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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X파일> ‘토토가’ 주역들, 생명연장 꿈꾼다면 조용필을 보라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1. 4.

지난 2년 동안 나는 기자의 입장에 충실하려고 했을 뿐 그다지 내 목소리를 내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나는 조금씩 이런저런 잔소리를 할 생각이다.

보수적인 신문지면으로 잔소리를 하는 일은 어렵겠지만, 온라인은 별 제한이 없으니 말이다.


어렵게 쓸 생각은 없다. 어렵게 글을 쓸 재주도 능력도 못 되고 말이다.

가장 평균적인 대중의 시선과 입장에서 실컷 떠들 계획이다.

이 기사 같지도 않은 기사는 그 시작이다.


기사원문 :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50104000355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오늘 아침 한 음원 차트 때문에 기자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약 20년 전 기자의 학창시절 히트곡인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실시간 차트 정상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그 아래로 엄정화의 ‘포이즌(Poison)’, 쿨의 ‘애상’, 터보의 ‘러브 이즈(Love is…)’, 소찬휘의 ‘티얼스(Tears)’, 김현정의 ‘그녀와의 이별’ 등 기자의 학창시절 히트곡들이 줄줄이 십 수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와 차트 상위권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의 실시간 차트 톱10에도 ‘잘못된 만남’이 아이돌들의 히트곡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더군요. 

이미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를 통해 추억의 힘을 느낀 기자이지만, 매시간 변동하는 치열한 실시간 음원차트에서도 옛 히트곡들이 이 정도로 힘을 쓸 줄은 몰랐습니다. 이 같은 90년대 가요의 차트 역주행을 통해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라는 기가 막힌 판을 깔아준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사실 이 같은 90년대 가요의 열풍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많은 90년대 히트곡들이 재조명을 받았습니다. 이후 90년대 음악을 틀어주는 주점 ‘밤과 음악사이’, 당대의 히트 가수들이 모여서 벌인 콘서트 ‘청춘나이트 콘서트’ 등이 많은 인기를 끌었죠. 다만 ‘토토가’는 당대의 히트 가수들의 건재함을 직접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복고열풍과 궤를 조금 달리 합니다. 그 시절의 노래를 다시 꺼내 듣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생생함이 동시대를 추억하는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는 것이 기자의 의견입니다.

누군가가 기자에게 “이 같은 복고열풍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느냐”고 묻는다면 긍정적인 대답을 할 겁니다. 현재 복고열풍의 가장 큰 소비자가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내며 문화적 세례를 받고 자란 이들이니까요. 그러나 “‘토토가’에 출연한 가수들의 인기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느냐”고 묻는다면 기자의 입장은 비관적입니다. 유행이 유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양질의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투입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토토가’에 출연한 가수들 중 김건모, 엄정화 등 일부는 추억의 주인공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최근 들어 뜸해졌어도 이들은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며 활동해 와 8090 이후의 세대에게도 익숙한 얼굴들이기 때문이죠. 또한 이들은 ‘토토가’에 출연한 가수들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무대를 보여줬습니다. ‘토토가’가 아니어도 자신의 먹을거리를 자력으로 충분히 찾을만한 음악적 역량을 가진 가수들이라는 겁니다. 



벌써부터 ‘토토가’에 출연했던 가수들 중 일부가 컴백 소식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들 외에도 당대의 히트 가수들이 하나둘씩 컴백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는 소식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옵니다. 이에 대해 기자는 우려가 큽니다. 충분한 준비가 없는 컴백은 유행에편승한 ‘추억팔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90년대에 반짝 히트한 가수들이 이후 오랫동안 가요계에서 활동하지 못한 이유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상 유지에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당대에 함께 활동한 가수들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들 대부분이 아티스트로 진화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추억에 빠져 살기에는 8090 세대들 앞에 놓인 현실이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추억의 순간적인 달콤함이 고용불안과 경제적 불안정을 해결해주지 않으니까요. 90년대 가요의 음원 차트 강세는 10~20대의 관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인데, 이들의 호기심은 쉽게 지칩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매력적인 가수들이 많거든요.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매력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토토가’로 오랜 만에 얻은 반짝 인기는 쉽게 사그라지고 말겁니다. 

‘토토가’로 주목을 받은 가수들이여. 모처럼 잡은 천금 같은 기회를 발판으로 생명연장을 꿈꾸나요? 그렇다면 모범답안은 ‘가왕’ 조용필이라는 것이 기자의 소견입니다. 가수들의 입장에서 ‘가왕’은 범접하기 어려운 먼 존재일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기자의 소견이 뚱딴지처럼 들릴 수도 있겠죠. 그러나 ‘가왕’이 지난 2013년에 19집 ‘헬로(Hello)’를 발표하며 보여준 컴백 과정은 추억이 어떻게 추억을 깨고 현실에 안착하는가를 보여준 명답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왕’의 컴백이 늘 19집처럼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가 지난 2003년에 발표한 18집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는 음악적으로 나무랄 것 없는 멋진 앨범이었지만 너무 우아했습니다. 1998년에 발매된 17집 ‘엠비션(Ambition)’은 성인취향의 소박한 앨범이었고요. 따라서 반향은 한정적이었죠. 

19집을 만들 때 ‘가왕’은 완성도 높은 ‘현재’의 음악으로 대중에 다가서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그는 SM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 등 대형기획사의 아이돌들에게 곡을 주는 외국인 작곡가들까지 섭외하는 등 치열하게 시간을 두고 앨범을 준비했습니다. 거의 다 만든 앨범이 마스터링 과정에서 몇 차례나 엎어지기도 했죠. 그 결과 10~20대들도 움직이게 만드는 젊은 앨범이 탄생했죠. ‘가왕’이 전성기에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려는 태도를 취했다면 아이돌들의 전유물인 ‘뮤직뱅크’ 1위도 없었을 겁니다.

컴백을 준비하는 가수들이 ‘가왕’의 행보를 그대로 따르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멀리 봐야 오래 간다는 ‘가왕’의 태도 하나 만큼은 반드시 본 받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정말 오랜 만에 얻은 소중한 기회이지 않습니까? 당장 배가 고프다고 덜 여문 열매를 따 먹으면 배탈이 납니다. 그리고 내일 먹을 열매도 없습니다. 준비 없이 급조된 곡으로 컴백하는 순간, ‘토토가’ 무대 위로 쏟아진 함성은 바로 잦아들 겁니다. 대중은 냉정하고 똑똑합니다. 조금 시간이 들더라도 예전보다 조금 더 멋지게 음악적으로 진화된 모습으로 재등장한다면 8090 세대들에게 더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 팬들은 예전보다 떨어지는 기량을 겨우 보여주는 아슬아슬한 무대를 원하지 않습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