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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레이시오스 “록의 무한확장 가능성 일렉트로닉에서 찾아”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3. 10. 4.

나는 내가 잘 모르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을 인터뷰하진 않는다.

잘 모르는 것을 억지로 인터뷰하는 것은 양심상 뮤지션들에게 못할 짓이란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힙합 등 흑인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을 단 한 번도 인터뷰 한 일이 없다.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아무리 들어도 감흥이 없었기 때문에 뮤지션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록 역시 마찬가지인데, 내 취향은 지독히 오소독스한 편이어서 밴드 기본 라인업에 전자음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레이시오스는 조금 달랐다. 확실히 뭔가 대단한 음악이란 느낌이 들었다.

제대로 이해를 할 순 없었지만 굉장한 음악이란 사실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김바다 형님... 진짜 대단하다. 한 뮤지션이 도대체 몇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레이시오스 “록의 무한확장 가능성 일렉트로닉에서 찾아”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지난 2008년 밴드 더 레이시오스(The Ratios)의 첫 정규 앨범 ‘버닝 텔레파시(Burning Telepathy)’은 ‘저주 받은 걸작’이었다. 록밴드 시나위 출신 보컬 김바다를 중심으로 결성된 더 레이시오스는 당시 국내에선 보기 드문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운 록을 선보여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 앨범은 고작 1000장만 제작된 채 사장됐고, 멤버들은 생업을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대중이 받아들이기엔 시대를 앞서간 음악이라는 평단의 아쉬움 섞인 극찬 속에 이 앨범은 묻혀갔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3년, 일렉트로닉 록은 대중에게 그리 낯선 음악이 아니다. 이디오테잎ㆍ글렌체크 등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들려주는 밴드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심지어 ‘가왕’ 조용필도 19집 ‘헬로(Hello)’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도입해 주목을 받았다. 달라진 분위기에 고무된 멤버들은 밴드 이름을 레이시오스(Ratios)로 변경하고 5년 전 앨범을 다시 손 봐 ‘러스티 이니셜라이제이션(Lusty Initialization)’이란 이름으로 재발매했다. 밴드의 멤버 김바다(보컬)ㆍ김정준(기타)ㆍ박상진(사운드메이커)ㆍ김영식(드럼)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나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김바다는 “2008년 당시 앨범을 낸 뒤 단 3번 공연을 벌였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지만 시장이 우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며 “이제 한국에도 일렉트로닉 록 신이 생겼지만, 5년이 흐른 지금도 이 앨범의 음악은 빠르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라고 재발매 소감을 밝혔다. 박상진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앨범이었지만 소속사 없이 자비로 제작한 앨범이어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며 “새로운 앨범을 제작한다는 마음으로 마스터링 작업을 다시 진행하는 등 5년 전에 의도한 결과물을 제대로 표현하고자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앨범엔 따뜻한 신서사이저 사운드와 유영하는 듯한 몽환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인 타이틀곡 ‘러브 이즈 올(Love is All)’을 비롯해 걸그룹 크레용팝이 코러스로 참여해 흥을 더하는 일렉트로닉 펑크 ‘예예예(Yeah! Yeah! Yeah!)’ 등 12곡이 담겨 있다. 원작 수록곡 ‘펑크&롤(Punk&Roll)’ㆍ‘시 더 핑키 스카이(See The Pinky Sky)’ㆍ‘록스타(Rockstar)’는 각각 ‘펑크 낫 시스터 엑스(Punk not! Sister X)’ㆍ‘다른 하늘(follow)’ㆍ‘도그 스타(Dog star)’로 이름을 바꿨다. ‘패션 이즈 러브(Passion is Love)’는 편곡을 전면 개정했다. 앨범 전반적인 사운드 또한 원작보다 풍부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도 큰 변화 중 하나다. 록음악을 담은 앨범이란 사실을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 분홍색 재킷도 인상적이다. 이들의 음악에 매료된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앨범 속지를 쓰는 일을 자청했다.

박상진은 “국내 앨범은 대부분 과도한 볼륨 경쟁을 벌여 사운드를 크게 키우는 경향이 있다”며 “우리는 볼륨을 줄이는 대신 악기의 톤을 세밀하게 잡아 섬세하고 선명한 느낌을 주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방향으로 마스터링을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록과 일렉트로닉을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겨 일렉트로닉 록을 ‘이단’으로 바라보는 록 마니아들이 적지 않다. 이 같은 시선에 대해 박상진은 “록은 매우 창의적인 음악이지만 기타ㆍ베이스ㆍ드럼이라는 고전적인 구성으로는 다채로운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데 한계가 있다”며 “일렉트로닉은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데 한계가 없기 때문에 록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오히려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김바다는 “시나위 시절에도 틈틈이 기타 이펙터를 수집해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시도를 했지만 일렉트로닉을 따라가긴 어려웠다”며 “선이 굵고 기승전결이 뚜렷한 록에 비해 일렉트로닉은 디테일한 면에서 무한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중독성 강한 음악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레이시오스가 설 수 있는 무대는 많지 않다. 밴드가 라이브를 들려줄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 적고,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아이돌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김바다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고전을 면치 못 하는 이유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며 “가장 트렌드에 민감한 광고나 예능 프로그램에선 배경음악으로 록 음악이 숱하게 흘러나오는데, 트렌드를 이끌어 가야 할 방송국이 오히려 대중의 수준을 못 따라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밴드 역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며 “밴드도 방송에 적극 출연해 자신의 모습이 외부에 어떻게 비춰지는 지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레이시오스는 오는 13일 서울 난지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대한민국라이브뮤직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 이어 이들은 연말에 단독 공연도 계획 중이다.

김바다는 “우리의 음악을 알릴 수 있다면 가요 프로그램 무대에 얼마든지 립싱크로도 오를 수 있다”며 “기회가 된다면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 등 옛 가요 명곡을 일렉트로닉으로 재탄생시켜 대중에게 선보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