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설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13년 말이다.
나는 평소 음악을 잘 만들지만 기획사의 버프를 받지 못하는 뮤지션들의 연락을 자주 받는 편이다.
연락이 오는 방식은 가지가지이다.
메일만 달랑 보내는 경우부터 메일에 음원까지 첨부하는 경우, 직접 회사로 CD를 보내는 경우, 전화를 주는 경우 등등...
신설희는 그중에서도 매우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이유는 내게 자신의 첫 정규앨범과 함께 보낸 장문의 자필 편지 때문이다.
그 이전과 이후에도 몇 번 내게 자필 편지를 앨범을 함께 보낸 뮤지션이 있었다.
하지만 신설희의 편지에는 절박한 진심이 담겨 있어 오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앨범의 높은 완성도였다. 정말 단단한 앨범이었다.
이 좋은 앨범이 이렇게 조용하게 발매되다니...
안타깝게도 당시 내가 그 앨범을 받은 때는 앨범 발매 이후 이미 몇 달이 지난 뒤였다.
인터뷰로 다루기엔 조금 늦은 상황이었다.
이후 나는 미안한 마음을 신설희가 공연을 하거나 싱글을 발매하면 틈틈이 챙겨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새 앨범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신설희가 2년 만에 내놓은 작품은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멋진 작품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연락해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설레발일지도 모르지만 이 앨범은 2015년에 가장 중요한 앨범 중 하나로 꼽힐 것이다.
시대의 유행과 상관없이 자신 만의 시간을 살아갈 앨범이다.
이 인터뷰는 헤럴드경제 8월 23일 25면 톱에도 실린다.
신설희 “당신과 나의 일상 보듬는 음악 들려주고 싶어”
[HOOC=정진영 기자] 싱어송라이터는 싱어(가수)와 송라이터(작곡가)의 합성어, 즉 자신의 노래를 직접 만들어 부르는 가수를 이르는 말이다. 싱어송라이터는 단순히 노래를 받아 부르는 가수를 넘어 상당한 음악적 역량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에 가수에게 매력적인 수사이다. 최근 들어 가요계에서 싱어송라이터란 표현이 흔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요계의 수많은 싱어송라이터들 중 싱어송라이터라고 부를만한 자격을 가진 가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의문이다. 싱어송라이터는 좋은 작곡가이기 이전에 좋은 가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탁월한 보컬과 음악적 역량을 동시에 보여주는 신설희는 현재 가장 주목해야 할 싱어송라이터 중 하나이다. 새 미니앨범 ‘일상의 잔상’을 발표한 신설희를 지난 28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싱어송라이터 신설희가 새 미니앨범 ‘일상의 단상’을 발표했다. [사진 제공=머쉬룸뮤직]
신설희는 “살아가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은 잔상으로 남아 우리를 기쁘게도 하고 괴롭히기도 하며 이후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준다”며 “어린 시절부터 동화의 신비로우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을 좋아했는데, 일상의 잔상들을 동화와 같은 모습으로 펼쳐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설희는 어린 시절 클래식 피아노를 접한 뒤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다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하며 자연스럽게 뮤지션의 길을 걸었다. 본격적인 활동의 시작은 그가 지난 2013년에 발표한 첫 정규앨범 ‘힐스 오브 더 타임(Hills of the Time)’이었다. 이 앨범은 포크를 기반으로 모던록, 클래식, 팝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완성도 높은 음악 위에 풍부한 성량과 탁월한 표현력을 가진 보컬을 담은 수작이었다. 피아니스트 김광민은 이 앨범에 대해 “앨범 전체에서 기본적으로 높은 음악 수준을 유지하려는 진지함이 느껴지고 장르적으로는 일반적인 합의 범주를 뛰어넘은 작품”, 프로듀서 돈스파이크는 “기존의 국내 대중음악의 모든 것을 완전히 탈피한 획기적인 음악”이라고 호평했다. 그러나 이 앨범은 힘 있는 기획사의 후광을 받지 못하는 뮤지션의 결과물의 운명이 그렇듯이 철저히 묻히고 말았다.
신설희는 “3년 간에 걸쳐 공들여 만든 앨범이 묻히는 모습을 보며 좌절도 컸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음악이었다”며 “1집은 모두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다채로운 색깔의 음악을 담았는데, 이번에는 음악을 한 가지 색채로 정돈해 내 색깔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장르의 종합선물세트 같았던 전작과는 달리 이번 앨범은 차분한 어조로 일관적인 서정을 그려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번 앨범에는 아련한 음색의 기타 연주가 마치 한여름 새벽안개 속을 걷는 듯한 질감을 연출하는 타이틀곡 ‘원(Circle)’을 비롯해 몽환적인 피아노 연주를 중심으로 한 폭넓은 편곡이 인상적인 ‘플로라(Flora)’, 간결한 편곡으로 목소리의 매력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라스트송(Lastsong)’ 등 5곡이 수록돼 있다.
마치 노라 존스(Norah Jones)가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의 곡을 부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하나 같이 뻔하지 않은 멜로디와 단단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귀에 거슬리지 않은 편안한 음색도 이 앨범의 미덕이다. 이 앨범은 시대의 유행에서 다소 벗어난 음악을 담고 있지만, 싱어송라이터의 의미는 물론 좋은 음악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자문하게 만든다.
신설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홀로 앨범을 준비하는 내 모습과 힘들게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끝이 없는 원을 그리는 것 같았다”며 “나처럼 외로움의 성장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내 공연을 본 관객들은 하나 같이 앨범보다 라이브에서 들려주는 내 목소리를 더 좋아했다”며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리기 위해 단순히 세션 연주자들을 동원해 녹음했던 전작과는 달리 공연에서 함께 해 온 밴드와 함께 원테이크(한 번에 끊임없이 녹음하는 방식)에 가깝게 연주를 녹음했고, 보정 작업도 피했다”고 덧붙였다.
신설희는 지난 26일 서울 서교동 KT&G상상마당에서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다. 또한 이번 앨범은 최근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으로도 선정되며 평단의 호평과 주목을 받고 있다.
신설희는 “북유럽에 가보진 못했지만 그곳의 신비로운 자연 환경이 빚어내는 따스하면서도 몽환적인 정서를 동경한다”며 “앞으로도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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