 그래도 직사광선을 덜 받을 것 같아 내심 안도했는데...





곧 구름이 걷혔다.

등짝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어제 문제를 일으켰던 페달에서 볼베어링까지 튀어나올 정도로 페달 상태가 엉망이 됐다.

주변에서 페달을 고칠 곳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저 남은 코스에서 페달에 문제가 생기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종주가 끝날 때까지 페달은 더 망가지지 않았다.

그 사이에 볼베어링이 몇개 빠지긴 했지만.




한여름에 자전거로 강을 끼고 달리는 일은 마치 한증막 속에서 페달을 밟는 일과 같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내 생애 최고의 더위를 나는 이 날 경험했다.

움직일 때마다 온 몸에서 힘이 쪽쪽 빠졌다.

좀처럼 페달을 밟기 어려웠는데, 코스에서 더위를 피할 그늘을 찾기 어려웠다.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40km밖에 남지 않았지만 자신이 없었다.

단언컨대 내가 만약 여름에 국토종주를 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이 정도 더울 줄 알았다면 금강종주를 시도하지 않았다.

더위에 이를 갈며 앞으로 여름에는 이런 일을 벌이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아버지의 고향인 논산에 진입했다.

종주코스에서 논산은 극히 일부다.

6.5km만 달리면 바로 전북 익산이 나온다.






젓갈축제라는 간판이 무색하게 강경시장에는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았다.

이 더위에 밖에 나다니는 놈이 이상한 놈이지.




강경포구에는 더이상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지만, 옛 명성이 남아서 여전히 젓갈시장만큼은 유명하다. 





하구에 가까워질수록 강의 폭이 넓어지는 게 느껴진다.





종주 코스에서 가장 반가운 건 역시 인증센터를 알리는 표지다.

무려 10km나 남았다는 게 함정이지만.




논산에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아 전북 익산시에 진입했다.




익산 성당포구로 향하는 길은 그늘 하나 없는 평지의 연속이었다.

과장을 보태자면 길에서 말라 죽을 것 같았다.

몸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발견한 이곳은 마치 오아시스처럼 보였다.




냉매실차를 거의 원샷으로 비웠다.





보기엔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이 주변은 모두 열풍으로 가득 차 있다.

잠시 서있는 일도 괴로울 정도다.





코스에서 가끔 그늘이 보일 때마다 무조건 멈추고 휴식을 취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평화로운 풍경을 담은 사진이지만 그늘 바깥은 지옥이다.







금강종주 코스의 다섯 번째 인증센터 익산 성당포구에 도착했다.




수첩에 인증도장을 찍는 손이 덜덜 떨렸다.

금강하구둑까지 고작 27km 남았지만, 페달을 밟기가 두려울 정도로 더웠다.

 




인증센터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소나기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곳이 눈에 띄어 급히 그곳으로 대피했다.

 




소나기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나무그늘 아래에 누웠다.

소나기를 핑계로 삼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나무가지를 피해 얼굴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시원했다.





그늘 주위를 둘러보니 돌나물이 곳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먹을 게 풍성하다니.





나무그늘 아래에서 쉬다가 인상 깊은 문패를 발견했다.

부부의 이름이 함께 적힌 문패였는데 부인의 이름이 남편에 앞서 있었다.

보수적인 동네인 시골에서 이런 문패를 보게 돼 무척 신선했다.

문득 이 부부는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졌다.






소나기가 그친 뒤 내린 비가 증발하며 습도를 더해 더욱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오르막길이 왜 이렇게 자주 나오는 건지.





어제와 오늘 나는 제대로 음식을 먹은 게 별로 없었다.

너무 힘이 들면 먹는 일조차 귀찮아진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페달을 밟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노변의 그늘에 앉아 살겠다는 심정으로 육포를 꺼냈다.

육포를 억지로 씹은 뒤 물과 함께 삼켰다.






표정이 매우 어둡다.




강의 폭이 하구에 가까워짐에 따라 점점 넓어져 카메라 렌즈에 담기 어려워졌다.





코스 막바지에는 점점 페달을 밟는 속도가 느려졌다.

무더위 앞에서 악으로 버티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페달을 밟다가 그늘이 보이면 무조건 멈추고 길에 드러누웠다.

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지체됐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페달을 밟다가 그늘에 눕는 일을 반복한 끝에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군산에 겨우 진입했다.







남은 거리는 이제 고작 10km.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페달을 밟았다.





하구둑으로 향하던 도중 탐조대를 발견했다.

금강하구는 갈대가 무성하고 갯벌이 넓게 형성돼 먹이가 많아 가창오리를 비롯해 많은 철새들이 매년 겨울마다 찾는 곳이다.

철새는 정말 사람에 민감하다.

어느 정도로 민감하냐면 수백 미터 바깥에서 조금만 사람이 움직여도 새는 도망가기 위해 날개를 움찔거린다.

그런데 우습게도 가까이 지나가는 탐조버스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굉음을 내는 거대한 금속 덩어리보다 사람이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는 걸 철새들이 잘 아는 것이다.





아오! 녹조라떼! 썅!




드디어 마지막 인증센터를 알리는 표지가 나타났다.

다시 페달 밟기에 열을 올렸다.





저 멀리 끝이 보인다.





마침내 자전거 금강종주 성공!

표정은 웃고 있지만 사실 서 있기도 어려운 몸상태였다.





금강종주 인증도장을 모두 찍었다.





잘 있거라. 금강하구둑.




하지만 이 것이 끝이 아니다.

자전거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 말이다.

군산시외버스터미널은 금강하구둑 인증센터에서 7km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없는 힘을 짜내 다시 페달을 밟았다.





이 풍경을 보고 내가 자전거로 바다까지 도착했음을 실감했다.







하마터면 차를 못 탈 뻔했다.

군산에서 세종으로 가는 시외버스의 막차는 오후 6시 30분차였다.

내가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28분이었다.

급히 표를 끊고 겨우 막차를 탔다.

이 차를 못 탔다면 오늘 밤 나는 군산에서 지내야 했을 것이다.


버스는 오후 8시에 세종고속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준면 씨가 나를 픽업하기 위해 터미널 앞에 차를 몰고 나와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 뒤 에어콘 바람을 쐬자 살 것 같았다.

역시 집이 최고다.


집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느껴보고 싶다면 한여름 자전거 종주를 추천한다.

잊을 수 없는 더위의 추억을 남기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

어지간하면 봄과 가을에 가는 게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