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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1년 전 레이디스 코드와의 사소한 추억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4. 9. 8.

1년 전 밝은 표정으로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눴던 멤버들을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다시 못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은비와 리세의 사망 소식과 관련된 기사를 접하는 일이 몹시 불편하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의 부고를 기사로 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비애로웠다.

나는 되도록 짧게 부고 기사를 썼고, 그 외에는 이들과 관련된 어떤 기사도 쓰질 않았다.

그것이 이들에 대한 예의 같았고, 또 내가 나를 심적으로 방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레이디스 코드와는 1년 전 딱 한 번 얼굴을 맞댄 인연 밖에는 없지만, 내게 있어 이들의 모습은 꽤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난해 딱 이 맘 때 나는 새 앨범을 발표한 레이디스 코드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는 저녁 무렵 멤버들의 연습실에서 진행됐다.

 


나는 멤버들이 출출할 것 같아 잠시 연습실 근처 KFC에 들러 치킨을 잔뜩 싸들고 연습실을 찾았다.

주로 인디 뮤지션들과 친분을 쌓은 나는 인터뷰 시 늘 뮤지션들에게 술 한 잔을 사 먹이며 이야기를 나누곤 해왔다.

쉽게 여기저기서 얻어 먹는 기자들의 거지근성을 경멸하는 터라 나는 되도록이면 꼭 술 한 잔을 따로 사는 편이다.

차마 걸그룹에게는 술을 권할 순 없어서 별 생각 없이 치킨을 싸들고 갔는데... 나는 걸그룹의 생활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말 그대로 이들은 걸그룹이다. 대중에 비치는 모습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당시 멤버들은 컴백 무대를 앞두고 있어 급식이 극히 제한된 상황이었다.

내가 싸온 치킨을 바라보는 멤버들의 눈빛은 정말 애처로웠다.

나는 너무 안쓰러워서 매니저에게 한 조각이라도 먹이면 안 되느냐고 물었지만 대답은 "절대 안 된다"였다.

인터뷰 내내 몇몇 멤버들은 멀리 떨어진 치킨 포장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부러 뜨끈한 걸 사들고 갔는데도 정말 미안했다.



멤버들은 내게 "기자님 배고프시죠? 드시면서 인터뷰하셔도 된다"고 힘없이 말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어떻게 치킨을 멤버들 앞에서 먹으며 인터뷰를 한다는 말인가? 같이 굶었다.

함께 배고픔을 공유한 사이인 만큼 오가는 이야기의 친밀도는 매우 높았다.

이날 인터뷰는 내가 아이돌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만들어 준 의미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내가 멤버들에게 어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으냐고 묻자 "'식신로드'에 출연해 마음껏 닭을 먹고 싶다"던 은비의 모습이 떠오른다.

인터뷰가 끝난 뒤 쉴 새 없이 '스타 다이빙쇼 스플래쉬' 촬영 채비를 위해 나서던 리세의 다소 피곤해 보이던 표정도 떠오른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문득 멤버들의 1년 전 모습이 떠올랐고,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애틋했던 순간들을 블로그 방문자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은비와 리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