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에서도 벌노랑이만큼은 지친 기색 없이 생기발랄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문득 벌노랑이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이 기사는 헤럴드경제 8월 21일자 26면 사이드에 실린다.
[HOOC=정진영 기자] 샛노란색을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지 않나요? 기자는 샛노란색을 보면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줄지어 뒤뚱거리며 걷는 아이들의 모습. 그 귀여운 모습 앞에서 미소를 감추긴 쉽지 않을 겁니다.
오행설에 따르면 노란색은 흙(土)을 상징합니다. 흙은 생명을 키우죠.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 땅을 뚫고 솟아오른 새싹 등 갓 태어난 많은 생명들에겐 노란색이 감돕니다. 밝게 빛나는 노란색을 보면 생기를 느끼는 것은 단지 기분 탓만이 아닐 겁니다. 지난 여름 내내 전국 곳곳의 길가를 샛노란색으로 채웠던 벌노랑이는 방글방글 웃는 아이들을 닮은 꽃입니다.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에서 촬영한 벌노랑이.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벌노랑이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콩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벌노랑이는 이름처럼 벌과 꽤 흡사한 생김새를 가졌습니다. 꽃의 크기도 꿀벌과 비슷하고요. 자그마한 꽃이 샛노란색으로 피어나니 참으로 앙증맞습니다. 벌노랑이는 꽃이 지는 9월이면 작은 콩꼬투리를 열매로 맺습니다. 이 때문에 벌노랑이는 ‘노랑돌콩’으로도 불리죠. 벌노랑이도 ‘노랑돌콩’도 모두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주는 콩과 식물들이 대개 그러하듯, 벌노랑이 역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편입니다. 상대적으로 단백질 함량이 높은 콩과 식물의 특성상 벌노랑이는 가축을 위한 사료와 퇴비를 만드는 데 많이 쓰여 왔죠. 또한 벌노랑이는 민간에선 금화채(金花菜) 혹은 백맥근(百脈根)이라고 불리며 해열제와 지혈제로 쓰이고, 어린 순은 나물로도 먹습니다. 뿐만 아니라 벌노랑이는 한 번 식재하면 매년 같은 자리에서 꽃을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이니 눈에도 즐겁습니다. 유용하기로 따지면 이만한 식물도 드물 겁니다.
뙤약볕 아래에서 무리지어 피어나 바람에 흔들리는 벌노랑이를 바라보면 이 작디작은 생명이 새삼 얼마나 위대한지 느껴집니다. 이토록 연약한 모습을 한 녀석이 양지에 박토를 골라 뿌리를 내리며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니 말입니다. 주변의 다른 초본식물들이 폭염에 말라 비틀어져 잎을 떨어뜨릴 때에도 벌노랑이는 지친 기색을 보이는 일이 없습니다. 햇살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벌노랑이의 샛노란색은 강렬한 빛을 발합니다. 가히 외유내강의 전형이라고 할 만합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달빛축제공원에서 촬영한 벌노랑이.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올 여름에는 장마가 짧았고, 유난히 폭염주의보도 많이 발령됐습니다. 8월도 꺾였지만, 아직도 낮이면 시원한 소나기 한 줄기가 그리운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죠. 그러나 입추(立秋)를 지나 온 저녁 바람의 결은 어느 틈에 벌써 가을의 기운을 품고 있습니다. 절기를 나눠 기후 변화를 통찰했던 옛사람들의 지혜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저녁 바람이 서늘해지면 벌노랑이도 꽃을 감추고 내년을 기약할 때가 온 것입니다.
이제 이 귀여운 녀석들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길에서 벌노랑이를 만나시거든 유치하지만 속으로 이렇게 한 번 속삭여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그 벌노랑이가 올해 마지막으로 마주칠 벌노랑이일지도 모르거든요. “너도 나도 올 여름에 수고 많았어!”.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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