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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종주/섬진강 자전거길 종주(2018)

(2018.09.25) 시험에 들게 하지 않고 품어주는 편안한 길(곡성 금곡교-광양 배알도해변공원)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8. 9. 26.



갈 길이 멀어 일찍 출발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더니 사방이 온통 안개다.

밤보다 가시거리가 더 좋지 않았다.

문득 이 곳이 곡성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영화를 괜히 봤다.





그야말로 뵈는 게 없다.





비가 내려 안경이 이런 꼴이 된 게 아니다.

나도 이런 수준의 안개는 처음 경험했다.

수시로 페달을 멈추며 안경을 닦았다.





날이 이러니 달맞이꽃도 낮과 밤을 가릴 새가 있겠나.






나팔꽃은 영어로 '모닝 글로리(Morning Glory)'라고 불린다.

나팔꽃은 아침에 일제히 피어나 오후에 한꺼번에 진다.

아침에 일제히 나팔 모양의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고 '아침의 영광'이란 이름을 붙이다니...

근사한 표현 아닌가?





뭐든 대강하는 건 금지!





얼마 달리지 않아 네 번째 인증센터인 횡탄정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이제 절반이다.





횡탄정은 별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정자였다.

다만 맑은 날에 정자에 앉아 강을 굽어보면 참 아름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횡탄정 아래에서 섬진강을 굽어보니 아침부터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강태공이 보였다.

이런 날씨에... 와우...





서서히 태양이 높이 떠오르자 짙었던 안개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햇살이 섬진강에서 서서히 짙은 안개를 걷어내는 모습은 매우 환상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짙었던 안개가 모두 사라졌다.

그제야 섬진강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기가 섬진강이다!






구례군에 진입해서야 처음으로 편의점을 만났다.

섬진강 자전거길은 다른 자전거길에 비해 편의시설이 대단히 적은 편이다.

보이면 반드시 보급을 해야 한다.

보급을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쉬운 길이다.






이 곳에서 늦은 아침식사를 했다.

열량이 높은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안개를 걷어간 햇살이 비추는 섬진강의 풍경은 어느 곳으로 눈을 돌려도 아름다웠다.

단언컨대 지금까지 경험해 본 모든 자전거길 중 최고의 풍경을 품은 곳이 섬진강 자전거길이다.







구례구역은 이름과 달리 순천에 있었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불러 오던 곳이라서 그렇단다.

역은 보급을 하기도 씻기도 좋은 곳이다.

주변에 식당도 많았다.

편의점에 아침을 때우지 말고 여기로 와서 먹을 걸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후회했다.






멀리서 봤을 때 메밀꽃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참취꽃이었다.

올해 아직 메밀꽃을 보지 못해 아쉽다.






섬진강 자전거길의 다섯 번째 인증센터인 사성암 인증센터.

인증센터 주변에 편의시설이 잘 조성돼 있으니, 물이나 간식이 떨어졌다면 여기서 보급하는 게 좋다.

이후에 보급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수리할 수 있는 곳이 코스 끝까지 한 곳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섬진강 자전거길은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본 모든 자전거길 중에서 노면 상태가 제일 좋은 곳이었다.
또 업힐이라고 부를 만한 오르막길도 많지 않아 페달을 밟기도 수월하다.
무리해서 페달을 밟지 않는다면 펑크 없이 충분히 완주할 수 있는 길이다.
나도 펑크 없이 무사히 종주를 마쳤으니 말이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과 편의시설이 별로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최고의 자전거길이다.




올해 처음 만난 배초향(방아나물).

잎을 뜯어 냄새를 맡으니 청량한 향기가 코를 뚫었다.





봄에 이 길을 달렸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섬진강 자전거길의 후반부에는 벚나무가 정말 많이 보였다.

가을에도 아름답지만, 봄에 달리는 이 길의 풍경은 환상적이었을 것이다.






여유만 있었다면 섬진강어류생태관에 들러 구경을 했을 텐데 아쉽다.






무슨 화장실이 이렇게 예쁘게 생겼다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 가와이!







여섯 번째 인증센터 남도대교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인증도장을 찍는 곳이 딱 두 칸 남으니 이제 정말 종주의 끝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전남 광양시 다압면에 진입했다.

내가 어찌 이 곳을 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작년 2월에 장편소설 '침묵주의보'를 집필하기 위해 머무른 곳이 바로 이 곳에 있는 암자 무등암 아니던가.

무등암 근처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시 오게 될 줄이야.







일곱 번째 인증센터인 매화마을 인증센터.

이제 딱 한 곳만 남았다!





섬진강엔 하구둑이 없다.

그 때문에 섬진강의 하류는 강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하다.

물이 깨끗한 데다, 민물과 짠물이 섞이는 기수역이 잘 발달돼 있어 사철 맛있는 해산물이 풍부하다.





늦은 점심을 망덕포구에서 먹을까 했는데....





전반적으로 상권이 많이 죽은 곳이었다.

고민 끝에 그냥 페달을 밟기로 했다.

혼자 진수성찬을 차려 먹기엔 갈 길이 멀기도 했고.





이 다리만 건너면 최종 목적지 배알도다.






배알도 수변공원에 도착!








드디어 섬진강 자전거길 종주에 성공했다.

마침 유인 인증센터가 운영되고 있어 바로 공식 인증을 받은 뒤 헬맷에 인증 스티커도 붙였다.

나는 35,422번째로 섬진강 자전거길 종주에 성공한 라이더가 됐다.







접근하기 어려운 길인 만큼 빠져나오기도 어렵다.

배알도 수변공원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터미널은 10km 이상 떨어진 중마버스터미널이다.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은 공도와 자전거 도로가 섞여 있어 위험한 구간이 많았다.

좋은 풍경만 보다가 덤프 트럭이 뿜어내는 매연을 맡으니 금방 지쳤다.

나는 터미널에서 광주로 가는 버스를 탄 다음에 광주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세종으로 돌아왔다.


언제 다시 달리게 될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꼭 봄에 이 길을 달려보고 싶다.

그 전에 북한강, 동해안, 제주도 자전거길을 달려 그랜드슬램에 성공하는 게 먼저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