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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클럽하우스 단상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2. 16.

 

 

클럽하우스 구경을 해봤다.

목소리로 소통하는 SNS이지만, 90년대 PC통신 채팅방과 비슷한 정서를 느꼈다.

세이클럽 채팅방과는 다르다!

자신의 정체를 어느 정도 드러내야 했던 PC통신 채팅방과 익명성에 기댄 세이클럽 채팅방이 같을 수는 없겠지.

뭔가 예의를 차리면서도 다들 알아서 잘난 척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셀링 포인트가 독특한 SNS다.

딱히 적극적으로 할 생각은 없는데, 안 하면 왠지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셀럽들이 많이 있다니 괜히 한 번 들어가서 뭔 이야기를 하나 들어가 보고 싶고.

20년 넘게 016 번호에 2G 피처폰을 쓰다가, 몇 달 전에야 010과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나도 뭔지 궁금해서 들여다볼 정도니 말 다 했다.

최근에 출간한 새 장편소설 판매량이 신통치 않아 홍보할 구석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팔로워를 늘리려고 대화 없이 서로 맞팔만 하는 방도 여럿 보였다.

클럽하우스는 페북이나 인스타와 달리 맞팔을 해도 서로 연결이 상당히 느슨하다는 인상을 줬다.

하지만 팔로워가 많아야 들어갈 수 있는 채널도 많이 보인다.

팔로워를 늘리기는 다른 SNS보다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비틀린 욕망이 엿보였다.

 

페북에서 안 보였던 사람들이 여기에 여럿 모여 있는 걸 보고 그런 방은 피했다.

만나면 말을 시킬까봐 ㅎ

나는 PC통신 시절에도 채팅방에서 주로 눈팅을 했었다.

대화에 끼어드는 게 영 어색해서.

어제 한 분이 나를 알아보고 말을 시켜서 도망치느라 헤매기도 했다.

 

이 방 저 방 다 들어가봤는데, 성대모사 방이 딱 내 취향이었다.

그중에서도 포켓몬 흉내를 내는 방이 제일 재미있었다.

노트북으로 웹서핑하며 사람들이 포켓몬 성우 흉내 내는 걸 들으니 예능보다 더 웃겼다.

오늘도 보이면 들어가 볼 생각이다.

 

그런데 이렇게 음성으로만 소통하면 청력이 남들보다 약한 사람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지난해 말 발목뼈에 금이 간 후 거동이 어려워지니,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

그중 한 가지만 예를 들면, 계단이 이렇게 높은 문턱인 줄 몰랐다.

우리 집은 아파트 8층이다.

만약 엘리베이터가 수리 중이라면 나는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클럽하우스 개발자가 청각장애인을 소외시킬 의도를 가지진 않았겠지.

문득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 일종의 특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