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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뮤지션들, 음악으로 제주 해녀의 이름을 잇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4. 9. 8.

사라져가는 문화유산 해녀를 조명하는 뜻 깊은 앨범이 발매됐다.

참여 뮤지션들 중 프롬, 강아솔, 이기쁨을 따로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3명 모두 나와 잘 아는 사람들이라 말이 인터뷰지 잡담에 가까운 즐거운 시간이 계속 됐다.

음악적으로도 기타 콘텐츠 면에서도 매우 훌륭한 앨범이다. 강추!!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호오이…….”

제주도 바닷가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에 뒤섞여 들리는 이 소리는 단순한 휘파람이 아니다. 이 소리는 바닷속 깊은 곳에서 물질을 하던 해녀가 수면 위로 떠올라 참았던 숨을 힘껏 내쉬는 소리, 이른 바 ‘숨비소리’다. 초인적인 잠수를 거듭하며 생사를 넘나드는 드는 일을 일상으로 여기는 해녀들에게 ‘숨비소리’는 세상에 살아있음을 알리는 작지만 절박한 선언이다. 

특별한 장비 없이 바닷속에서 숨을 참고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는 전 세계적으로 제주와 일본 일부에만 존재하는 희귀한 문화유산이다. 이 때문에 해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놓고 일본의 아마(海女)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수심 20m 이상을 잠수하고 고유의 공동체 문화를 가진 해녀와 몸에 줄을 묶고 수심 5m 가량의 얕은 바다에서 일하는 아마의 수준 차는 극명해 보인다. 그러나 제주 해녀생애사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제주 해녀는 4574명이며, 대부분 예순 살 이상의 고령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많은 뮤지션들이 소중한 무형문화유산인 해녀를 잊지 말자는 뜻에 공감했고, 그 공감은 국내 최초 해녀 헌정 앨범 ‘해녀, 이름을 잇다’ 발매로 이어졌다. 지난 5일 서울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앨범에 참여한 싱어송라이터 프롬과 강아솔, 여창가객 이기쁨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제주도 출신 뮤지션으로 16살 소녀 해녀를 주제로 만든 곡 ‘물의 아이’를 앨범에 실은 강아솔은 “제주도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사투리로 일기를 쓰고 해녀박물관에서 현장학습을 하는 등 고향에 대해 많은 교육을 받기 때문에, 대부분 고향에 대해 각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며 “익숙하지만 사라져 가는 존재인 해녀를 다룬 앨범이기 때문에 참여 제의를 받았을 때 감사한 마음이 우선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앨범에 ‘숨비소리’라는 곡을 실은 이기쁨은 “내가 부르는 가곡(歌曲)은 고려 말부터 명맥을 이어 온 매우 오래된 전통음악이지만 서양의 가곡에 이름을 내줬고 국악 내부에서도 소외받는 존재”라며 “낭만적으로만 여겨왔던 해녀가 실은 점점 사라져가는 처지라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꼈고, 해녀도 가곡도 여전히 숨 쉬고 살아있는 문화유산임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에는 세 명 외에도 정훈희, 한동준, 윤영배, 김목인, 한소현, 데빌이소마르코, 에브리싱글데이, 로큰롤라디오, 배우 윤희석, 기타리스트 정성하 등 다양한 장르와 연령대의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이들이 노래하는 해녀는 세간의 피상적인 인식처럼 마냥 낭만적이거나 애달프지 않다. 참여 뮤지션들이 일기처럼 솔직하게 써서 앨범에 담은 후기는 진솔해 음악의 깊은 이해를 돕는다. 해녀에 대한 세 뮤지션의 인식은 저마다 다채로웠다. 

국내 최초 해녀 헌정 앨범 ‘해녀, 이름을 잇다’이 지난 2일 발매됐다. (왼쪽부터) 이번 앨범에 참여한 싱어송라이터 프롬과 강아솔, 여창가객 이기쁨.



프롬은 “예전에는 해녀를 그저 마음만 먹으면 어떤 해산물이든 건져 올릴 수 있는 멋진 존재로 여겼는데, 앨범 참여 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며 “해녀들은 매일 잠수하는 바다를 두려워하고 있었고, 나이 듦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모진 삶을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 마음이 많이 무거워졌다”고 회상했다.

강아솔은 “제주도 여성답게 강한 생활력을 가진 해녀들은 힘들게 일하지만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바다를 해치지 않은 한도 내에서 많은 이들을 풍요롭게 만든다”며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이기쁨은 “해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실력을 인정받아 해외출장까지 다녔을 만큼 앞서갔던 여성이었다”며 “해녀는 많은 애환 속에서도 직접 물질해 벌은 돈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며 자부심을 느꼈던, 그 누구보다 긍정적인 삶을 산 존재라는 사실을 앨범에 참여하면서 깨달았다”고 전했다.

앨범 발매에 맞춰 미니 다큐멘터리 ‘침중풍경’도 함께 공개됐다. 특히 다큐멘터리는 바닥의 돌을 뒤집는 해녀의 물질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조명, 해녀의 가치가 단순한 문화유산 이상임을 밝혀 눈길을 끈다. 이밖에도 다수의 신예 작가들이 다양한 작품(일러스트, 단편소설, 캘리그래피, 사진)으로, 비영리단체 제주문화컨텐츠연구소가 제작과 제주도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지원으로 앨범에 힘을 보탰다. 앨범의 수익금은 해녀를 주제로 한 다양한 콘텐츠(해녀레시피 개발, 사진집, 스토리북, 단편영화 등) 제작비용으로 환원된다. 참여 뮤지션들은 추후 제주와 서울에서 앨범을 주제로 다룬 합동 콘서트를 벌일 계획이다.


“무엇이든 억지로 일을 진행하면 안 되는 게 많잖아요? 이번 앨범을 들으시면 자연스럽게 해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거예요. 이제 시작이고, 그 시작을 함께 하게 돼 영광입니다.”(이기쁨)

“우리의 것이기 때문에 지켜야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워요. 이번 앨범을 듣고 자연스럽게 인터넷에서 해녀를 검색하고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프롬)

“해녀가 일본의 아마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번 앨범이 해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강아솔)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