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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기사 및 현장/음악 및 뮤지션 기사

<취재X파일> 한국대중음악상 후보로 본 K팝의 영양실조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2. 5.

한국대중음악상이 참 고맙고 안쓰럽다.

음악을 전부로 여기기에 어려운 세상인데도 좋은 음악을 만들어주는 뮤지션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비만인들도 영양실조에 걸린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열량이 높은 음식을 많이 먹어도 비타민이나 미네랄 섭취가 부족하면, 즉 필수영양소 보충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영양실조에 걸릴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원푸드 다이어트(사과, 계란 등 한 가지 식품만 집중적으로 섭취하는 다이어트 방법)를 무리하게 지속하면 영양실조에 걸리기 쉽다더군요. 기자가 대중음악 담당으로 만 2년여의 시간을 보내면서 느낀 한국 대중음악계의 모습은 영양실조에 걸린 비만인입니다. 매년 이맘 때 발표되는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작들은 대중음악계의 이 같은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위원장 김창남)가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체 4개 분야 26개 부문에 걸쳐 수상 후보를 발표했습니다. 

올해로 12회 째를 맞은 한국대중음악상에 최다 부문 후보로 오른 뮤지션은 지난해 첫 앨범 ‘비밀’을 발매한 신인 듀오 김사월X김해원입니다. 김사월X김해원은 퇴폐적이면서도 매혹적인 독특한 포크 음악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아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올해의 신인’ ‘최우수 포크 음반’ ‘최우수 포크 노래’ 등 총 5개 부문 후보 자리를 꿰찼습니다. 밴드 9와숫자들, 싱어송라이터 권나무,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은 4개 부문 후보로 지명돼 뒤를 이었죠.

문제는 후보작들 상당수가 대중에게 낯설다는 점입니다. 후보작 중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이돌은 인피니트(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핫펠트(최우수 팝 노래), 태양(최우수 알앤비&소울 노래)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특히 한국대중음악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종합분야의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올해의 음악인’ ‘올해의 신인’ 부문 후보는 대중에게 더욱 낯섭니다. 


이런 괴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이는 한국대중음악상이 다루는 대중음악의 영역과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대중음악의 영역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후보 선정위원인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는 한국대중음악상이 다루는 대중음악의 범위를 “클래식과 포크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은 모든 형태의 음악”이라고 밝혔습니다. 일반 대중이 대중음악으로 여기는 음악의 범위에 대한 정의는 없지만 아마도 미디어를 통해 잘 알려진 음악일 것입니다.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된 한국대중음악상은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미국의 그래미 어워드처럼 평론가, 기자, 프로듀서 등 대중음악계 전문가들이 대거 후보 선정에 참여하고 시상합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주도하는 연말 가수상이나 인지도와 음반 판매량만을 기준으로 하는 각종 시상식들이 뮤지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이 그 출발이었죠. 

김창남 선정위원장은 한국대중음악상의 취지에 대해“ 대중음악을 단순히 상업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우리 시대와 삶, 감성을 기록하는 하나의 예술로 인식하기 위해 만든 시상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잘 알려진 음악이 이런 취지에서 벗어난다면 후보에 오르기 어렵겠죠. 흥행력이 반드시 작품성을 보장하진 않으니까요. 반대로 미디어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도 작품성이 높으면 거의 예외 없이 한국대중음악상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 없이 음악적 성취만을 심사하는 한국대중음악상은 10여년이 흐른 지금,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 중 하나입니다. 그러다보니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은 평소에는 결코 만날 일이 없을 법한 뮤지션들이 한 무대에 동시에 서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죠.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대중음악의 범위가 아이돌 중심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으로 좁아진 가장 큰 이유는 미디어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대다수의 미디어는 현상을 따라가는데 급급한 상황입니다. 즉 현재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혹은 유행하는 이슈가 미디어의 취재대상입니다. 왜냐고요? 그게 안전하거든요. 좋은 음악이든 아니든 간에 열독률과 시청률에 도움 되지 않는 음악을 굳이 품을 들여 조명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미디어 내부에 팽배해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익숙해지는 겁니다. 완성도와 관계없이 미디어를 통해 노출이 많이 되는 음악은 흥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결과는 여러분들도 다들 아시다시피 장르의 획일화입니다. 관심을 받는 음악은 계속 관심을 받고, 소외된 음악은 계속 소외되는 현상이 가속화됐습니다. 그래서 미디어가 성공했느냐고요? 영향력이 크다는 텔레비전을 예로 들어보죠. 지상파 3사의 대표 음악 프로그램인 KBS 2TV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의 시청률은 모두 2~3% 내외로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3사 음악 프로그램 시청률을 모두 합쳐도 지난 2일 방송된 KBS 1TV ‘가요무대’의 시청률 12.8%(닐슨코리아 기준)을 넘지 못합니다. 영양실조에 걸린 비만인과 다를 바 없는 처지입니다.

향후에도 미디어들이 지금과 같은 기조를 포기할 것 같진 않아 보입니다.KBS 2TV ‘탑밴드’, MBC ‘아름다운 콘서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계속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저조한 시청률 때문이었습니다. 기사들 역시 인터넷에서 트래픽을 많이 확보하기 위한 어뷰징을 일상처럼 벌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릴 수 있을지 알고리즘을 연구하기 위해 혈안이죠. 아마도 이 기사는 포털 메인에 걸릴 일이 없을 겁니다. 댓글 하나 달리지 않을 가능성도 높고요. 뭐 익숙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가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미디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단순한 기업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미디어가 스스로 공공재의 성격을 외면한다면 더 이상 미디어일 수 없습니다. 미디어가 변화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노력할수록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대중음악의 범위도 점점 넓어지겠죠.

한국대중음악상은 이제 미디어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시상식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한국대중음악상이 같은 영향력을 갖게 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시상식 개최 자체가 불투명했던 일도 있었고요. 한국대중음악상의 권위는 대중음악시장의 변화를 위해 10년 이상 노력해 온 결과물입니다. 

박은석 평론가는 “음악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알리는 역할을 하자는 것이 시상식의 취지”라며 “시상식을 통해 대중과 미디어에게 좋은 음악이 있음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하더군요. 한국대중음악상은 미디어가 외면했던 많은 역할들을 대신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기자는 영양실조에 걸린 한국 대중음악계의 치료를 위해 한국대중음악상과 미디어의 교집합이 점점 넓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