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아카시아가 피어나고 있어 아카시아를 쓸까 고민하다가 내년으로 미뤘다.
가뜩이나 사진 촬영 실력이 별로인데, 쓸 만한 아카시아 사진이 없었다.
고민하며 길을 걷던 중 골목 곳곳에 피어난 노란 씀바귀꽃이 보였다.
고민이 바로 사라졌다.
<식물왕 정진영> 17. 쓴맛에 감춰진 소박한 아름다움 ‘씀바귀’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독자 여러분은 고기를 드실 때 주로 어떤 쌈채소를 곁들이시나요? 기본 쌈채소는 역시 어디에나 어울리는 담담한 맛의 상추이겠죠. 취향에 따라 깻잎, 겨자잎, 케일, 치커리, 씀바귀 등 고유의 향을 자랑하는 쌈채소들이 더해지겠네요.
아무런 간을 하지 않고 먹는 채소의 맛은 대체로 씁쓸합니다. 더위를 먹은데 특효약이라는 익모초의 생즙은 그야말로 극단적인 쓴 맛을 자랑하죠. 기자는 어린 시절 한여름에 익모초 생즙을 한 숟가락 먹을 때마다 어머니로부터 용돈을 100원 씩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용돈으로 회유해야 겨우 목구멍 안으로 넘길 수 있었던 괴로운 맛이지만, 쓴맛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고기와 함께 먹는 쌈채소의 쓴맛은 외려 입맛을 돋우니 말입니다. 커피와 초콜릿에 쓴맛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겠죠? 그래서 쓴맛을 ‘어른의 맛’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서울 예장동 남산공원에서 촬영한 씀바귀꽃.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그런데 말입니다. 그 쓴맛을 자랑하는 쌈채소들도 때가 되면 어여쁜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회식 메뉴는 대개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죠. 퇴근 후 걸어서 회식 자리로 향하는 길이라면, 보도블록이 덮이지 않은 맨땅을 살펴보세요. 요즘에는 그 쌈채소 중 하나가 피우는 꽃들이 가로수 그늘 아래에 지천입니다. 봄과 여름이 뒤섞일 무렵, 길가의 가장 낮은 곳에 소박하게 피어나는 노란 꽃. 민들레인줄 알았는데 민들레와 다르게 생겼죠? 바로 씀바귀입니다.
사실 씀바귀는 우리에게 쌈채소보다 봄나물로 더 익숙합니다. 씀바귀라는 이름은 이름처럼 쓴맛을 내는 데에서 비롯됐습니다. 씀바귀의 한자는 ‘도(荼)’라고 쓰는데, 시경(詩經)에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마음을 씀바귀의 쓴맛에 비유해 “누가 씀바귀를 쓰다고 했나(誰謂荼苦)”라는 싯구가 전할 정도입니다. 약재로 쓰이는 씀바귀 뿌리는 고거(苦) 라고 불리는데, 이는 ‘맛이 쓴 상추’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여인의 한과 비교되는 비련의 쓴맛이지만, 이른 봄 뿌리와 어린 순을 살짝 데쳐 나물로 무쳐먹으면 봄철 입맛을 돋우는데 이만한 채소도 없습니다.
씀바귀의 한자 ‘도’는 ‘풀 초(草)’와 ‘남을 여(余)’를 더한 글자입니다. 나물과 쌈채소로 먹기 위해 여기저기에서 캐내고도 많이 남아 그런 글자를 얻었나 봅니다. 남은 씀바귀는 누가 알아주든 말든 여름까지 부지런히 전국 곳곳에서 꽃을 피웁니다. 논두렁, 밭두렁, 도시의 아파트 화단, 고속도로의 갓길 등 뿌리내리는 장소를 가리는 법도 없지요. 지난 2009년 농촌진흥청은 고랭지 경사밭의 토양침식과 비료분 유실을 줄여주는 토종 자원식물 4종을 선정했는데 좀씀바귀가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씀바귀의 꽃말은 ‘순박함’입니다. 까탈을 부리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피어나는 씀바귀에게 참 잘 어울리는 꽃말입니다.
봄철에 씀바귀를 많이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죠? 고마운 씀바귀를 먹을 때마다 이맘 때 노란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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