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대중의 눈높이로 내려와 봄과 입을 맞추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활동을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대중음악계에 전인미답의 역사를 써내려왔다. 그는 다양한 악기의 협연 속에서 양념 취급을 받았던 하모니카의 독자성을 증명한 한국 최초의 뮤지션이었다. 2004년 데뷔 앨범 ‘우리 젊은 날’로 하모니카에 대한 진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그는 2006년 정규 2집 ‘왓 이즈 쿨 체인지(What is Cool Change)’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다른 악기들을 압도하는 탁월한 연주 앞에서 시각장애인이라는 수식어는 사족에 불과했다.
전제덕이 정규 3집 ‘댄싱 버드(Dancing Bird)’로 돌아왔다. 동료 뮤지션들과 콜라보레이션, 예술의전당에서 벌인 오케스트라 협연 등 다채로운 활동을 펼쳐온 그이지만 2집과 3집 사이의 징검다리를 건너는데 8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이 땅에서 연주자가 연주 앨범을 발표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임을 8년이라는 시간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정규 3집 ‘댄싱 버드(Dancing Bird)’는 팝에 가까운 보편적인 감성의 음악으로 대중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다소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던 2집과는 대조되는 행보다. 24일 오후 서울 관철동 카페 ‘반쥴’에서 정규 3집 쇼케이스를 벌인 전제덕을 만나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쇼케이스에서 전제덕은 “카메라가 있으면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너스레를 떨며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부드러운 멜로디를 강조하고 봄의 이미지를 많이 담아내려 노력하다보니 전작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결과물이 나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새 정규 앨범 발매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된 이유에 대해 전제덕은 “가수가 아닌 연주자가 앨범을 발표하기에 음악 시장이 더 많이 악화됐다”며 “전작은 좋은 평가를 받긴 했지만 대중이 듣기엔 다소 어려웠기 때문에 힘을 빼고 가수가 노래를 하듯이 예쁜 소리를 들려주자는 마음으로 앨범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임 평론가는 “전 세계적으로도 하모니카 연주 앨범은 많지 않다”며 “이 땅에서 하모니카 연주자가 정규 앨범을 3장이나 발표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중음악사에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앨범에는 화려한 스타카토 연주로 봄을 노래하지만 어딘지 모를 비애가 묻어나는 타이틀곡 ‘봄의 왈츠’를 비롯해 삼바 리듬위에 실은 역동적인 하모니카 선율이 인상적인 ‘댄싱 버드’, 볼레로 리듬의 라틴 발라드 ‘뒷모습’, 경쾌한 재즈 선율로 연주의 맛을 보여주는 ‘세인트 피터슨(St. Peterson)’, 유장한 벤딩 주법으로 단순한 선율에 입체감을 더하는 ‘돌이킬 수 없는’, 앨범의 유일한 커버곡으로 8분에 걸쳐 하모니카의 팔색조 매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스티비 원더의 ‘컴백 애즈 어 플라워(Come Back As A Flower)’ 등 11곡이 수록돼 있다. 작곡가 정원영, 집시기타리스트 박주원, 색소포니스트 손성제, 피아니스트 송영주 등 정상급 뮤지션들이 연주와 작곡에 참여했다.
이날 쇼케이스에서 전제덕은 ‘봄의 왈츠’ ‘멀리 있어도’ ‘세인트 피터슨’ 3곡을 라이브로 선보였다. 정수욱(기타), 윤석철(피아노), 정영준(베이스), 이희경(비브라폰), 한웅원(드럼) 등 연주자들이 하모니카의 선율에 힘을 보탰다.
전제덕은 앨범에 꽃과 새 등 봄의 이미지를 담아냈다고 말했지만, 그는 봄의 풍경을 자신의 눈으로 본 기억이 없다. 그는 생후 보름 만에 찾아온 열병으로 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전제덕은 “말로 설명하기 복잡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으면 나머지 감각들이 민감해 진다”며 “나는 몸의 다른 감각 기관을 통해 봄을 기억한다”고 전했다. 전제덕의 몸에 기록된 봄은 자작곡 ‘봄의 왈츠’를 통해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이 곡의 계절은 봄이다. 때로는 비언어적인 표현이 단편적인 설명보다 큰 힘을 가진다.
전제덕은 다음 달 19일 오후 7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연다. 그는 “게스트가 아닌 단독으로 LG아트센터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라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며 “언젠가는 조용필 선배와 꼭 같은 무대에 서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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