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앨범들에 담긴 음악들에 대한 선입견으로 경건하게 찾은 인터뷰 자리였으나 그 끝은 매우 유쾌했다.
진지함의 결정체일 것이라 생각했던 내 머릿속 이장혁의 이미지는 인터뷰 시작 몇 분만에 깨졌다.
'인간' 이장혁은 매우 유쾌하고 즐거운 아저씨였다.
나 역시 비슷한 상황을 몇 번 겪지 않았던가?
내 소설과 음악으로 먼저 나를 접한 사람들이 실제 내 모습을 보고 지었던 당혹스러운 표정들 말이다.
유쾌한 '인간' 이장혁도, 진지한 '뮤지션' 이장혁도 모두 이장혁이다.
마찬가지로 장편소설 '도화촌기행'의 저자 정진영도, 뮤지션 '육지거북' 정진영도 모두 정진영이다.
작품은 그저 그 사람의 일부일 뿐이다.
이장혁 “나는 긴 시간 발효 과정 거친 청춘의 기억을 노래한다”
이장혁은 활동 기간에 비해 과작인 싱어송라이터다. 정규 3집 역시 지난 2012년 쇼케이스까지 벌였으나 발매가 늦어진 앨범이다. 이장혁은 “쇼케이스를 벌였던 2년 전에 이미 앨범의 대부분이 완성됐으나 공연을 벌이는 도중 작업 과정의 맥이 끊겨 발매가 지연되고 말았다”며 “멜로디와 가사 등의 부분에서 보완을 거쳤다. 2년 전에 그대로 앨범을 냈더라면 후회했을 부분이 많았을 것”이라고 앨범 발매를 앞둔 소감을 밝혔다.
정규 1집 ‘Vol.1’, 2집 ‘Vol.2’와 마찬가지로 이번 앨범의 타이틀 역시 단순하게 ‘Vol.3’다. 이에 대해 이장혁은 “평소 틈나는 대로 곡을 만든 뒤 그 중 일부를 추려내 앨범을 만들다보니 곡 전체를 하나로 관통하는 타이틀을 붙이는 일은 의미가 없다”며 “앨범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수록곡 전부를 다른 성격의 곡으로 채워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공개된 수록곡 ‘빈집’은 떠나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텅 비어있는 집에 은유한 곡이고, ‘비밀’은 용서와 비난에 대한 사색을 담은 곡이다. 두 곡 모두 이장혁 특유의 우울한 정서를 곳곳에 품고 있지만, 전작과 비교해 날카로움은 다소 무뎌진 모양새다. 이 같은 곡들의 특징이 새 앨범의 색깔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장혁은 고개를 저었다. 이장혁은 “수록곡 중 가장 부드럽게 들리는 곡이 ‘빈집’과 ‘비밀’이고, 곧 공개될 곡들 상당수는 밴드 세트를 구성해 편곡했기 때문에 전작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질 것”이라며 “이번 앨범은 1집과 2집 중간에 가까운 색깔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삶의 고통을 노래하는 음악과는 달리 ‘인간’ 이장혁은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의 태도에서 음악 저류에 흐르는 슬픈 정서의 연원을 짐작하긴 쉽지 않았다. 이러한 외면적인 괴리에 대한 질문에 이장혁은 “음악은 내 일부일 뿐이기 때문에 청자가 그것만으로 내 모든 것을 파악하고 판단하길 원하진 않는다”며 “내가 앨범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개인적인 만족을 느끼기 위함이기 때문에, 팬들의 눈치를 보며 음악을 만들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물은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작가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소설로 써도 그 소설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생기듯, 음악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특별히 청자의 취향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만들진 않는다”며 “밝은 노래보다 어두운 노래를 쓰고 부르는 일이 훨씬 쉽지만 사운드는 결코 시대와 동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다행히 내 음악에 공감해줬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이장혁이 내놓은 앨범에 담긴 일관적인 주제는 지나간 청춘에 대한 상념이었다. 3집의 선공개곡 ‘빈집’과 ‘비밀’ 역시 마찬가지다. 늘 청춘을 노래하는 이유에 대해 이장혁은 “예를 들어 이별의 슬픔은 격렬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해진다”며 “나는 주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곡과 가사를 쓰는데, 그 경험들이 음악으로 만들어지려면 이를 관조할 수 있게 될 만큼의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내가 추억할 수 있는 경험은 결국 20~30대일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의 경험들이 일종의 이미지로 재조합되고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발효와 비슷하다”며 “나는 시간이 흘러야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노래할 뿐이기 때문에, 더 이상 청춘이 아닌 나는 자연스럽게 청춘을 노래할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이장혁은 오는 20일 오후 7시 서울 홍대 앞 클럽 ‘타’에서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갖는다. 밴드 해리빅버튼의 이성수(보컬ㆍ기타), 몽키즈의 이재철(보컬), 밴드 블랙백이 어쿠스틱 세트로 무대에 올라 이장혁과 함께 할 예정이다.
이장혁은 “이번 앨범은 전작들과는 달리 조금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곡을 어렵지 않은 편곡으로 풀어낸 것 같아 나름 만족스럽다”며 “2년에 한 번씩 앨범을 내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동안 녹음을 마친 곡들을 다듬어 미니앨범 형태로 발표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향후 계획을 전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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