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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에피톤 프로젝트 “다채로운 밤의 이야기 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4. 9. 12.

오는 16일 정규 3집 '각자의 밤'을 발표하는 세정이와 인터뷰를 가졌다.

서로 너무 잘 아는 사이에 심층 인터뷰는 무슨... 이미 많은 부분이 술자리에서 나눴던 이야기들이다.

앨범을 들으면서 "세정이가 정말 속으로 칼을 많이 갈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에피톤표' 음악에 변화를 주면서도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정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앨범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영리한 결과물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앨범에는 내가 세정이에게 꽤 생색을 낼 부분이 하나 있다.

선우정아를 세정이에게 소개시켜준 사람이 나 아닌가. 하하하~

아.. '환상곡' 정말 어마어마하다. 선우정아의 보컬이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에 딱 들어맞을 줄이야...

이 곡을 듣고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은 전주만 들어도 안다'는 말을 할 사람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가요계의 황금기’ 90년대의 감수성을 간직한 채 21세기를 사는 이들에게 작곡가 1인 프로젝트 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는 자그마한 비상구다. 주류 음악시장이 아이돌 중심으로 장르의 획일화를 마쳐가던 2000년대 말, 에피톤 프로젝트는 온갖 음악적 실험이 이뤄지던 인디 신에서 보기 드물게 좋은 멜로디와 가사를 담은 ‘웰메이드 팝’에 천착해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놓았다.

에피톤 프로젝트는 윤상, 토이(TOY), 015B로 대표되는 ‘가요계의 황금기’ 주역들이 21세기에 등장해 들려줬을 법한 음악으로 인디 신을 넘어 주류 시장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음반 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수 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돌풍을 일으킨 정규 1집 ‘유실물 보관소(2010)’와 2집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2012)’는 장르의 획일화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과 ‘웰메이드 팝’을 향한 열망을 방증한다. 이제 에피톤 프로젝트는 주류와 인디를 넘어 이름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에피톤 프로젝트가 오는 16일 정규 3집 ‘각자의 밤’을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한다. 지난 11일 서울 서교동 파스텔뮤직에서 에피톤 프로젝트의 차세정을 만나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는 16일 정규 3집 ‘각자의 밤’을 발매하며 컴백하는 에피톤 프로젝트. [사진 제공= 파스텔뮤직]


▶ 기존의 ‘에피톤 표’ 음악은 잊어라= 차세정은 “지난 2012년에 발매된 이승기 5.5집 ‘숲’ 작업 이후 떠난 프랑스 여행에서 파리의 바토무슈(유람선)를 타고 바라본 센 강의 야경에 매료돼 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며 “밤이라는 내밀한 시간을 배경으로 살아 움직이는 수많은 감정들에 대한 상념을 앨범으로 엮어봤다”고 앨범 발매 소감을 밝혔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 ‘미움’을 비롯해 ‘각자의 밤’ ‘환상곡’ ‘낮잠’ ‘플레어’ ‘친퀘테레’ ‘불안’ ‘시월의 주말’ ‘유서’ ‘회전목마’ ‘환기’ ‘나의 밤’ 등 13곡(보너스트랙 포함)이 실려 있다. 변화는 리듬을 강조한 연주로 재즈 풍의 도회적인 멜로디를 들려주는 첫 곡 ‘각자의 밤’에서 바로 예고된다. 이 같은 변화는 제11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에 빛나는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가 보컬로 참여한 다음 곡 ‘환상곡’에서 절정에 달한다. 변화무쌍한 리듬 변화와 화성 진행, 이를 가지고 노는 듯한 보컬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낯선 느낌을 주지 않는 ‘환상곡’은 에피톤 프로젝트의 유연함과 음악적 역량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역작이다. 

차세정은 “주변으로부터 ‘전주만 들어도 에피톤 프로젝트’라는 말을 듣고 내가 자기복제를 하고 있는 아닌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됐다”며 “자신의 음악에 스스로 갇혀서 취하면 위험하다는 생각에 변화에 중점을 주면서도 낯설지 않은 곡을 앨범에 담아내고자 노력했다”고 전했다.

이번 앨범의 또 다른 특징은 다채로운 음악적 스펙트럼이다. 12현 기타의 풍요로운 음색과 70년대 이탈리아 아트록 사운드를 대표하는 악기인 멜로트론(Mellotron)을 재현한 소리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플레어’, 거대한 스케일의 악기 편성과 편곡으로 동화적인 풍경을 공간감 있게 표현한 ‘회전목마’, 죽음을 어둡지 않게 담담한 정서로 그려낸 ‘유서’와 같은 곡은 에피톤 프로젝트가 단순히 좋은 팝만을 들려주는 뮤지션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또한 차세정은 전 곡을 자신의 보컬로 채웠던 전작과는 달리 신인 손주희와 아진(Azin)을 객원 보컬로 기용해 변화에 더욱 힘을 줬다. 여기에 함춘호(기타), 박주원(기타), 이신우(베이스), 신석철(드럼), 이효석(건반), 송영주(건반) 등 정상급 연주자들이 대거 앨범에 참여해 힘을 보탰다. 

차세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장편소설 같았던 전작과는 달리 이번 앨범은 수록곡들 모두 개별 싱글로 발표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개성이 강해 단편소설집을 닮았다”며 “음악에 가장 빠르게 변화를 줄 수 있는 방법은 보컬을 바꾸는 것인데 이번 앨범에는 되도록이면 신인의 목소리를 담고 싶었고, 앞으로도 내 곡에 어울리는 보컬이 있다면 굳이 내가 보컬을 고집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 CDㆍLP 동시 발매…새로운 도전= 이번 앨범은 이례적으로 LP로도 함께 발매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밥 딜런(Bob Dylan)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의 LP를 만든 명가인 미국 RTI가 제작을 담당했다. LP는 음질과 안정성을 고려해 2장으로 나뉘어 발매된다. 세계적인 스튜디오로 손꼽히는 영국 메트로폴리스 스튜디오(Metropolis Studio)의 엔지니어 스튜어트 혹스(Stuart Hawkes)가 이번 앨범의 마스터링(녹음된 여러 곡의 음색과 소리의 균형을 전체적으로 잡아주는 과정)을 맡아 완성도를 높였다.

차세정은 “LP는 음질도 좋은 편이지만, 쉽게 다음 곡으로 넘어갈 수 있는 MP3 음원과는 달리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게 만드는 매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며 “앨범의 마스터링을 처음으로 해외에서 시도했는데, 과거와는 달리 인터넷의 발달로 외국 유명 스튜디오의 사운드를 실시간으로 다양하게 체험해보고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평가했다.

에피톤 프로젝트는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공연장 외의 장소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앞으로 방송에 출연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차세정은 “보이는 일을 자주하게 되면 앉아서 음악을 만들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며 “내가 방송을 통한 노출을 자제하는 이유는 내 음악을 충실하게 만들기 위함이고, 또 성격상 나서서 즐겁게 말을 할 수 있는 재주가 없다”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에피톤 프로젝트는 오는 27~28일 부산 센텀시티 소향시어터 롯데카드홀, 다음 달 3~5일 서울 올림픽공원 88호수 수변무대에서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개최한다. 이에 앞서 에피톤 프로젝트는 오는 14일 오후 6시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3집 LP 음악감상회를 마련한다. 이번 음악감상회에는 앨범 수록곡들을 원음에 가까운 사운드로 감상할 수 있도록 초고가 하이파이(Hi-Fi) 사운드 장비들이 대거 투입될 계획이다.

차세정은 “부산과 서울에서 벌이는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는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인 만큼 대규모 편성으로 화려한 무대를 선보일 것”이라며 “지난해 이번 앨범의 수록곡 ‘시월의 주말’과 같은 타이틀로 장기 소극장 공연을 벌였는데 공연을 치를 때마다 즉석에서 피드백을 받으며 여유롭게 변화하는 내 모습이 즐거웠다. 기회가 되면 앞으로 또 이 같은 공연을 펼쳐보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