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꽃은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 끝난 후 2학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꽃이다.
별 다른 놀 거리가 없던 시절에 분꽃은 만만한 장난감이었다.
돌이켜보니 참으로 많이도 꺾었고, 분꽃 같은 여자 아이들을 참 많이도 놀렸다.
길에서 분꽃을 꺾다가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
이 기사는 헤럴드경제 9월 11일자 30면 사이드에도 실린다.
[HOOC=정진영 기자] 어린 시절 기자는 마른 몸에 검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아이였습니다. 기자뿐만 아니라 동네 아이들 대부분 비슷한 모습이었죠. 기자가 유년시절을 보낸 80년대 말에는 지금처럼 게임을 할 수 있는 컴퓨터나 게임기를 가지고 있는 집이 드물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낮에는 텔레비전 방송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심한 아이들은 쉬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집 바깥으로 뛰어나와 온 동네를 싸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니 몸에 살이 붙을 겨를이 없고, 피부는 검게 그을릴 수밖에 없었죠.
여름방학이면 기자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학교 운동장 화단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는데, 기자의 관심사는 오로지 샐비어였습니다. 샐비어의 꽃을 따 빨아먹으면 달짝지근한 꿀을 맛볼 수 있었거든요. 그러나 방학이 끝나고 바람이 선선해지면 기자의 시선은 화단의 다른 꽃으로 향했습니다. 마땅한 놀 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기자에게 장난감이 돼 준 꽃. 바로 분꽃입니다.
분꽃은 남아메리카 원산의 한해살이풀로 6월부터 10월까지 깔때기 모양의 꽃을 붉은색, 흰색, 노란색으로 피웁니다. 미대륙 원산의 꽃들이 대개 그러하듯, 분꽃은 병충해에 강하고 땅을 가리지 않습니다. 덕분에 매년 이맘때면 전국 어디서나 분꽃을 흔히 볼 수 있죠.
분꽃의 이름은 가을이면 별사탕만한 크기로 까맣게 익는 씨앗 속에 담긴 흰 가루(粉)에서 유래합니다. 과거 마땅한 화장품이 없던 시절에는 여성들이 이 씨앗을 빻은 가루를 화장품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는 꽤 지혜로운 방법이었습니다. 피부 미백을 위한 화장품의 주원료였던 납분은 중금속 중독 부작용 때문에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분꽃 추출물은 피부 유연과 보호 작용을 인정받아 여전히 화장품 성분으로 쓰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린 시절 기자에게 분꽃은 다른 꽃보다 조금 재미있는 꽃에 불과했습니다. 분꽃은 햇살이 길게 드러눕는 늦은 오후부터 꽃잎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한낮에 꽃잎을 오므린 분꽃은 기자에게 그저 이상하게 생긴 꽃일 뿐이었죠. 분꽃의 꽃송이를 꺾어 씨앗을 살살 잡아당기면 가느다란 꽃술이 빠져나옵니다. 기다란 꽃대와 덜익은 씨앗을 매달고 있는 꽃술의 모습은 어린 기자의 눈에 마치 낚싯대 같았습니다. 씨앗을 귓속에 살짝 넣으면 꽃잎이 아래로 찰랑거려 마치 귀걸이처럼 보였죠. 꽃을 한참 동안 가지고 놀다 질릴 때쯤이면, 바닥에는 수많은 꽃송이들이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기자는 분꽃의 꽃말인 ‘내성적’, ‘소심’, ‘수줍음’ 등을 훑으며 추억에 잠겼습니다. 문득 어린 시절 기자가 짓궂게 놀렸던 여자 아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희미하게 떠오르는군요. 기자가 분꽃 같이 수줍어했던 아이들의 여린 마음을 씨앗처럼 검게 태웠던 것은 아닌지. 그 희미한 얼굴들이 추억에 잠겨 분꽃을 꺾는 기자의 손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어른이 되긴 쉽지 않습니다.
123@heraldcorp.com
서울 상수동에서 촬영한 분꽃.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여름방학이면 기자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학교 운동장 화단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는데, 기자의 관심사는 오로지 샐비어였습니다. 샐비어의 꽃을 따 빨아먹으면 달짝지근한 꿀을 맛볼 수 있었거든요. 그러나 방학이 끝나고 바람이 선선해지면 기자의 시선은 화단의 다른 꽃으로 향했습니다. 마땅한 놀 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기자에게 장난감이 돼 준 꽃. 바로 분꽃입니다.
분꽃은 남아메리카 원산의 한해살이풀로 6월부터 10월까지 깔때기 모양의 꽃을 붉은색, 흰색, 노란색으로 피웁니다. 미대륙 원산의 꽃들이 대개 그러하듯, 분꽃은 병충해에 강하고 땅을 가리지 않습니다. 덕분에 매년 이맘때면 전국 어디서나 분꽃을 흔히 볼 수 있죠.
서울 정릉동의 한 골목에서 촬영한 분꽃.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분꽃의 이름은 가을이면 별사탕만한 크기로 까맣게 익는 씨앗 속에 담긴 흰 가루(粉)에서 유래합니다. 과거 마땅한 화장품이 없던 시절에는 여성들이 이 씨앗을 빻은 가루를 화장품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는 꽤 지혜로운 방법이었습니다. 피부 미백을 위한 화장품의 주원료였던 납분은 중금속 중독 부작용 때문에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분꽃 추출물은 피부 유연과 보호 작용을 인정받아 여전히 화장품 성분으로 쓰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린 시절 기자에게 분꽃은 다른 꽃보다 조금 재미있는 꽃에 불과했습니다. 분꽃은 햇살이 길게 드러눕는 늦은 오후부터 꽃잎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한낮에 꽃잎을 오므린 분꽃은 기자에게 그저 이상하게 생긴 꽃일 뿐이었죠. 분꽃의 꽃송이를 꺾어 씨앗을 살살 잡아당기면 가느다란 꽃술이 빠져나옵니다. 기다란 꽃대와 덜익은 씨앗을 매달고 있는 꽃술의 모습은 어린 기자의 눈에 마치 낚싯대 같았습니다. 씨앗을 귓속에 살짝 넣으면 꽃잎이 아래로 찰랑거려 마치 귀걸이처럼 보였죠. 꽃을 한참 동안 가지고 놀다 질릴 때쯤이면, 바닥에는 수많은 꽃송이들이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서울 상수동에서 촬영한 분꽃.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기자는 분꽃의 꽃말인 ‘내성적’, ‘소심’, ‘수줍음’ 등을 훑으며 추억에 잠겼습니다. 문득 어린 시절 기자가 짓궂게 놀렸던 여자 아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희미하게 떠오르는군요. 기자가 분꽃 같이 수줍어했던 아이들의 여린 마음을 씨앗처럼 검게 태웠던 것은 아닌지. 그 희미한 얼굴들이 추억에 잠겨 분꽃을 꺾는 기자의 손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어른이 되긴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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