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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추천 앨범

<정진영의 이주의 추천 앨범> 14. 한대수 ‘리버스’ㆍ블루 벨벳 ‘펠, 폴, 풀리시’ 외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4. 22.

한국 대중음악계의 적지 않은 어르신들 중에서 한대수 쌤보다 더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앨범을 내는 뮤지션들이 있나?

앨범을 위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구름처럼 모여든 정상급 뮤지션들이 한대수 쌤의 위상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블루 벨벳과 김선욱.

오!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다.

김선욱은 정규작이면 더 좋았을 텐데...



<정진영의 이주의 추천 앨범> 14. 한대수 ‘리버스’ㆍ블루 벨벳 ‘펠, 폴, 풀리시’ 외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 한대수 데뷔 앨범 40주년 기념 헌정 앨범 ‘리버스(Rebirth)’= 들국화의 전인권, 강산에, 김목경, 백두산의 김도균, 시나위의 신대철, 손무현, 글래머솔의 김영진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가들이 한데 모인 앨범을 상상해보신 일이 있나요? 상상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일인데 이 같은 상상이 현실로 이뤄졌습니다. 그것도 오직 한 사람의 ‘로큰롤 할배’를 위해 말입니다.

이 앨범은 ‘한국 포크의 전설’ 한대수의 데뷔 앨범 ‘멀고 먼 길’ 발매 40주년을 기념해 한대수를 재조명하고자 제작됐습니다. ‘행복의 나라로’ ‘물 좀 주소’ 등 한대수의 대표곡들을 재해석한 곡들을 비롯해 신곡 ‘나는 졌어’ ‘내 사랑’ 등 총 13곡이 이 앨범에 담겼죠.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은 익숙한 듯하나 신선하고, 투박한 듯하나 세련됐습니다. 윤도현은 ‘행복의 나라로’를 호쾌한 록으로 변모시킨 뒤 한대수의 목소리를 끌어들여 앨범의 문을 엽니다. 한대수를 ‘쎄시봉’ 시절부터 지켜본 조영남은 ‘바람과 나’를 특유의 깊은 목소리로 여유롭게 소화하며 연륜을 드러내고 있죠. 지난해 세월호 참사 추모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쓰여 관심을 모았던 ‘그대’는 잔잔한 멜로디를 살리는 클래지콰이의 호란의 섬세한 목소리와 함께 매력적인 팝으로 변신했습니다. 전인권은 오래전 한대수가 겪은 어두운 시대를 ‘자유의 길’을 통해 쓸쓸하면서도 짙은 목소리로 되짚습니다. ‘옥의 슬픔’은 간소한 편곡과 강산에의 걸쭉한 목소리와 만나 헛헛함을 더했고, 몽니는 강력한 록 사운드로 무장한 ‘멍든 마음 손에 들고’로 더 이상 젊지 않은 한대수를 대신해 도발합니다. 한대수의 명반 ‘무한대’에도 함께 했던 글래머솔의 김영진은 ‘과부타령’을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만드는 펑키한 록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한데 모인 절정고수들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인상 깊은 풍경은 ‘물좀 주소’ ‘런 베이비 런(Run Baby Run)’ 입니다. 이현도와 가리온의 MC메타가 전자음과 랩을 더해 현대적인 의상으로 갈아입힌 ‘물 좀 주소’는 이번 앨범의 성격인 오래된 새로움을 잘 드러내는 극적인 작품입니다. 한대수가 ‘4G’라고 아껴 부르는 기타리스트 4명(김목경, 김도균, 신대철, 손무현)의 블루스 잼 협연은 ‘런 베이비 런’을 멋들어진 로큰롤로 승화시켰죠.

한대수는 오는 25~26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콘서트를 엽니다. ‘로큰롤 할배’의 열정은 그날 그곳에서 확인해보시길.




▶ 블루 벨벳(Blue Velvet) 정규 1집 ‘펠, 폴, 풀리시(Fell, Fall, Foolish)’= 복고적이면서도 끈적끈적한 사운드. 문득 귀에 박히는 한글 가사가 아니었다면, 이 앨범의 국적은 영미권의 어딘가로 오해를 받았을 겁니다. 그만큼 이 앨범에는 원초적이면서도 이국적인 사운드로 가득합니다.

이 앨범의 사운드를 이해하려면 밴드의 역사를 훑는 것이 우선이겠군요. 밴드의 이력에 대해선 단편적인 추적만 가능할 뿐이지만, 이 앨범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으로 삼기엔 충분해 보입니다. 밴드는 지난 2003년 버진스(Virgins)란 이름으로 결성된 이후 서울 구로디지털 단지 외딴 술집에서 첫 연주를 시작해 10명의 드러머 교체를 겪었고 홍대 인디신을 거쳐 대학로, 건대 신을 지나 호주 멜버른으로 진출해 라이브 클럽을 떠돌았습니다. 멜버른이란 장소가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오는군요. 

멜버른은 이 앨범의 사운드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큰 열쇠로 보입니다. 앨범의 문을 여는 곡으로 70년대 펑크록을 연상케 하는 사운드가 인상적인 ‘에어 제플린(Air Zeppline)’은 앨범 설명에 따르면 밴드가 멜버른에서 활동할 때 만들어진 곡입니다. 타이틀곡으로 영화 ‘런던의 늑대인간’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워울프 인 더 블루 문(Werewolf In The Blue Moon)’은 한글 가사만 아니었다면 기타의 퍼즈(Fuzz) 사운드에서 국적을 짐작할 수 있었을까요? ‘할리 퀸(Harley Quinn)’의 생생함이 넘치는 변화무쌍한 펑크록 사운드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밴드가 멜버른으로 향하던 당시의 심정은 수록곡 ‘지하실의 혐오와 공포(Fear And Loathing In Underground)’ 경쾌한 리듬과 상반되는 자조적인 가사와 ‘여행자’의 처량하면서도 몽환적인 사운드에서 엿보입니다.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밴드의 고민은 여전한 듯합니다. 흥겨운 로큰롤 사운드 위에 실린 ‘향수병’의 가사를 살펴보면 말입니다. “햇살 눈부셨던/인천 공항 벤치에 앉아/멍하니 창문 밖만/바라보고 있었지/내가 돌아올 곳이라/생각해서 왔건만/내가 돌아올 곳 따윈 없었네”. 하지만 밴드가 자조하기에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좋은 음악과 연주가 이 앨범에 실려 있군요. 지금부터 이 밴드의 행보를 함께 지켜보기로 하지요.




※ 살짝 추천 앨범

▶ 김선욱 미니앨범 ‘스테이 콜드(Stay Cold)’= 탁 트인 이국적인 공간으로 청자를 이끄는 투명한 사운드와 멜로디의 컨트리. 최근 몇 년 사이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 신인 싱어송라이터들이 들려준 다소 뻔한 음악에서 벗어난 결과물이라 즐겁고 반갑다. 정규작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 센티멘탈 시너리(Sentimental Scenery) 정규 2집 ‘일레븐 데이즈(11 DAYS)’= 싱어송라이터로 변신한 일렉트로닉 뮤지션의 첫 야심작. 연주곡 중심 뮤지션이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기대 이상의 보컬. 요즘 세상에 더블앨범이라니. 파스텔뮤직의 색깔에서 벗어나 더 과감한 시도를 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 마이큐(My Q) 정규 5집 ‘스프링 서머 2015 이슈 넘버 1(Spring Summer 2015 Issue No.1)= 복고적인 질감의 섬세한 사운드와 리듬, 팝부터 록과 힙합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움.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