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퇴사 만 3년째를 맞은 소회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3. 2. 28.


오늘이 진짜 퇴사 3주년이라는 핑계를 대고 또 바다로 나왔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서 새 장편소설 원고를 퇴고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바다를 보니 잡생각이 많아져 끼적인다.

방 두 칸 화장실 한 칸 월세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던 시절을 생각하면, 대출을 많이 꼈어도 내 집을 마련해 사는 게 어디냐 싶다가도, 서울로 가는 광역버스 안에서 한참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도 자유로 위인 걸 확인하면, 나는 언제 벌어 서울에 집을 마련하나 기분이 막막해진다.

퇴사 3년 차, 동시에 전업작가 3년 차를 맞은 오늘 기분도 이와 비슷하다.
부지런히 써서 단행본 몇 권을 내고 영상화 판권도 몇 개 팔았으니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 싶다가도,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없는 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답답할 때도 많다.

지난해 퇴사 2년 차를 맞았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유명해질 수 있는지 고민했다.
불편한 진실인데, 한국 독자는 '좋은' 작품이 아니라 '유명한' 작가가 쓴 작품을 읽기 때문이다.

소설가가 유명해지는 방법은 내가 보기에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당연하게도 작품이 출판시장에서 확 터지는 거다.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등이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다.
잘 팔리는 유명한 작가가 되려면 일단 잘 팔려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에 도달하는데, 이렇게 될 가능성은 로또에 가깝다.
출판사도, 작가도, 평론가도, 기자도 전혀 예상할 수 없다.
그저 일이 벌어진 뒤 하나 마나 한 분석만 내놓을 수 있을 뿐이다.
로또에 당첨되려면 일단 로또를 구입해야 하듯, 터지는 작품이 나오려면 일단 부지런히 작품을 써서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여담인데 나는 17년째 매주 로또를 구입하고 있고, 지금까지 당첨된 최대 금액은 4등 5만 원이다.

다른 하나는 주요 문예지에 단편을 꾸준히 발표해 문단에 이름을 알리는 거다.
이런 코스로 가면 상업적으로 대박을 터트리진 못해도, 꾸준히 대형 문학출판사와 주요 문예지의 호출 받아 작가로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문제는 주요 문예지의 청탁을 받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점이고, 청탁받는 작가의 풀도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나는 그런 풀에 속한 작가가 아니다. 
그래도 전자보다 이쪽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전자는 그야말로 천운에 가까우니까.

작년에 나는 각본 작업을 하면서 후자에도 힘을 썼다.
작년은 내가 가장 많은 단편을 쓴 해였다.
다양한 형태로 작품을 발표했지만, 주요 문예지를 뚫진 못했다.
그래도 덕분에 첫 소설집을 낼 수 있을 만큼 단편 원고가 모였으니 헛짓거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금 깨달았다.
나는 대중소설 작가와 스토리텔러로 살아야지 문학 작가는 못 되겠구나...

올해도 유명해지기 위해 애를 써 볼 생각이다.
내가 가진 총알을 살펴보니 그나마 새 장편소설 <정치인> 원고가 쓸 만해 보인다.
전작들보다 이래저래 못난 구석이 많지만, 그래도 드라마로 만들어질 원작 아닌가.
꽤 신경 써서 손 보고 있다.
아마도 5월쯤에 출간이 될 텐데, 이왕 세상에 나오는 거니 괜찮은 대중소설로 포장하고 싶다. 

내년 이맘때엔 유명한 작가가 되어봅시다.
그전에 이왕 바다로 나왔으니 한잔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