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앨범을 듣고 무릎을 탁 쳤던 순간은 대자연의 장엄함을 표현하는 사운드가 모두 전자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이다.
캐스커야 일렉트로닉 듀오이니 전자음을 활용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동안 캐스커는 전자음에 어쿠스틱 사운드 등을 결합해 도회적인 음악을 들려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순도 높은 전자음으로 도시가 아닌 대자연을 그려내다니. 그것도 이렇게 따뜻한 질감으로 말이다.
정말 멋진 앨범이다. 이미 <이주의 추천 앨범>으로 선정했던 앨범이기도 하고.
이 인터뷰는 헤럴드경제 11월 9일자 29면 사이드에도 실린다.
가장 인공적인 전자음으로 대자연을 그려낸 아름다운 역설
듀오 캐스커가 정규 7집 ‘그라운드 파트 1(gorund part 1)’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이준오(프로듀싱ㆍDJ), 융진(보컬). [사진 제공=파스텔뮤직]
이준오는 “멤버들 각자 개인 작업으로 바빴던 데다, 그동안 앨범을 내면서 우리도 모르게 거기서 거기인 음악을 반복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또 결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돌아오지 않는 음악시장에 대해 환멸이 느껴져 앨범 작업이 지체됐다”며 “그 어느 때보다 생각과 고민의 시간들이 길었기 때문에 이번 앨범은 캐스커의 2막을 알리는 작품이나 마찬가지”라고 소감을 밝혔다.
캐스커는 지금까지 2년 터울로 꾸준히 정규 앨범을 발표해왔지만, 이번에는 유독 3년이란 긴 시간이 소요됐다. 지지부진했던 캐스커의 작업에 속도를 내게 만든 것은 이준오의 아이슬란드 여행이었다. 잇단 영화 음악 작업으로 지쳐 있던 이준오는 할리우드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배경인 외계 행성이 실은 컴퓨터그래픽이 아니라 아이슬란드란 사실에 충격을 받고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이준오는 “눈앞에 빙하가 보이는데,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양들이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고, 뒤돌아보면 강이 흐르는 모습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일상의 연속이었다”며 “이번 앨범의 제목 ‘그라운드’는 ‘바닥’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아이슬란드에서 그야말로 세상의 밑바닥을 만난 느낌이었다. 태초의 지구를 닮은 듯한 곳에 발을 디디고 서서 주변을 바라보니 흘러가는 세월과 나란 존재는 대자연에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몸으로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전작보다 강조된 전자음이다. 지금까지 어쿠스틱 악기나 밴드 사운드를 가미한 사운드로 도회적인 음악을 선보여 온 캐스커는 이번 앨범에선 순도 높은 일렉트로니카로 대자연의 장엄함을 그려내는 반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운드들은 하나하나 강렬하면서도 따뜻한 온도를 잃지 않는다.
다른 세상의 낯선 빛을 맞이한 설렘을 담은 ‘광선’, 간헐천에서 솟아오르는 뜨거운 물기둥을 바라보며 느낀 경이로움을 표현한 ‘게이시르(Geysir)’, 아이슬란드 북부 어딘가의 산에서 건진 선율로 대자연의 장엄함을 표현한 ‘산’ 등의 곡은 이런 앨범의 특징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이밖에도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이상으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만월’, 밝은 멜로디와 대비되는 슬픈 가사 그리고 이와 관계없이 그 사이를 부유하는 복고풍의 전자음의 조합이 흥미로운 ‘얼룩’, 아날로그 신서사이저로 80년대 신스팝 사운드를 재현한 ‘세상의 끝’처럼 팝적인 사운드 틈새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겨놓은 흥미로운 음악적 요소도 적지 않다.
이준오는 “아이돌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이 기성세대에게 통하지 않는 이유는, 나이가 들면 전자음에 귀에 거슬리기 때문”이라며 “나는 대중이 실제로는 전자음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일부러 어쿠스틱 사운드를 조미료처럼 가미해왔다”고 그간의 고충을 전했다. 이어 그는 “이번에는 캐스커의 음악에 익숙한 이들에게 절대 예상할 수 없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며 “아이슬란드 여행 이후 대중이 좋아하는 소리보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에 대해 집중할 수 있게 됐고, 어쿠스틱 악기 대신 전자음으로 자연을 표현한 이유도 그런 생각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캐스커는 오는 7~8일 서울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앨범 발매기념 단독 콘서트를 연다. 이번 앨범의 나머지 부분인 ‘그라운드 파트2’는 발매시기를 묻자 캐스커는 “우리도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은 공연에 집중하고 있다”며 웃어보였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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